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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에 있는 원묵고등학교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교육의 현장이다. 이 학교에서 두 마리 토끼란, 요컨대 공부와 인간성이다.

원묵고등학교에 따라붙는 국내 최초의 ‘개방형 자율학교’라는 타이틀은 그래서 자랑이지만, 한편으로 짐이기도 하다. 성적 지상주의라고 할 만한 우리 교육 풍토에서 학력 신장에 더해, 인간성 함양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신입생을 받은 원묵고등학교는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오는 7월이면 3개 학기에 걸친 학사 운영 경험을 쌓게 된다. 이 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 학생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지향(17) 학생에게는 국내 최초의 개방 자율고 학생으로서 고교 과정의 딱 절반을 보내게 되는 셈이기도 하다.

“지난 약 1년 반의 학교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어요.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우리 학교의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아요.”
박지향 학생회장은 생각을 가다듬으려는 듯 큰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좋았던 일’들을 줄줄이 풀어놨다. 6월 초에 다녀온 양로원 봉사활동에서부터 지난달의 농촌 체험기, 지난해의 풍물 대회 참가에 이르기까지, 이런 저런 기억들을 쏟아냈다.
박 학생회장이 예로 든 ‘즐거웠던 기억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교과 성적 향상과는 대체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들이었다는 점이다.

-학과 공부는 역시 재미가 없나 보죠.
“아니에요. 수학이랑 과학 과목을 좋아해요. 그러나 공부는 어느 학교를 다니든지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우리 학교에는 여느 고등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그만큼 많아서 좋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학교생활이 입학 당시 기대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는 얘기네요.
“입학할 때만 해도 개방형 자율고등학교가 정확히 어떤 학교인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학교였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색다른 것을 좋아해서 지원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거지요.”

-현장체험은 즐거울지는 몰라도 대학입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시간만 빼앗기고….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양로원 봉사활동 때 일이었는데요. 하루 종일 청소를 하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언니 오빠들이 쉬지 않고 칭찬을 해줘 보람을 느꼈습니다. 학교 생활을 하는데 절로 힘이 난다고 할까요. 또 체험활동이 많은 편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는 전혀 아니거든요.”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체험학습이나 특별활동 등을 빼면 학과 수업은 일반 고등학교와 마찬가지지요.
“수업시간이나 학과목 숫자, 야간 자율학습 등은 보통 고등학교와 똑같은 것 같아요. 하지만 수업 분위기나 선생님들의 구성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면 선생님이 친절하게 깨워줍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해요. 또 영어나 일본어 같은 외국어의 경우 다 원어민 선생님이 수업을 합니다.”

-학교 분위기가 어딘지 외국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새 건물이어서 그런지 학교 시설들이 좋은 것 같아요. 실제로 야간 자율학습실은 도서관식으로 개인별 칸막이 좌석들로 돼 있어요. 식당도 깨끗하고 널찍합니다. 체육관도 잘돼 있고요. 한데 시설만 좋은 것은 아니고요, 학부모 대상 공개수업이라든지 학생에 의한 선생님 평가제도 등 다른 학교에는 없는 제도들도 많습니다.”

-장점이 많다고는 하지만 대학입시 스트레스 받는 것은 똑같잖습니까.
“제 경우는 특별활동으로 풍물을 했고, 현재는 학생회에서 일하는데 일반 학과목 수업시간보다는 특별활동과 학생회 일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운 시간들이었거든요. 물론 저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스트레스는 오히려 학생들보다는 선생님들이 더 받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명문대학에 입학을 많이 시켜야 알아주잖아요. 최초의 개방형 자율학교라는 점에 대해 학생들은 자부심이 큰데,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대학 진학률 때문에 압박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교실에 들어오면서 보니까 이 학교 학생들이 유달리 인사성이 좋고, 예의가 바른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예절 교육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학교에서 인간성 교육을 중시하기 때문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인사 잘하고, 친절한 우리 학교 풍토에 대해 학생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박지향 학생회장은 인터뷰 내내 차분하면서도 밝은 표정이었다. 대학입시에 대한 중압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했다. 천성 탓일 수도 있지만, 교과목 성적에만 매달리지 않는, 자율과 인성 중시의 이 학교 특유의 분위기도 영향을 준 것처럼 보였다.


개방형 자율학교란

교사선발부터 교과운영까지 학교 자율로

개방형 자율학교 제도는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위해 지난해 처음 도입됐다. 2007년 서울의 원묵고등학교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4개 학교가 개방형 자율학교로 지정됐으며, 올해 6곳이 추가로 문을 열었다.

개방형 자율학교는 미국의 차터 스쿨(Charter School)과 유사한 개념의 학교로 말 그대로, 교사 선발에서부터 교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학사의 많은 부분이 학교 자율로 이뤄진다. 원묵고의 경우 지난해 신입생 모집 때 경쟁률이 6대 1에 육박하는 등 지역사회의 큰 관심을 모았다.

개방형 자율학교는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재정지원을 받는 편이며, 학사 운영도 튼실해서 공교육 다양화에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고교 교육의 성패가 이른바 명문대 진학률로 가늠되는 우리 풍토에서 이들 학교가 언제까지 인기를 모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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