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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의 부활은 짜릿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한국 골프의 개척자인 최경주(41·SK텔레콤). 그가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그간 마음고생을 드러내듯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에 눈시울을 붉혔다. 우승하고 운 것은 2002년 5월 컴팩클래식에서 처음으로 PGA투어 정상에 섰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최경주는 지난 5월 16일 미국 플로리다 주 폰테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코스(파72)에서 끝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13언더파 2백75타로 데이비드 톰스(44·미국)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번째 홀에서 승리했다.




이 대회는 총상금이 9백50만 달러로 4대 메이저 대회보다도 많고 특급 스타들이 총출동해 ‘제5의 메이저’로 불린다. 최경주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이 대회 챔피언에 등극하며 1백71만 달러(약 18억7천만원)를 받았다. 2008년 1월 소니오픈 우승 후 침묵하다 40개월 만에 미국PGA투어 통산 8승째를 거뒀다. 시즌 상금 랭킹은 3위까지 껑충 뛰었다. 세계 랭킹도 15위로 점프했다.

5월 17일 SK텔레콤 오픈 출전을 위해 귀국한 최경주의 표정은 밝았다. 인천공항에서 제주로 이동하는 항공기 안에서 만난 최경주는 “2만볼트 전기에 감전되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00년 미국PGA투어에 도전한 이후 그는 바꾸고 변신하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를 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게 최경주의 지론이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은 이런 도전정신의 결과다.

최경주가 강조하는 스윙의 원칙은 ‘리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도선수 출신인 최경주는 미국에 진출한 초기만 해도 힘으로 밀어 붙이는 ‘후려 패는’ 스타일의 스윙을 했으나 이를 고쳐 힘들이지 않고도 파워를 낼 수 있는 ‘리듬 스윙’에 훈련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최경주는 자신을 ‘필 플레이어(Feel Player)’라고 표현했다.

그는 “율동적으로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스윙이 나오고, 그런 점에서 나는 1백퍼센트 필 플레이어다”라고 말했다.

최경주가 한국과 일본 무대를 거쳐 미국PGA투어에 진출할 당시 주위에선 무모한 도전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시행착오 속에서도 뜨거운 열정과 불굴의 투혼으로 한국 골프의 역사를 번번이 새로 썼다.

어느덧 최경주는 미국에서도 지명도가 높아졌고 고정 팬들까지 생겼다. 이번 대회에는 ‘초이스 보이스(Choi’s Bois)’라 적힌 단체 티셔츠를 입은 미국인 응원단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최경주는 “팬들에게 잘해 주고 ‘콩글리시’라도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도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갤러리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다. 그의 팬 철학은 이랬다. “손 한 번 들어주는 것은 힘이 안 든다. 미소는 공짜 아니냐.”

호적상 그는 5월 19일 41번째 생일을 맞았지만 실제로는 1968년에 태어나 43세다.

그는 2007년 미국PGA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상금 랭킹 5위를 차지해 최고 시즌을 보냈다. 그래도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꾀했다.

체중을 줄이고 스윙도 변경했지만 결과는 나빴다. 2009년 9차례나 예선 탈락하면서 상금 랭킹은 93위까지 추락했다. 허리 부상까지 겹치며 황혼에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2010년 들어 그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클럽과 공을 자신의 몸에 맞는 제품으로 과감하게 교체하면서 살아났다. 지난해 다시 시즌 상금 2백만 달러를 돌파하며 상금 랭킹을 33위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초 최경주는 “넘버 8(8승)만 나오면 9, 10까지 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올해 연초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이 나에게 절정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다. 지금 샷 감각이나 몸 상태가 참 좋다. 메이저 대회 우승에도 근접해 있다.”

이번에 우승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는 ‘챔피언스 디너’ 프로그램이 있다. 전년도 우승자가 대회 개막을 앞두고 개최하는 만찬이 챔피언스 디너인데, 최경주는 내년 디너의 메인 메뉴로 ‘갈비버거(가칭)’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이면서 외국 사람의 입에도 맞는 음식을 생각 중”이라는 최경주는 평생의 꿈인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하면 ‘전통 한식’으로 메뉴를 짜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이전의 한 인터뷰에서 “청국장을 올리겠다”고 했던 최경주는 “솔직히 청국장은 무리다. 된장찌개에 굴비 백반, 갈비, 육회, 등심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번 쾌거로 자신의 다짐이 괜한 큰소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최근 4개 대회 연속 톱10 진입의 상승세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메이저 대회 우승의 꿈도 이뤄야 하고 10승 고지를 밟아야죠.”

다시 시동을 건 탱크의 진격소리가 우렁차기만 하다.

글·김종석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최경주는 ‘기부 탱크’다. 최경주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상금 가운데 20만 달러(약 2억1천6백만원)를 최근 미 남동부 지역을 강타한 토네이도 복구 지원금으로 쾌척했다. 지난해 아이티 지진 때에도 그는 2억원을 긴급구호금으로 지원했고 올해 일본 대지진 때도 10만 달러를 내놓았다.

최경주는 “일본의 지진해일 재난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토네이도 뉴스를 들었을 때 토네이도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뭔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내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으로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을 맛보고 있던 그때, 인생 최대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2007년에는 최경주재단을 출범시켜 본격적으로 꿈나무 육성과 자선사업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경기할 때도 상금을 기부해 온 최경주는 SK텔레콤오픈 1라운드가 열린 지난 5월 19일에는 스페셜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7명을 만나 훈련지원금과 골프용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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