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브라이언 배리(64) 씨는 지난 10월 중순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훈장은 정부가 문화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다.
배리 씨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한국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유명 인사다. 대원정사 불교대학을 졸업한 1987년 연등국제불교회관을 창설했는가 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최초로 외국인 포교사 자격증을 얻어 국제 포교에 힘썼다. 외국인이 한국 불교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 작업도 꾸준히 했다. 성철 스님의 법어집 <이 뭐꼬> <자기를 바로 봅시다>, 일타스님의 <생활 속 기도법> 등 20여 권의 불교서적을 번역 출간했다. 또 통도사 성보문화재연구소가 펴낸 <한국 불화집> 시리즈 40권에 영문 해설을 넣는 데 10년 정성을 들였다. 올해 말에는 법정스님의 수필집 <물소리 바람소리>를 간추려 영역한 책이 미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탱화(幀畵·불교의 신앙대상이 되는 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를 그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서울 봉원사에서 불교미술의 거장이자 중요 무형문화재인 만봉스님을 사사한 지 25년째. 그는 서양식의 탱화 작가보다는 ‘불모(佛母)’가 맞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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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화를 그리는 맨 마지막 단계가 점안(點眼)이에요. 불교 전통에 따르면 한낱 그림일 뿐이던 도상이 점안을 통해 육화된다고 믿습니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생명을 주는 것처럼, 붓다와 보살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니 불모(佛母)가 맞죠.”
해외로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99년 말. 태국 방콕의 왕실사원인 왓 수탓(Wat Suthat)에서 단청 문양을 그리는 모습이
“미국에 계신 형님한테서 방송을 봤다고 전화가 왔어요. 영어로 인터뷰하는데 자꾸 ‘거시기’ 소리가 들리길래 거시기가 절 이름인줄 알았다네요.”
한국에서 살아온 지 30여 년. 자신도 모르게 입에 밴 ‘거시기’ 소리가 영어 사이에 추임새처럼 자꾸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의 말 속에는 거시기 말고도 ‘겁나게, 징허게, 매겁시, 긍게’가 툭툭 튀어나온다. 자칭 ‘부안 부씨’가 구사하는,영락없는 전북 사투리다. 전북 사투리는 ‘사나우면서도 정겹고, 어머니가 푸근하게 안아주는’ 것마냥 좋단다. 그건 한국과의 첫 인연이 전북 부안 땅이기 때문이다.
1967년 스물네 살 때 미국의 평화봉사단원으로 부안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묵었던 시골 하숙집 주인한테서 막내아들 대접을 받았다. 배리 씨도 그들을 평생 어머니, 아버지로 모셨다. 지금 배리 씨 집에는 미국인 부모와 한국인 부모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제주를 거쳐 2년 반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지만, 1년을 채 못 버텼다. 양복에 넥타이 매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그의 표현대로 ‘꽹매기(꽹과리의 사투리) 소리와 홍어 냄새가 자꾸 땡기고, 검정 고무신 차림과 막걸리가 그리웠다’. 그래서 1970년 평화봉사단 교육위원 부단장을 자청해 한국에 나오던 길로 눌러 앉았다.
1980년대에는 김병섭 씨가 이끄는 ‘호남우도굿’의 무쇠로 전국을 누볐다. 화랑춤, 탈춤…, 배우는 춤마다 춤사위가 한국 사람처럼 그럴싸했다. 순전히 좋아서 따라다녔지, 생업은 따로 있었다. 대우그룹 회장실 소속 해외 홍보실에서 70년대 말부터 90년대 말까지 일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해외 홍보물도 꽤 많이 그를 거쳤다. 영어와 한국문화에 정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탱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외국인을 통역하기 위해 봉원사에 들렀다가 만봉 스님의 탱화를 보자마자 그동안 찾던 게 이거다, 싶더란다.
“꽹매기다, 탈춤이다, 불교 공부다, 20년 동안 찌개를 하나씩 끓였는데, 탱화야말로 거시기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의 섞어찌개다, 싶데요. 아, 이 일을 하려고 돌아다녔구나 했어요.”
그가 보기에 한국의 탱화는 다른 나라 탱화보다 ‘정교하고 이쁘고 멋있다’. 인도에서 비롯돼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지만, 한국의 고유한 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붓 잡는 법도 모르던 그가 만봉 스님 아래서 10년을 배웠다. 입문은 시왕초(十王草·저승에서 죄를 가늠하는 신의 밑그림) 3천 장 그리기였다.
“처음엔 하루에 두 장 그리기도 힘들어요. 천 장을 간신히 그려서 사부님께 보여드리니 하품을 하시면서 ‘천 장 더!’ 하시는 거예요. 천 장을 더 그리니 ‘길이 들었구만, 천장 더’ 하시데요.”
2년 걸려 3천 장을 완성했다. 다른 사람들은 1천 장만 그리고도 채색을 시작하는데, 밑그림만 3천 장 채우게 한 걸 나중에 생각해보니 “징그럽게 큰 선물을 준 거”였다. 사부님이 2006년 입적하신 후에야 그 마음을 알았다. 그의 홈페이지(bbbudart. com)에는 만봉 스님 일화가 소개돼 있다.
“사부님은 참으로 겸손한 분입니다. 인간문화재로 전국의 유명한 사찰에 탱화 불사를 안 하신 데가 없고, 은관문화훈장을 받을 만큼 추앙을 받으셨으면서도 으스대는 일이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절을 하면 맞절을 하시고, 죽은 고양이를 위해 49재를 지내줄 만큼 자비로운 분입니다. 탱화 불사로 받은 돈도 절에 기탁하셨습니다.”
배리 씨가 탱화를 한 장 완성하는 데는 적어도 석 달이 걸린다. 바닥에 팔꿈치를 대고 엎드린 채 단전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온 마음을 붓 끝에 집중하는 몰아지경의 과정은 그 자체로 도를 닦는 수행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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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탱화를 해외 사찰에 무료로 기증해왔다. 자신의 고향인 미국 보스턴시의 문수사, 숭산 스님이 건립한 케임브리지 젠 센터에 탱화를 기증했다. 디트로이트, 모스크바, 싱가포르 등지의 사찰에도 그의 탱화가 걸려 있다. 겨울 한 철 석 달 꼬박 매달린 태국 왕실사원 단청도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의 한 사찰에 기증할 탱화를 조성 중이다.
“신나서 하는데 돈을 받다니요. 한국에서 징허게 받은 사랑, 사부님께 받은 은덕을 갚는 것뿐입니다.”
전생에 백제 사람이었을 거라고 너털웃음을 웃는 배리 씨. 2년 전 한국에서는 최초로 문화예술영주권을 받은 그는 서울 북한산 자락의 작은 집 거실에 ‘관음굴’이라는 표지를 걸고, 자신이 그린 관세음보살을 모신 채 탱화 불사에 몰두하고 있다.
글·최은숙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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