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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상에서 CEO까지 오세영 ‘코라오’ 회장


코리아의 ‘코’에 라오스의 ‘라오’를 더한 코라오(KOLAO) 그룹은 라오스 최대 기업이다. 코라오는 라오스에서 한국산 중고 자동차와 중국산 오토바이 수입 판매부터 금융, 운송, 에너지, 농업, 가전, 리조트 부문까지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코라오그룹을 이끄는 주인공은 오세영 회장(48). 그는 라오스에서 존경받는 기업가이다.

지난 2월 6일 라오스 정부는 코라오그룹이 라오스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며 오 회장에게 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국가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마침 그날은 코라오가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인도차이나 뱅크’를 설립한 날이기도 했다.

그는 주목받는 한상(韓商)이기도 하다. 2007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 때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젊은이는 주저하지 말고 밖에서 기회를 찾으라”고 역설했다. 한국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라오스에서 가장 큰 그룹을 이끌게 된 것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해 선택과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인 강한 근성을 지니고 있다. 쉬지 않고 열정을 토해내는 ‘에너지 덩어리’였다. 그의 열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그는 ‘내 사람을 만들 줄 아는’ 강한 친화력의 소유자이다.

강원 삼척 출신으로 성균관대를 졸업한 그는 말술 실력이라 술자리에서는 늘 분위기를 띄우는 플레이 메이커 구실을 했다. 군 제대 후 들어간 곳은 코오롱상사. 그는 직장에서도 특유의 성취욕과 원만한 대인관계로 일 잘하면서도 적이 없는 존재로 떠올랐다. 그가 코오롱상사에서 ‘날개를 퍼덕이던 시절’은 냉전이 붕괴된 시기와 겹친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8년 중국이 자본주의권과 경제 교류를 하겠다며 개혁개방을 하고, 1986년 베트남도 개방정책‘도이모이’를 선택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세계 최대 경제력을 지닌 미국과 전쟁을 벌인 전력 탓에 개혁개방을 했음에도 이렇다 할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냉전체제가 무너져 사회주의 경제권이 붕괴되자 베트남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미국이 취한 금수(禁輸) 조치로 미국과 친미 국가들이 계속해서 베트남과의 접촉을 회피해 베트남의 경제사정은 매우 힘들어졌다. 베트남은 심각한 생필품 부족을 겪게 된 것. 당시 이러한 물자는 한국에서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었다.



이를 간파한 그는 1991년 서둘러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고는 베트남에 한국산 생필품을 공급하는 보따리장수로 변신했다. 이 선택이 큰 성공을 불렀다. 쓰레받기에서 중고 자동차까지 베트남은 모든 생필품을 빨아들였다. 덕분에 그는 한 달에 두 번 베트남행 배를 띄워 연간 1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무역인이 됐다. 이렇게 신나는 질주는 1993년 미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맺어 적대관계를 접고 평화관계로 들어서면서 급반전했다.

1억 인구를 가진 베트남이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자 거대한 시장에 눈독을 들이던 자본주의권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든 것이다. 이들은 신차를 판매하기 위해 ‘중고차는 공해 문제를 일으킨다’며 베트남 정부에 금수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수용해 중고차 금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그는 ‘베트남에서 누가 값비싼 신차를 사겠느냐’는 생각에 계속해서 중고차를 공급했다. 이 뚝심이 빛을 봤으면 좋았으련만 그가 수입한 중고차는 불법 판정을 받아 팔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날리고 몸만 빠져나와야 했다.




그는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베트남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진 ‘은둔의 나라’ 라오스로 들어가 유사한 무역을 시작했다. 라오스는 조용한 불교국가여서 베트남처럼 변화가 급격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쓴맛을 봤기에 라오스 정부의 선택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한국산 중고차를 수입해 팔았다.

생필품 공급이 안정되면 다음은 국가 발전을 위한 체제정비에 들어간다. 도로를 닦고, 공장을 세우고,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은행과 주식시장 등을 만든다. 그는 라오스의 발전에 맞춰 시멘트 공장을 짓고, 은행을 설립하고, 라오스 주식거래소 개설에 참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걸었던 것과 비슷한 ‘발전의 길’을 라오스에서 걷게 된 것이다.

최근 그는 라오스에서 ‘바이오 연료 제조창’을 발견했다. 자트로파라는 나무의 열매를 짜서 가공하면 바이오 디젤유가 되는데, 라오스의 자연환경은 자트로파 재배에 적격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바이오 디젤유는  배럴당 국제 유가가 35달러 이상이면 충분한 시장성이 있다. 그는 농업국가인 라오스 전역에 자트로파를 심으면 자신뿐 아니라 라오스 전체 농민의 소득이 증대될 수 있다고 보았다. 같은 판단을 한 라오스 정부는 즉각 그에게 제주도보다 넓은 땅에 자트로파를 심을 수 있는 권리를 줬다. 무역가에서 사업가, 금융가를 거쳐 그는 한순간에 라오스에서 가장 큰 땅을 가진 ‘농부’가 된 것이다.

농부가 된 그는 개인적으로 모아둔 돈 1백만 달러를 라오스 정부에 희사했다. 이는 라오스 역사상 가장 큰 기부였다. 이로써 그는 돈만 버는 기업가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발전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경쟁자들의 질시를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이러한 과거가 있기에 그는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실패와 성공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조직의 성패는 리더와 구성원이 어떤 비전을 얼마나 강하게 공유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희망과 에너지가 있으면 난관은 돌파할 수 있다.”

세계적 경제불황으로 답답한 시대, 활로를 한국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 한국의 경험이 필요한 곳은 도처에 널려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제2의 오세영’이 나온다면, 그리고 그들이 화상(華商) 못지않은 거대한 한상(韓商)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한국의 경제 영토는 무한대로 넓어질 것이다.

글과 사진·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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