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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예관 개관 기념 초대전 여는 서예가 이무호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하얀 한지 위를 붓끝이 힘차게 내달린다. 거침없이 한 번에, 끊어짐 없이 곧게. 점과 선이 획을 이뤄 글자를 만들어낸다. 글자 그대로 서예(書藝)다. 문자를 소재로 만들어내는 조형예술. 서예가 이무호(63) 선생은 “서예는 법(法)을 지켜 예(禮)를 창조하고, 그 예를 통해 도(道)에 입문하는 예술”이라고 운을 뗐다.

‘소박한 초가집’이란 뜻의 초당(草堂)은 그의 아호(雅號)다. 그러나 차츰 잊혀가는 서예를 살리기 위해 육십 평생 서예 발전과 대중화 외길만 고집해온 그의 노력은 소박하다 할 수 없다.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운영위원장, 중국 사천연합서법예술학원 객좌교수 등을 맡으며 그간 국보 1호 숭례문 현판 해설문, 고산 윤선도 시비, 국보 242호 울진 봉평 신라비 등 여러 작품에 글씨를 새겨왔다.

이무호 선생은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은 한국 서예관 개관을 기념해 초대 전시회(5월14일까지)를 열고 있다. 이 중 관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다. 높이 3미터, 폭 10미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병풍 안에 담긴 애국가였다. ‘금수강산(錦繡江山)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제목 아래 1절부터 4절까지 빼곡하게 쓰인 애국가는 한자로 쓰였음에도 한민족의 절개와 위상을 실감할 만큼 위엄이 서려 있었다.

“한자는 중국만의 문자가 아닙니다. 오랜 역사 속에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동방의 국가들이 계속 써온 문자입니다. 상형문자로 만들어진 한자는 그 뜻을 정확히 몰라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이 서예를 통해 예술적 가치를 지닐 때 더욱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감동을 전해줍니다.”

안중근 의사 서거 1백 주년 기념 시, 무궁화 관련 헌시 등 이무호 선생은 예술로 승화된 한자 속에 우리나라의 기상을 표현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특히 25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선지에 한자 퍼포먼스를 즐겨 하며 서예의 ‘기(氣)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1999년 영국 왕실 초청으로 ‘목숨 수(壽)’자를 쓰는 퍼포먼스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음과 양의 원리로 쓰인 글자를 보면서 무궁무진한 기운을 느꼈다고 말했죠.”

5세 되던 해 조부의 권유로 서예를 접한 이무호 선생은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조차 입학하기 힘들었지만 붓만큼은 손에서떼지 않았다. 1972년 상경한 후에도 12만 장이나 되는 종이를 구해다가 매일 1백 장씩 글씨를 써나갔다. 그러던 8년 뒤 우연히 중국 서예계의 국부로 추앙받던 대만의 장대천(張大千)기념관을 방문하면서 큰 충격을 받고 서예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이후 이무호 선생은 최선을 다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필체를 두루 공부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태극서법이다. 음양원리를 접목해 자연의 원리를 그대로 닮아가는 이 서체는 3백여가지 수에 이른다.

이무호 선생은 더 많은 이들에게 서예가 주는 한자의 미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용의 눈물> <태조왕건> 등 사극 드라마의 타이틀 로고와 세트장 현판 등을 써왔고, 요즘은 도예가 법행 선생과 손잡고 도자기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 흘러가버린 역사를 되짚고 그것을 이 시대에 맞는 문화로 전달해내는 것은 서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글·김민지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한국서예관 Tel 02-741-8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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