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스와힐리어 문예지 만든 황학주 시인




 

“구호활동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자립’입니다. 살기 힘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구호 아닐까요.”
 

이젠 한국 사회에서도 나눔의 정신이 적극 독려되고 널리 칭찬받는다. 아프리카에 대한 구호활동도 낯설지 않다. 초창기 제기됐던 ‘굶는 아이들이야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아프리카까지’라는 거부감도 이제는 어느 정도 불식됐다. 연예인들의 난민 구호활동이 많아지고 빈곤국 아동결연 캠페인이 늘어난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구호활동의 일환으로 문예지를 창간한다는 아이디어는 독특하다. 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민간 구호단체 피스프렌드를 이끌고 있는 황학주(55) 씨다. 등단 22년차 시인인 황 씨는 “아프리카 고유어인 스와힐리어 문예지 발간은 15년 전 아프리카와 처음 인연을 맺고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펴면서부터 오랫동안 다듬어온 꿈이었다”고 말했다.
 

“봉사단 일원으로 3년간 케냐에 머물면서 만난 현지 시인과 소설가들은 고유어로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도 일제시대 때 모국어로 작품을 쓰지 못한 아픔을 겪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황 씨가 발행인을 맡고 탄자니아 작가협회가 편집 책임을 맡은 스와힐리어 문예지 <라피키 와 파시히>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만들어진 문예지다. 이번 창간호는 2천 부가 발행돼 아프리카 각국 도서관과 작가들에게 배포됐다.
 

동아프리카에서 주로 쓰는 고유어인 스와힐리어는 탄자니아에서만 제1 공용어일 뿐 나머지 나라들은 대부분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아프리카 문인들은 스와힐리어가 사라지는 언어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황 씨는 스와힐리어 문예지를 창간하면서 “사라져가는 아프리카 고유어를 지키고 한국문학도 아프리카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예지에는 스와힐리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현대 아프리카 시인 20명과 소설가 4명의 작품이 스와힐리어로 수록됐고 황동규, 이성복, 김선우 시인 등의 작품이 영어로 번역돼 실렸다. 내년 봄 출간될 2호에는 김연수, 김숨, 김애란 등의 소설이 스와힐리어로 번역돼 아프리카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실릴 예정이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량을 주는 것보다 책을 함께 만드는 게 훨씬 복잡하고 어렵지요. 그 돈으로 차라리 더 많은 빵을 보내는 게 낫지 않으냐는 시선도 있고요. 아프리카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대체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인사들이라 정치적인 문제도 얽혀 있어 여러 가지로 어려웠습니다.”
 

황 씨는 1993년 케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그는 여성 할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봉사활동을 갔던 마을에서 귀한 손님이라는 이유로 성인식에 초청을 받았는데 어린 소녀들이 할례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황 씨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프리카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94년 말 다시 아프리카를 찾았다. 멀리 킬리만자로 산맥이 보이고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로 숲을 이룬 낮은 구릉이 첩첩으로 펼쳐지는 케냐의 시골 마을 카지아도에 학교를 짓고 3년간 교장 선생님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아프리카를 본격적으로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2004년 구호단체 피스프렌드를 설립했다. 올해 시작한 문예지 창간 외에도 아프리카 여성의 할례 종식운동, 탄자니아 레세카타타 예술중고등학교 설립, 에이즈 고아 급식 활동, 세렌게티 자연보호기금 모금 등 다양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소설가 김훈, 이제하, 시인 이문재 등 문단 작가들과 사진작가 김중만, 배병우, 연극인 김지숙, 가수 이상은 등 문화예술인들이 그의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피스프렌드가 추구하는 구호활동은 거창하고 어려운 게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의 중심에서 시작하는 도움”이라고 말하는 황 씨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맞춤 구호’를 펴는 엔지오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아프리카에 더 많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구호활동은 근본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의 처지를 먼저 이해하고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너보다 힘이 있고 돈이 많아서 너를 도와준다’는 식의 구호는 그들을 제대로 돕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그 후에 ‘난 너의 친구이기 때문에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황 씨는 내년 2월에 그동안 추진해온 탄자니아 레세카타타 마을 예술학교 건립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아프리카로 떠날 계획이다. 함께 봉사활동을 떠날 희망자들은 피스프렌드 홈페이지(peacefriend.or.kr)를 통해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다른 사람을 돕다 보면 인생의 가치가 바뀌고 내면의 크기가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 안에 있었지만 미처 몰랐던 순수함을 찾아내는 행복도 느낄 수 있죠. 바로 이런 것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한 인생의 선물입니다.”
 

글·오진영 객원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