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정순갑(54) 기상청장은 평소 여간해서 신문이나 방송의 일기 예보를 보지 않는다. 날씨 예보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의 수장으로서는 의외다. 대신 정 청장은 시간만 나면 컴퓨터를 켜고 그 스스로 날씨를 예상해 본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야외 친목 모임이 있거나 집안의 대소사 등을 앞두고서는 더욱 그렇다. 그의 일기 예보는 물론 전문적인 기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기상청장인 그가 날씨를 손수 예상하는 것은 휘하의 기상 예보관들이나 방송사의 기상캐스터 등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이보다는 그 역시 한 사람의 예보관으로서 스스로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정 청장은 1983년 대학원 졸업 후 예보관으로 기상청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지금까지 거의 줄곧 예보 업무만을 해온 이 분야 국내 최고의 베테랑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예보라는 게 말 그대로 예측 업무입니다. 똑같은 데이터를 두고서도 예보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해석이 달라지면, 예상이 달라질 수 있는 거지요. 맞힐 확률로만 따지자면 아마도 예보관들의 예상이 저보다는 더 높을 것입니다. 9명이 한 팀이 돼서, 숙고 끝에 내리는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제 스스로 날씨 내다보기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한편으로 업무이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이기도 하거든요.”
“날씨 일은 우주 섭리에 순응하는 것”
정 청장은 ‘날씨 일’은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상청의 캐치프레이즈인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을 예로 들며, 하늘이 곧 우주이고 자연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의 직업관은 물론 인생관까지 한 두름에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 청장은 지난 3월 7일 13대 기상청장에 취임했다. 기상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날로 점증하는 반면, 기상 예측은 하루가 다르게 어려워지는 시대에 국가의 기상 업무를 책임지는 자리를 맡은 것이다.
“허투루 하는 얘기 아니라, 사실 어깨가 무겁습니다. 날씨라는 게 원래 변화무쌍한 것인데, 최근 들어서는 기후변화로 인해서 더더욱 종잡기 어렵게 됐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날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서 일할 맛도 나고, 의욕도 갖고 있습니다.”
정 청장은 기상청에 쏟아지는 비판과 불만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이 자체 체육행사 날만 잡으면 비가 온다”는 등의 비아냥거림까지 나돌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제가 정말로 두렵고 무서운 것은 국민들의 무관심입니다. 통계적으로 우리 기상청의 예보 수준이 높아졌음에도 국민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은 기상에 대해 그만큼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와 국민들의 체감 정확도는 10%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이를 그는 기상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진 때문으로 분석했다. 기상 예보를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경기를 보는 안목도 크게 향상됐고, 기대하는 경기 수준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눈이 온다 안 온다, 비가 내린다 안 내린다 정도의 예보로는 더 이상 ‘하늘 같은’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좀더 빠르고, 좀더 세밀하고 정확한 예보를 국민들이 바란다는 것이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정 청장은 체감 정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올해 안에 이른바 ‘읍면동 예보’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읍면동 예보란 ‘디지털 예보’ 시스템으로 우리 국토를 사방 5km 단위의 구획으로 세분해 내는 예보다. 현재 시험 운영 중인 이 예보 시스템이 연내에 자리를 잡는다면 국민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동네 단위로 날씨를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두루뭉수리 예보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콕콕 짚어서 세세하게 날씨를 예상하다 보면 비난을 들을 소지는 오히려 더 커질 수도 있다. 정 청장은 그러나 “기상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속된 말로 ‘깨져야’ 그만큼 성숙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수년 내 현재 세계 10위권에 턱걸이하고 있는 기상 예보 수준을 6위권으로 끌어올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상 예보의 수준과 정확도에서 최소한 우리의 국력보다 더 앞선 순위에 들겠다는 것이다.
기상 선진국이 중장기 목표라면 ‘악기상’과 기후변화 대책은 발등의 불이다. “‘황호태대지’는 사실 우리 기상인들에게는 영원한 숙제입니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좀더 촘촘하게 관측망을 짜고, 직원 한 사람이 두 사람, 세 사람 몫을 하면 악기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상 예보 수준 세계 6위권 목표
‘황호태대지’는 기상청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일종의 은어다. 황사와 집중호우, 태풍, 대설, 지진 등 대규모 인명, 재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대표적인 5개 재해성 기상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정 청장은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내놓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악기상이 더욱 격렬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한편, 이로 인한 국가 경제적 손실도 적잖게 예상되는 만큼 관련 연구와 분석을 서두르겠다는 것이다.
정 청장은 그러나 할 일이 태산 같지만, 예산 타령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목소리가 크고 말하는 데 거침없는 스타일의 그는 이 대목에선 더욱 힘을 주었다.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업무로 먼저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기상청에 신뢰를 보내주면 예산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최근 기상청 예산은 웬만한 기초 지방자치단체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연간 2000억원 규모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