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의 한 의수족 업체에서 10년 안팎씩 일해온 장민석, 정상민, 선동근, 이성욱 씨는 ‘팔·다리 제작의 달인’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가을 에이블복지재단이 ‘장애인 의수족 무료 수리사업’을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뭉쳤다.
한 자동차 업체의 도움으로 2.5톤짜리 트럭을 고장난 의수족을 고쳐주는 ‘에이블 디자인 카(Able Design Car)’로 개조하면서 이들의 봉사활동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11월 17일 경기 이천시 모가면에서 70대 할아버지의 의족을 고쳐준 것을 시작으로 이후 이들이 의수족과 휠체어를 수리해준 장애인은 70여 명에 달한다. 경기 가평, 충남 부여는 물론 경남 산청, 강원 화천·인제 등 길이 험하고 외진 마을만 찾아다녔다. 한번 떠나면 2박3일은 기본.
장 씨는 강원 철원에서 만난 70대 노인을 떠올렸다. 지역 장애인단체를 통해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온 교통사고 절단 장애인이었다. 목발을 짚고 온 노인은 검정 비닐봉지에서 두 동강이 난 의족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방치한 지 십수 년이 됐는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장 씨에게 노인은 “아마 못 고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두어 시간 진땀을 흘리며 의족을 고치는 동안 노인은 그의 손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고치고 나서 한 시간 남짓한 조절작업 끝에 의족이 발에 딱 맞은 순간, 무뚝뚝하던 노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트럭은 마을의 좁은 도로를 지나기 쉽지 않은 탓에 보통 마을회관이나 식당 툇마루에 ‘판’을 펼칠 때가 많았다. 의수와 의족을 현장에서 뚝딱 고쳐준다는 소문에 벽장 속에 넣어둔 의수족을 들고 몰려오는 장애인들이 줄을 섰다. 혹시나 기회를 놓칠까 초조하게 눈을 맞추는 어르신들을 두고 자리를 뜰 수가 없어 발전기를 돌려 불을 켜고 야간작업을 벌여야 했다.
이 씨는 그중에서도 손목 아래가 절단돼 찌는 듯한 한여름에도 면장갑을 끼고 살아야 했다는 한 노인이 의수족을 전달받고 울먹였다는 사연을 전했다.
“어르신이 ‘어쩌면 이렇게 내 피부색과 똑같을까. 이걸 몰라서 평생 장갑을 달고 살았네’ 하시더군요. 보시다시피 저도 왼쪽 팔꿈치 아래가 절단된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심정이 남 얘기 같지 않았죠.”
‘에이블 디자인 카’를 점검하며 바삐 움직이던 정 씨의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해 보였다. 그가 바짓단을 쓰윽 올리자 의족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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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사고로 오른쪽 무릎 관절 아래를 잃었습니다. 지체장애 3급이지만 생활엔 별 지장이 없어요. 장애인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데는 ‘나도 당신과 똑같은 장애인’이란 사실보다 더 좋은 게 없어요. ‘자네도 다리가… 언제쯤? 어허, 그럼 내 후배구먼’ 하면서 바짝 다가옵니다.”
‘에이블 4총사’는 올봄에도 날씨가 풀리는 대로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 환자들의 의수족을 고쳐줄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은 복지재단의 예산이 넉넉지 않아 더 많은 장애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정 씨는 “‘이번 한 번 오고 안 올 거지?’라고 묻는 장애인들에게 ‘꼭 다시 오겠다’ 며 손가락을 걸어주고 싶다”고 했다. “자동차 ‘에이블 디자인 카’는 ‘새로운 인생을 디자인하자’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 차를 타고 발길 닿는 곳마다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글·채성진(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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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