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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첫 14좌 정복… 오은선, 히말라야를 품다




 

4월 27일 오전 1시 30분(현지시간), 오은선은 정상을 향한 마지막 캠프인 캠프4(7천2백 미터)에서 눈을 떴다. 4월 22일 베이스캠프(4천2백 미터)를 출발한 오은선은 다음 날 캠프3(6천4백 미터)까지 진출했지만 강풍에 발이 묶였다.

4월 24일 캠프1(5천1백 미터)으로 후퇴한 그는 4월 25일 다시 캠프2(5천6백 미터)로 나아갔다. 그리고 4월 26일 10시간의 강행군으로 캠프3를 건너뛰며 오후 3시 20분 캠프4에 도착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마지막 도전의 날 그를 깨운 것도 머리를 짓누르는 두통과 멈추지 않는 기침이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 잠시 주저하기도 했다.

“그냥 내려갈까….”

텐트 문을 열자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오은선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등반 장비를 하나씩 챙겼다. 따뜻한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고산지대에서는 주식(主食)과도 같은 따뜻한 물. 지겹기도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양식이다.
 

오은선은 KBS 촬영팀 2명, 셰르파 3명과 함께 오전 1시 45분 캠프4를 나섰다. 6명은 로프로 몸을 하나로 묶는 ‘안자일렌’ 방식으로 전진했다. 안자일렌 방식은 안전한 등반이 가능하지만 1명이라도 처지면 등반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등반을 시작한 지 5시간이 지나자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직사광선이 따갑긴 했지만 무엇보다 언 몸을 녹여주는 따뜻함이 반가웠다. 오전 8시가 되자 7천6백 미터 지점에 이르렀다. 지난해 10월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린 곳이었다. 당시 오은선 원정대는 강풍과 화이트아웃(짙은 안개로 1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때문에 물러서야 했다.

다시 찾은 여인의 마음을 알았을까. 안나푸르나는 뚜렷이 정상을 내보였다. 외길 끝 왼쪽에 있는 봉우리. 하지만 본격적인 사투는 그때부터였다. 단 한 걸음조차 내딛기 힘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안나푸르나 여신에게 애원을 했다.





 

오후 12시 30분,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구간을 지나면서 고통은 극에 달했다. 생과 사, 성공과 실패의 한길에서 자꾸 정신이 혼미해졌다. 예상치 못한 강풍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 다시 정신이 들었다. 13년을 기다린 순간이 바로 몇 미터 앞에 있었다.

오후 3시, 오은선은 13시간 15분에 걸친 사투 끝에 정상을 밟았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너무 기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랬다. 그저 감사했고 마냥 기뻤다. 새 역사의 주인공은 거친 바람에 섞인 울음과 함께 탄생했다.
 

오은선이 히말라야 고봉(高峰) 정상에 처음 선 건 13년 전이다. 그는 1997년 가셰르브룸II봉(8천35미터)에 오르며 처음으로 히말라야 8천 미터 이상 봉우리 등정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그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고산 등반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3년 에베레스트 한국 여성 원정대에 참가한 후(당시 정상 등정은 못함)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그에게 늘 아련한 그리움이었다. 그러다 1997년에야 그리움의 대상이던 산의 정점에 안겼으니 고통은 잠시, 제대로 신이 났다. 이후 히말라야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산들을 본격적으로 찾아다녔다. 산에 다니기 위해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등 발로 뛰는 직업을 찾아 나섰고, 스파게티 집을 직접 열기도 했다.

그러다 2004년 5월 에베레스트(8천8백48미터) 단독 등정에 이어 2006년 12월 한국 여성 최초로 7대륙 최고봉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은선을 주목하는 사람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도 별로 없었다.

오은선은 2007년 7월 K2(8천6백11미터)에 오른 후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는 2008년 4개, 2009년 4개의 히말라야 8천 미터급 고봉 정상에 서며 단숨에 여성 최초 14좌 완등 도전자 그룹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좋아하는 일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열정, 그리고 강인한 체력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오은선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지난해 7월 아끼는 후배이자 경쟁자이던 고(故) 고미영 씨가 낭가파르바트(8천1백26미터) 하산 도중 유명을 달리하는 아픔을 겪었고, 5월 칸첸중가(8천5백86미터)에 오른 것이 미등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올해 다시 히말라야를 찾았다. 그야말로 산을 향한 본능적 그리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오은선이 산에 끌린 건 33년 전인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서 바라본 북한산 인수봉에 매혹된 것. 그때 11세 소녀가 본 거대한 암벽은 언젠가는 오르고픈 도전의 대상이 됐다.

본격적으로 산과 인연을 맺은 건 대학교 1학년 때 산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다. 2학년 때 마침내 인수봉 앞에 섰다. 하지만 성큼성큼 올라가지 못했다. 두려움이 밀려와 텐트만 지켰다. 이후 인수봉은 그를 다시 불렀고 오은선에게 산은 곧 인생이 됐다. 대학 졸업 후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산을 다녔다. 그는 “주말에 제대로 등산을 하기 위해 평일에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오은선은 33년 전부터 산에 끌렸다. 그리고 13년 전부터 히말라야를 품기 시작했다. 그런 오은선에게 13시간의 사투는 짧았다. 그가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울어버린 건 13시간의 등반이 고통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젊음을 바친 히말라야가 드디어 자신을 온전히 안아준 데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안나프루나=글·한우신(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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