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허경욱 차관은 “지금의 환율 불안정은 과도한 불안심리에서 나온 것이고 우리나라의 부채 지불 능력은 충분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담에 임했다.
달러 가치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세계 6대 외환보유국일 만큼 경제 규모도 큰데, 왜 이렇게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것일까요.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대외 의존도가 높아 위험할 것이라는 과도한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심리적 불안이 원화 가치 급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충분한 상황인가요. 정부 발표와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 외국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다릅니다. 단기외채 등 민감한 지표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단기외채는 1500억 달러 정도입니다. 유동외채를 합하면 1900억 달러입니다. 그중 400억 달러 정도는 회계학적으로는 부채지만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부분을 빼고 나면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2000억 달러가 넘기 때문에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400억 달러를 갚아야 하는 부채로 보기 때문에 국민이 더욱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외국의 시각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서울 주재 외신기자들에겐 이 400억 달러 부분을 충분히 설명했으며, 본사에도 알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 투자자의 불신도 심각한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국 투자자의 경우 숲만 보고 나무를 보지 못합니다. 즉, 큰 지표는 보지만 세부적인 지표를 잘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의 디폴트 위험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이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외신이 충분히 알지 못하면 우리 정부는 그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외신에 기고를 하고, 외신 기자들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영국 본사에 직접 찾아갈 계획입니다.
동유럽 상황도 심상치 않습니다. 동유럽발(發) 경제위기로 우리 외환시장이 직격탄을 맞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동유럽발 경제위기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나라가 동유럽에 빌려준 돈은 20억 달러입니다. 미미한 수준이죠. 실제로 시장이 걱정하는 점은, 유럽계 은행들이 동유럽에 돈을 많이 빌려줘 동유럽발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 우리나라에 빌려준 돈을 차입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걱정할 바 아닙니다. 먼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유럽계 자본 가운데 절반 정도는 영국계입니다. 영국계 자본은 동유럽에 빌려준 돈이 별로 없으며, 나머지 절반도 동유럽에 물려 있는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은행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동유럽 상황이 최악에 달해도 우리나라는 크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최근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쏠림이나 투기 현상이 있을 때 언제라도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외환시장의 인위적 개입은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물론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환율시장은 주식시장보다 예민하기 때문에 오버슈팅(과민반응)과 쏠림 현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는 정부가 과감히 개입함으로써 참여자들에게 이 부분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일도 중요합니다. 차선책인 셈입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인정했으며,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이런 수단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일각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내의 달러 실수요가 많아지고, 이에 따른 원화 가치 하락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달러 실수요는 오히려 줄고 있는 상황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수출입이 모두 줄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달러 실수요의 증감 자체가 환율의 현 수준을 설명하는 큰 요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환율 상황을 보면 10여 년 전의 외환위기 때보다 심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시와 지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원인과 현황 두 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원인은 두 시기가 전혀 다릅니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은 400%였고, 은행들도 매우 취약했습니다. 즉, 환율이 불안해질 요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 수준입니다. 은행 역시 평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12%로 매우 건전합니다. 단지 미국의 경제 위기 때문에 전 세계적 수요가 감소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현황 및 대응 측면에서도 두 시기는 전혀 다릅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외환보유고가 매우 적었습니다. 1997년 말 외환보유고는 80억 달러가 조금 넘었고, 단기외채는 그보다 700%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100%도 안 됩니다. 시장이 요동치니 국민은 당시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또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도 있습니다.
엔화 대비 환율은 더욱 불안합니다. 엔고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고,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엔화가 원화에 대해서만 높은 건 아닙니다. 요즘 엔화 자체가 굉장히 강합니다. 엔화가 강해진 이유를 흔히 ‘엔캐리 현상’으로 설명하는데, 엔화가 쌀 때 빌려서 투자한 자금이 일본 내로 회수되면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원화는 반대로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상황이 겹치다 보니 엔고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엔화 자본을 빌린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환율은 ‘양날의 칼’입니다. 엔화가 강하다 보니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우리의 주요 수출품은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이때 주력 사업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합니다. 또 대일 적자의 상당 부분을 부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 일본의 부품사를 한국에 유치하거나, 국내 부품사를 육성해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시기입니다. 일본 관광객을 유치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즉,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국내 경기를 보자면, 환율 불안으로 물가 상승과 소비 감소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나아질 때까지 상황이 좋아지긴 어려울까요.
먼저 환율 불안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달 말부터 일반 은행들이 본격적인 중·장기 차입을 시작합니다. 또 무역수지도 좋습니다. 2월 무역흑자가 33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는 40억 달러 정도입니다. 3, 4월에도 흑자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세계적으로 수요가 줄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요가 줄면 물가는 떨어집니다. 즉, 최근 물가가 다소 불안했지만 연간 물가는 2% 후반으로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여러 소비 진작책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작동되기 시작하면 대외 상황이 나아지기 전이라도 국내는 상당히 좋아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외환시장 안정과 경제성장률 상승을 위해 정부와 민간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기본은 해외에서 돈을 많이 벌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는 것입니다. 또 단기차입을 해결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이달 말부터 은행들이 중·장기 차입을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단기차입을 해결하면 외환시장은 빨리 안정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경제가 큰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 성격은 미국이나 유럽과 다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원인이 내부에 있었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기업, 은행 모두 건전합니다. 또 외환위기를 이겨낸 경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위기를 어느 나라보다 빨리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국민 모두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정부를 믿고 함께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리·이지은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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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