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암 투병 중 산문집 펴낸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의 산문집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샘터 펴냄)가 4월 초 출간된 직후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에 올랐다. 1970년대 말 이후로 이 수녀가 펴낸 시집과 산문집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내적 구도(求道)의 치열한 성찰을 통해 걷어올린 그의 언어들은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꽃씨로 전해져 사랑과 위로의 꽃으로 피어났다. 2008년 여름 예기치 않게 암이 발병해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으나 ‘명랑 투병’이라는 조어까지 만들 정도로 밝은 모습을 보이며 치유와 희망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산문집은 자신이 겪은 심신의 아픔을 진솔하게 풀어놓으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희망은 살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일상의 나날을 담은 칼럼들, 수도자의 길을 함께 걷는 친구에게 주는 단상, 수도원 생활을 담은 일기, 기도와 묵상, 세상을 떠나간 사람에 대한 추모의 글 등을 묶었다.

부산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이 수녀가 서울성모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최근 상경했을 때, 서울역 인근에 있는 수도원 분원에서 만났다. 이 수녀는 “수도자로서 대중 앞에 자꾸 나선다는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일이라면 비록 내가 힘들어도 즐겁게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수녀의 음성은 특유의 쾌조를 띠었고 얼굴은 여전히 고운 태가 남아 있지만, 병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직장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 수녀의 치료 경과는 좋지만 아직 완치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었다. 이 수녀는 3년 전 암에 걸린 후 ‘명랑 투병’을 하게 된 사연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처음에 암센터에 가서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먼저 하겠느냐, 방사선을 하겠느냐, 묻더군요. 속으로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즉시 표정을 밝게 하고 답했지요. 60여 년 살았으니까 됐어요. 선생님 좋은 대로 하셔요.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을게요. 속으로 두려움이 있었으나 웃으면서 이야기했어요.”

이후 이 수녀를 수술한 의사가 주변에 ‘수녀 시인이 너무 화통하더라, 명랑하더라’고 전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문이 나다 보니 이 수녀도 그에 맞게 ‘명랑 투병’하기로 목표를 정했다고 했다.

“제가 암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암 환자에게 희망을 줄수 있잖아요. 아프면 아픈 대로 나눌 것이 많습니다. 역설적 고백이지만, 암 투병이 제게는 축복이에요.”


이 수녀가 만든 조어인 ‘명랑 투병’은 그의 본명과도 통한다. 1945년 강원 양구에서 태어난 이 수녀의 본명은 명숙(明淑).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납북돼 생사를 모른 상태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역할까지 담당했다.

이른바 결손 가정이지만 신앙과 어머니 덕분에 늘 마음 부자로 살았다. 지난 2006년 산문집 <풀꽃 단상>에서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표현했던 그는 이번 산문집에서도 추모의 정을 애틋하게 담았다.

그는 여고를 졸업한 직후인 19세에 올리베타노의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해 세례명 ‘클라우디아’를 얻어 수녀가 됐다. 이후 반세기 가까이 수도자 생활을 해온 이 수녀도 “스스로에게 뾰족하고 날카로운 성품이 있는데,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인간의 본성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은, 이 수녀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과도 교분을 나눌 수 있게 하는 힘이 된 듯하다.

이 수녀는 록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씨가 스캔들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만나서 우정을 나눠왔다. 김씨는 그런 인연으로 이번 책의 추천사를 썼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들조차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웠다.’(김태원)

이번 책에는 살인범으로 무기형을 받고 복역 중인 신창원씨와 편지와 면회 등으로 나눈 우정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 수녀는 문학으로서뿐만 아니라 이른바 ‘편지 사목’을 통해 공동체와 소통해 왔다. 그가 꾸려가고 있는 ‘해인글방’의 창고에는 그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몇십만 통의 편지가 사람들의 직업 장르에 따라 색깔별로 분류돼 있다.

“전국 각지에서 늘 편지가 오는데, 한 줄이라도 답을 해주려고 애써요. 글방 창고에 가면 편지에 담긴 글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말을 건네는 듯하지요.”


그가 박완서 작가, 법정 스님과 동료 문인으로서 두터운 우정을 나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책은 서울성모병원에서 옆 병실에 함께 입원했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적인 모습을 전하는 에피소드도 담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어느 날 추기경의 병실에서 이 수녀는 함께 깨죽을 먹은 후 기도를 부탁했다. 그때 추기경은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상태로 길게 말을 이어갔다.

이 수녀가 “힘드신데 좀 짧게 하시죠”라고 하니, 추기경은 “상대가 문인이라 나름 신경 좀 써서 하느라 그랬지!”라며 웃었다. 기도의 요지는 “이 수녀가 시의 향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도록 세상에 오래 남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 추기경이 긴 기도를 통해 소망한 내용이 꼭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ㆍ장재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