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소녀는 걷고 싶었다. 그러나 세 살 무렵 찾아온 병마는 소녀의 다리를 앗아갔다. 소녀는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이 없어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멍하니 창문 옆에 앉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소리 없이 흐느꼈다.
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본 사촌언니는 소녀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생애 가장 큰 선물을 안겨줬다. 고운 한복을 입고 하얀 학을 수놓는 자수공예 선생님 앞으로 데려간 것. 소녀에게 선생님은 선녀처럼 보였다. 그날로 소녀는 굳은 결심을 했다. 자신을 옭아맨 두 다리 대신 실과 바늘을 잡고 선녀 옷을 만들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서 자수를 놓지 않겠다고.
30년이 흘렀다. 2급 지체장애를 딛고 전통자수 공예가의 길에 들어선 이정희(48) 씨.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을 기념해 서울 한국예탁결제원 갤러리에서 전통자수 공예 전시회를 열고 있는 이 씨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3년에 걸쳐 힘들게 완성했다는 청룡백호도 병풍부터 20대에 처음 만든 도자기 병풍까지 그간 이 씨의 자수 인생이 화폭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런 날이 오기까지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돌부처처럼 한자리에 앉아 자수를 한다는 건 너무도 힘든 일. 이 씨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부여잡고 기어 다니면서 수를 놓았다. 더 나은 자수기법을 연마하기 위해 그는 부모 몰래 고향 전북 정읍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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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꼼짝없이 앉아서 자수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래도 처음 자수를 배울 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던 제가 손끝에서 한 땀 한 땀 꽃을 피워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요. 어디 꽃뿐이겠어요? 아름다운 자연이 제 손끝에서 그려지는데, 움직일 수 없어도 매일 자수 속에서 신선놀음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죠.”
스물여섯 살 때 자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중요무형문화재 80호 자수장 한상수(75) 선생 밑에서 2년간 가르침을 받았다. 용기를 내 명장 신청을 하려 했으나 “2년 동안 배운 건 기능공이다. 5년 이상 되지 않으면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상수 선생의 단호함에 집으로 돌아가 홀로 수놓기 시작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혼자서 계속 자수를 하기로 결심했는지 모르겠어요. 다행히 어머니가 곁에 있어 외롭지 않았어요. 제 작품의 절반 이상은 어머니가 도와주신 거예요. 집에서 공방을 차리고 자수공예를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어머니 덕분입니다.”
하루 10시간 쉬지 않고 자수에만 매달렸다. 어머니는 매일 실을 꼬아주고 그가 못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왔다. 어머니의 지극 정성 덕분에 그는 자색, 백색, 황색 등 5방색을 주조로 꼰사(꼬임이 있는 실)로 수를 놓는 ‘궁수(宮繡)’ 기술을 치열하게 터득해갔다. 그의 손끝은 온통 울퉁불퉁한 굳은살로 뒤덮였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한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전통자수 공예로 돈을 벌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전통자수를 하려면 재료값이 만만치 않게 나가요. 고가의 실을 써야 하기 때문이죠. 아껴서 쓴다고 썼는데, 어느 날 보니 실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몇 달 동안 힘들게 만든 활옷이며 방석 등을 내주고 재료와 맞바꿨어요. 제 자식처럼 고이 정성들이며 만든 작품을 가게에 가져다주는데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라고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작품 출전은 유명한 선생님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자수공예가들이 대회에 입상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1996년 전북 전통공예대전을 시작으로 제13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대상 등 40회 이상 공예작품전에 입상했다. 장애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시집가는 날’이란 제목의 화관(花冠)은 2004년 청와대에 기증됐다. 이후 이 씨는 나사렛대 총장의 제안으로 전임교수 제의를 받아 학생들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수공예를 가르치게 됐다.
“아직까지 전통자수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나서는 제자들은 없어요. 그러나 꾸준히 전통자수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알린다면 저처럼 자수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후학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저처럼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이 자수를 배운다면 성취감과 도전의식을 키울 수 있어 좋고, 일반인들에겐 자기 수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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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더 이상 자기만족을 위한 작품은 만들지 않는다. 세계 속 ‘한국의 아름다움’을 꽃피울 전통자수를 알리기 위해 거울, 화장대, 넥타이 등 몇몇 소품에도 도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 오사카와 고베에서 연 전시회가 계기가 됐다.
“처음 일본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았어요. 일본인들이 한국의 미를 몰라줄까 걱정했거든요. 하지만 기우였어요. 많은 분이 찾아와서 ‘정말 아름답다’며 얼마나 용기를 줬는지 몰라요.”
그의 전시에 감탄한 50대 일본인 여성은 올해 8월 연꽃축제 때 한국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이 씨에게 자신의 어머니 옷에 수를 놓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내 손으로 만든 자수공예 작품들로 우리 전통예술을 알릴 수 있어 뿌듯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분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는 전통자수를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장애를 가졌다고 못할 것은 없어요.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꼭 맞는 능력이 주어져 있어요.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제가 한 땀 한 땀 수놓는 바느질은 처음엔 보잘것없지만 이것이 꽃을 피우고 나무가 됐을 때 ‘희망’이 됐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요.”
글·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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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