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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인도 등 오지마을 도서관 만드는 여행가 김형욱



 

‘1천 개의 도서관.’ 김형욱(31) 씨의 꿈은 세상 사람들이 오지라고 부르는 곳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10년 안에 1천 개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빠듯한 사람들에겐 너무 크고 화려해 보이는 꿈이지만, 돈이 많아서 베푸는 자선이나 젊음의 객기로 시작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생활여행자’라 칭하는 그는 집 한 채, 자동차 한 대 없다. 여행을 다녀오면 통장 잔액은 언제나 0원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은 누나 집이나 친구 집에서 얹혀 지낸다. 그런데도 그는 “안 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안 될 이유가 없다.’ 요즘 그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이다.

무모해 보이는 그의 꿈은 벌써 이뤄지고 있다. 지난 2년 사이에 인도와 네팔에 세 곳의 도서관을 열었고, 다음 주면 네팔에 도서관 다섯 개가 더 생긴다.

세종대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한 그는 전공 공부보다 산을 더 좋아했다. 시골 학교 교장선생님 아들답게 모범생으로 살 수도 있었지만 세상의 기준대로 사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는 “자유롭고 싶었고, 의지대로 삶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2006년 중국에서 포르투갈까지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에 나섰다. 8천 킬로미터를 달려간 자전거 여행은 동료들과 뜻이 맞지 않아 파키스탄에서 끝났다. 그는 파키스탄에 혼자 남아 배운 적도 없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분노와 방황을 가라앉혀준 것이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이었다.
 

사진을 찍는데도 나 몰라라 연신 코만 파는 아이, 사진 찍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이, 집 안에 있다가 ‘사진’이라는 말에 뛰어나와 숨을 헐떡이는 아이, 옆에 앉은 동무가 웃으니까 영문도 모른 채 이유도 없이 같이 웃는 아이…. 그런 아이들을 찍으면서 그는 행복이 뭔지 배워갔다. 파키스탄, 예멘, 인도, 네팔의 오지를 여행하면서 그의 가슴에 들어온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진 유적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채워가면서 그들의 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백명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99명이 ‘아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식들이 배우고, 자신들보다 나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년 수입이 20만~30만원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라 책 한 권 사줄 수 없는 형편이죠. 그때 ‘다음에 올 때는 영어책을 갖다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2008년 히말라야 메루피크 등반을 갔을 때 현지인 짐꾼에게 또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역시 “자식들이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함께 간 사람들에게 “히말라야에 오르는 우리 꿈을 도와주는 저들의 꿈도 도와주자”고 했다. 2천5백 달러를 모아 인도 뉴델리에서 가장 큰 서점에 가서 총천연색 백과사전 등 좋은 책을 골라 1백50권을 샀다. 1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책을 기차와 버스와 당나귀로 인도의 다스다 마을로 날랐다. 그렇게 해서 마을에 하나뿐인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생겼다.





 

지난해 봄에는 후원의 밤 행사를 통해 기증받은 2백 권의 책을 네팔 포카라에 가져갔고, 가을에는 네팔 마셀에 세 번째 도서관을 만들었다. 영어책을 보내는 이유는 영어를 알고 모르는 차이가 그들의 생활을 몇 배로 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시작이 반 이상임을 실감한다. 조그맣게 시작한 일이 자꾸자꾸 커지고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에 그는 아는 이들에게 ‘영어책이나 학용품, 문구 등을 보내달라’는 ‘행운의 편지’를 보냈다. 행운의 편지가 돌고 돌면서 전국 각지에서 수백 권의 영어책과 1백 킬로그램이 넘는 장난감이 모였고, 지금도 계속 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동양물산에서 1억원어치의 영어책을 후원했다.

1백 킬로그램당 1백만원 정도 드는 운송비도 만만치 않은데, 다행히 운송비를 후원해주겠다는 고마운 사람도 만났다. 어떤 이는 ‘현지에 가서 책을 사면 물류비만큼 더 살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모은 책으로 1천 개의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책 한 권이 꿈 하나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무 책이나 주는 티만 내거나 못사는 나라 가난한 아이들이 불쌍해서 책을 보낸다는 생각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책을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보낸 책이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올해 그의 목표는 공공도서관에서 영어책을 모으는 사진전을 전국의 공공도서관을 돌며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후원의 밤 행사도 정기적으로 열고, 자신이 없어도 영어책을 모으고 도서관을 만드는 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비영리단체도 만들 계획이다. 또 문화 콘텐츠가 부족한 시골 아이들에게 ‘게릴라 전시회’를 열어주기 위해 중고차 한 대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난해 9월 여행 중에 찍은 사진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판>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인물 부문 대상을 받기도 한 그는 4월 4일까지 서울 삼청동 미음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사진 판매 수익금은 지난해 12월에 낸 사진 에세이집 <손끝에 닿은 세상>의 판매 수익금과 함께 도서관 만들기에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보낸 책으로 1천 개의 도서관을 만든 다음엔 미국과 유럽으로 나가 그곳의 마음을 모아 3만 개의 영어책 도서관을 세상 가장자리에 세울 생각입니다.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홈페이지 이름은 ‘월드지(worldedge)’다. ‘세상(world) 가장자리(edge)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그는 세상 가장자리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세상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있다.
 

글·이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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