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외국인 동장들 “한국생활 노하우 우리가 알려드려요”


추석 명절을 앞둔 지난 9월 말,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3층에서 서울 시내 외국인 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서울 시내 4개 글로벌빌리지센터의 센터장과 서울 글로벌센터장이다. ‘서울 글로벌빌리지센터’는 서울에 사는 외국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해결해주는 사랑방 구실을 하고, 한국어 강좌 등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일종의 외국인 동사무소다.
현재 서울에는 지난해 1월 생긴 마포구 연남동(중국인)을 비롯해 용산구 이촌동(일본인), 용산구 한남·이태원동, 서초구 서래마을(프랑스인), 강남구 역삼동 등 5곳에 글로벌빌리지센터가 마련돼 있다. 센터장(동장)은 모두 한국에 4,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들이다.
외국인 동사무소장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정곡을 찔렀다. 서울처럼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동네가 없으며,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는 말부터 글로벌 한국, 글로벌 서울을 칭찬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종차별에서부터 영주권문제까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예리하게 지적했다.
TV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로 유명해진 이탈리아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27) 씨는 매일 경기 안양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 역삼동으로 출근한다. 그가 출근하는 곳은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역삼 글로벌빌리지센터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전기나 가스, 수도 등 일상생활에서 겪는 문제들을 상담 처리해주고 한국어 강좌 등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나 씨는 “이곳에서 한국을 배울 수도 있고 다른 외국인들을 도울 수도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촌 센터장인 일본인 이시하라 유키코(37) 씨는 아파트 수도나 가스, 화장실이 고장났다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묻는 민원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지난 2004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2년 동안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한 이시하라 씨는 “이촌동 아파트가 좀 오래되긴 됐나 보다”며 웃었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여행지를 묻고 예약하는 방법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인 결혼이민자들의 문의가 많은 연남동 센터는 비자문제와 귀화 절차, 이혼 상담이 주요 상담 내용이다. 센터장인 중국인 유암(36) 씨는 “우리 지역은 주로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오는 결혼이민자들이 많기 때문에 귀화 절차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한국인 남편들과 싸우고 이혼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많고, 가정폭력과 관련해서는 경찰서와 연계해 상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은 중동지역이나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 자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남·이태원 센터장인 캐나다인 폴 핫세(32) 씨는 “이태원에는 사업하는 사람부터 공부하러 온 사람까지 문화가 다른 다양한 외국인이 모여 살아 통역을 원하는 사람이 특히 많다”며 “한국 행정 시스템이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부동산 계약할 때 도움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역삼 센터에서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센터장 크리스티나 씨는 “센터에서 하는 한국어 수업과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단체 자원봉사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많이 물어온다”며 “또 쇼핑카드 포인트를 어떻게 쓸 수 있고 쓰레기봉투를 사서 어디에다 버려야 하는지 등 한국생활의 지혜를 묻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인 자신들이 다른 외국인을 돕다 보면 느낄 수 있는 보람도 다양하다. 지난 4월 연남 센터에 한 20대 중국 여성이 울면서 들어왔다. 신혼 초기 35살인 한국인 남편은 퇴근도 늦게 하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중국과는 달리 남자가 집안일을 거의 돕지 않는 환경도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부모와의 갈등까지 겹쳐 결국 이혼서류에 서명했다. 이혼 숙려기간에 센터를 찾아온 이 여성과 상담을 마친 유암 씨는 한국인 남편을 센터로 불러서 달랬다. 결국 이들 부부는 이혼을 철회하고 다시 결합해 지금은 아이까지 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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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크리스티나 씨는 한국인의 심리와 습관, 예절 등에 대해 자신이 습득한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했다. 크리스티나 씨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문제가 있더라도 직접 얘기하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인들은 이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국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지, 내 행동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조언해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센터장인 이들은 모두 한국에 거주한 지 4년이 넘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많이 쏟아냈다. 서울 글로벌센터장인 영국인 앨런 팀블릭(66) 씨는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외국인이 정말 많은데도 결혼이나 투자가 아니면 영주권을 받기가 무척 어려운 현실은 꼭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 씨는 “한번은 아랍계 외국인이 센터를 찾아왔는데 이렇게 친절하고 좋은 곳이 있는지 감격해하더라”며 “그 사람은 지금까지 피부색이나 겉모습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무시당해왔는데 이런 것은 없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핫세 씨는 “글로벌 서울, 글로벌 코리아라고 하더라도 한국 전통문화는 살려놔야 하는데 종로 피맛골이 사라지거나 서울 시내 한옥도 하나 둘씩 없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글·곽창렬(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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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