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몇번이나 깎아냈는데 어느새 또 이렇게 생겨났어요.” 나유림(55)씨는 오른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보여주면서 쑥스러운 듯 이렇게 얘기했다.
나씨의 손바닥 집게손가락 밑둥치에는 굳은살이 밤톨마냥 볼록 솟아 있었다. 웬만큼 험한 노동을 한 사람의 손바닥보다 나씨의 손은 거칠었다.
“아침 10시에 운동을 시작해서 집에 오면 밤 9시 정도니까, 하루 종일 탁구채를 쥐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굳은살이 끝없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장애인 탁구 국가대표 선수인 나씨에게 손바닥의 굳은살은 필연인 것처럼 보였다. “제가 성격이 좀 그래요. 안 하려면 몰라도, 하면 속된 말로 끝장을 보는 스타일입니다.”
나씨는 실제로 연습 상대들 사이에서는 ‘독한 여자’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서너 시간 공을 치고 난 뒤, 상대가 “그만하자”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하루 예닐곱 시간을 탁구대 앞에서 보내는 사람이다.
대구의 집 근처 탁구장에서 그가 때리는 공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하루 평균 1만개가 훌쩍 넘는다. 나씨의 연습량은 지켜보는 이들의 기를 질리게 할 정도다.
나씨는 지난 9월 6일 개막한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했다. 장애인올림픽 탁구는 크게 휠체어와 스탠딩 2개 부문으로 나눠 치러진다. 두 다리가 불편한 나씨는 스탠딩 부문 대표이며 목발을 짚고 공을 친다.
“제가 오른손잡이이지만 실은 오른손보다는 목발을 짚고 있는 왼손 쪽이 더 힘들어요. 몸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공을 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항상 즐거움이 앞섭니다.”
나씨는 “‘늦게 배운 도둑질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는 말이 제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가 장애인 탁구에 입문한 것은 지난 2005년 여름, 나이 쉰을 넘긴 뒤였으니 늦깎이도 한참 늦깎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면제해 준다는 바람에 탁구부에 들어가 탁구채를 잡아본 적이 있었지만, 한동안 그냥 잊고 지냈어요. 정말 먹고살기에 바빴거든요. 한데 수년 전 어느 날 아이 셋을 다 키워놓고 여유가 생겨 친구들과 함께 스포츠센터에 수영하러 갔다가, 그만 장애인들이 탁구 치는 걸 본 거예요. 무슨 대회였던 것 같은데, 20~30대의 젊은이들이 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만큼은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리에서 대회 주최측에 좀 끼워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경기마다 우승 독차지…“돌연변이 나타났다”
즉석 대회 참가가 거부된 나씨는 속으로 오기가 발동해 그날로 탁구 라켓을 장만했다. 그리고 딱히 코치도 없이 혼자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고선 입문 3개월 뒤 출전한 전국 장애인 강릉오픈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저 언니 무섭다”라는 말이 상대 쪽 벤치에서 들려왔다. ‘어디서 돌연변이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은 지 1년도 채 안 돼 나씨는 국내 장애인 스탠딩 탁구계를 평정하다시피 했다.
그가 지금까지 국내외 대회에서 수집한 메달은 30개. 그 중 24개가 금메달이었다. 최근 서울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나씨는 입문 약 2년 만에 마침내 올림픽 티켓을 땄다. 50대에 신인으로서 장애인올림픽에 나가는 영예를 거머쥔 것이었다.

“주부, 며느리, 또 엄마로서는 물론 탁구선수로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가족들의 보살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심성을 가진 남편, 그리고 착한 아이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나씨는 장애를 갖고 있던 자신을 아내로 맞은 뒤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남편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나씨는 1970년대 한창 유행하던 펜팔을 통해 현재의 남편과 평생 반려의 연을 맺었다.
나씨에게 장애가 찾아온 것은 여섯살 때 동네 또래 남자 아이가 그를 밀어뜨리면서였다. 이때 넘어지면서 왼쪽 다리를 다치게 되고, 그것이 골수염으로 번지면서 장애가 됐다.
여기에 21살이 되던 해 결핵성 관절을 앓는 바람에 오른 무릎까지 성치 않게 됐다. 그럼에도 생계에 급급하다 보니 뒤늦게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오른쪽 무릎은 지금까지 4차례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통증과 염증이 자주 도지는 형편이다.
“저를 너른 품으로 감싸준 게 남편이라면, 평소 삶의 힘을 불어넣어 준 것은 아이들이었어요. 아이 셋 모두가 자라면서 양 다리가 불편한 저를 조금도 창피해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도 ‘엄마, 엄마’ 하며 큰소리로 저를 부르고 다녔던 착한 아이들이 있었기에 몸이 불편하지만 힘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나씨 사랑은 식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말수가 많은 편이라는 둘째 아들의 응원 메시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둘째 아들 소진헌 씨는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한국대표단인 ‘팀 코리아 2008’ 게시판에 얼마 전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힘내요. 못난 아들이라 많은 도움도 못 드리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아들은 우리 엄마가 너무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엄마 파이팅!!!”
나씨는 내심 이번 장애인올림픽에서 메달을 간절히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의지와 국가대표 선발만으로도 그는 이미 ‘인생 금메달’을 목에 건 사람이었다. 베이징올림픽 참가는 메달 획득에 관계없이 그에게는 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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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