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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할머니의 뜻,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김밥할머니’ 고(故) 이복순(법명 정심화) 할머니의 이야기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김밥을 팔면서 힘들게 번 돈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던 그의 나눔 정신이 교과서에 실려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것.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미래앤컬처그룹 발행) ‘아름다운 사람들’에 소개된 이 할머니는 듣기, 말하기 과제로 언급돼 아이들에게 본받을 만한 분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이 할머니는 ‘김밥할머니’의 원조다. 김밥할머니는 한때 이 할머니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였지만, 이제는 평생 어렵게 번 돈을 사회에 기증하는 미담의 주인공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다. 대전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 할머니에게 지역민들이 붙여준 별명은 이제 그와 같이 선행하는 전국의 또 다른 할머니들에게 붙여주는 ‘예명’이 됐다.

이복순 할머니는 1914년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태어났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남편과 외아들을 두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39세 때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가 되는 시련이 찾아왔다. 졸지에 가장이 된 그는 그 후 30년 동안 행상을 하거나 여관을 운영하며 재산을 모았다. 그는 가족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운동회나 행사가 열리는 곳을 찾아가 김밥과 음료수를 팔기도 했다.

할머니의 외아들 임채훈(64) 씨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가 열리면 김밥을 머리에 이고 와 팔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이런 사연이 알려지면서 김밥할머니라는 별명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와 충남대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 당시 충남대 오덕균 총장과 안병기 기획실장에게 ‘어느 할머니가 부동산으로 장학기금을 기증하려고 하는데 받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기증 의사를 밝힌 부동산은 그때 시가로 50억원에 달했다. 당시로서는 개인이, 거액의 부동산을, 그것도 지방대에 기증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대전일보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김밥할머니의 거액 기부 소식은 그해 2학기 내내 대학가와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이 할머니의 법명을 따 이름을 붙인 정심화장학재단 창립총회는 이듬해인 1991년 1월 서울에서 열렸으며, 문교부(현 과학교육기술부)에서 재단 창립총회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기도 했다. 정부는 이 여사의 따뜻한 기부 정신을 기리고자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했다.

정심화장학재단은 1992년부터 지금까지 2백32명에게 4억7천7백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또 할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2년 8월 정심화국제문화회관 기공식도 가졌다. 2000년 완공된 정심화국제문화회관은 한때 국고 지원을 받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도 기부문화의 상징이자 대전 시민들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꼽힌다.
 

이 할머니는 정심화국제문화회관 기공식 직후인 1992년 8월 7일 충남대병원에서 향년 7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우리 곁을 떠났지만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사회에 기부하는 제2, 제3의 김밥할머니는 매년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한편 이 교과서는 김밥할머니 사연과 함께 따뜻한 기부를 앞장서 실천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선생의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권정생 선생은 책 판매 인세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으며, 유일한 선생은 회사를 비롯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공주교육대 박태호 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이복순 할머니 등의 이야기를 실어 간접적으로 세 분의 숭고한 삶의 의미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수영(대전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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