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의 작품 <토지>는 소설이기에 앞서 ‘사투리’의 경연장이다. 대한민국 팔도의 이런 저런 토속 어휘들이 소설 전편에 걸쳐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토지>의 이런 ‘방언’들을 모조리 ‘표준어’로 바꿔 개작한다면 어떨까. 아마 독자들의 반응은 지금까지와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특정 지역의 토착적 어휘와 ‘표준말’이 주는 어감의 차이는, 사실 한두 줄의 글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토지>에서 함경도 출신인 공노인이 내뱉는 말 “무시기 돌아감서리 생각하이 맴이 좋?앴습매” 표준말 “뭐 돌아가면서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로 바꾸었다고 가정하자. 독자들의 감상은 속된 말로 십중팔구 “확 깨는” 것일 수도 있다.
지역의 토착적 어휘들은 그 자체로 문화다. 나아가 무형의 유산치고 그만큼 값어치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말이 한 나라, 한 국가의 완결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국립국어원 김덕호 박사의 행동반경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의 공직자들 가운데 방언학을 전공하고 ‘지역어’ 연구를 담당하는, 거의 유일한 실무책임자이다.
- ‘지역어’라는 말이 다소 생소합니다.
“지역 특유의 언어를 가리킬 때 흔히 쓰는 용어는 방언, 사투리 등입니다. 한데 이런 표현에는 지방을 낮춰본다든지, 혹은 바른 말이 아니라는 가치 판단이 개입돼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중립적인 뜻을 지닌 지역어라는 용어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 그 같은 논리라면 표준어 혹은 표준말이라는 용어도 수정이 필요하겠습니다.
“지역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 표준어는 사실 서울, 경기 지방을 기반으로 한 지역어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 국가에서 기준이 되는 말, 즉 표준어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표준어보다는 공통어라는 지칭을 더 선호합니다. 공통어란 전국 어디서나 문자 그대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말이라는 뜻이니까요.”
-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예컨대 학교에서는 지역어를 배척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강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표준어 교육을 강력히 권장하는 분위기였는데요.
“한 나라의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최근의 변화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합니다. 공통어는 공통어대로 발전시키고, 또 지역어는 지역어대로 보존 발전시키면서 좋은 말들을 많이 찾아내어 표준어에 편입시키면 그만큼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나아가서는 이런 과정이 우리 민족의 정서를 더욱 풍요롭고 조화롭게 하지 않겠습니까.”
- 우리나라 지역어는 단어를 기준으로 할 때 총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솔직히 말하면 대략적인 규모조차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된 상태입니다.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 지난 2004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지역어 조사 사업을 진행 중이므로 2013년께면 대강의 윤곽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 10개년 지역어 조사 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행정구역 중심으로 대한민국 각 지방의 지역어들을 조사하는 한편 북측의 연구자들과도 협력해 북한 지역의 방언들도 동시에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말의 원형이 독특하게 보존되고 있는 중국의 조선족 거주 지역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거주 지역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어휘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현장 녹음 조사도 병행하는 방식입니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 남한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지역어가 모두 몇 종이나 되는지요.
“흔히 경기도 방언, 강원도 방언, 충청도 방언, 전라도 방언, 제주도 방언, 경상도 방언 등의 표현을 쓰는데, 사실 같은 경상도라도 세부 지역에 따라 방언이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경상북도의 예를 든다면, 물음 어미를 중심으로 ‘~니껴’권, ‘~해여’권, ‘~능교’권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각 대구를 중심으로 북부, 서북부, 서부 등으로 지리적 방언권역을 갈라볼 수 있습니다.”
- 우스갯소리일 수도 있는데, 영남 지역어를 구사하는 분들이 일본말을 더 잘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지역어가 보기에 따라서는 국가적인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음운학적으로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은 기본 모음이 10개인데, 대부분의 영남 지역에서는 ‘ㅐ’와 ‘ㅔ’, ‘ㅓ’와 ‘ㅡ’의 구분이 되지 않는 등 기본 모음이 사실상 6개만 사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 모음은 5개인 일본어와 비슷한 셈이지요. 모음 숫자가 적은 대신 경북 지역어의 경우 우리말 중에서 고저장단이 가장 확실한 편에 속합니다. 고저장단을 통해 나름대로 말의 전달력을 강화한 셈이지요. 이런 점에서도 영남의 지역어가 고저장단이 확실한 일본말과 비슷한 속성이 있습니다.”
- 지역어가 우리말을 구성하는 큰 자산 가운데 하나라고 하지만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역어의 중심은 해당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주민들입니다. 각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지역 말에 자부심을 갖고 사용해야 합니다. 또 지역어들 가운데 상당수는 공통어 혹은 다른 지역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산(山)’의 제주도 말인 ‘오름’ 같은 게 대표적인 예인데, 만일 앞으로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단어 1개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입니다. 아울러 ‘오름’이라는 단어와 연계돼 있는 수많은 제주도의 토속 이야기 또한 변색이 되어 제맛을 잃게 되겠지요. 문화 콘텐츠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각 지역의 민속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진도에서 지신굿을 하는데 지역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흥이 나겠습니까. 지역 주민들은 지역어를 사랑하고, 또 국가적으로는 공통어와 표준어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한편 지역어가 위축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지역어 계승 발전의 요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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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