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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장난감 비행기를 선물 받았다. 교회에서 나눠준 크리스마스 선물 가운데 장난감 비행기는 딱 한대뿐이었는데 그의 몫이었다. 소년은 또 한때 비행기 3대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문양이 그려진 옷을 즐겨 입었다.


어릴 적 받은 장난감 비행기가 내 운명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소년은 대학에 진학, 항공공학을 공부하게 됐다. 선물로 받은 장난감 비행기 때문도, 비행기 무늬가 그려진 옷을 즐겨 입었던 탓도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건축학 공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속칭 ‘노가다’ 일이라고 극구 말리고 나섰다. 그래서 얼떨결에 대안으로 택한 게 항공우주공학과였다.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대학 시절 내내 항공우주공학 공부는 그에게 별다른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수학 과목을 별로 좋아 하지는 않았는데, 항공공학 대부분이 수학중심 이었고, 하필이면 그중에서도 수학이 더욱 긴요한 전산유체역학 분야로 자의반 타의반 전공이 흘러갔다.

석사 과정을 마쳐가는 시점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스스로 진정 항공공학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박사 학위를 땄으면 하는 주변의 권유와 같은 과의 친구들 대부분이 공부하는 분위기여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선 4년 동안의 박사 과정을 끝내고 1993년 귀국했다.

그는 양준호 박사(48·한국항공 상무)다. 양 박사는 국내 최초로 자체 기술로 개발되고 있는 한국형 헬리콥터 사업을 책임지는 치프 엔지니어(Chief Engineer)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학위를 끝내고, 포스트 닥터를 할 때까지도 비행기에 관한한 저는 안개 속에 있었습니다. 비행기 개발이 뭔지도 모르고 더구나 이 일이 제 천직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양 박사는 “비행기를 이해하기 시작한 게 10년도 채 못 된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실력이 아직도 비행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수준에는 못 미치며, 이제 겨우 이해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것은 겸양이었다. 화제가 비행기로만 돌아가면 눈빛은 빛났고, 몸동작은 열정적으로 변했다. 기계적으로 복잡한 내용도 알기 쉽게 술술 막힘없이 풀어놨다. 비행기 개발에 관한한 그의 인생은 물이 올라있는 듯 했다.








양 박사는 몇 년 전인가부터 자신이 비행기 개발의 운명이 타고 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억지로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항공공학 공부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어렸을 때 혼자만 장난감 비행기 선물을 받은 것 등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모두 비행기 일을 하게 된 운명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이다.


2010년 첫 시험비행…세계 10위권 기술 보유
그는 귀국한 뒤 지난 15년 동안 11년이 넘게 주말부부로 지내오고 있다. 비행기 개발 공장이 있는 경남 사천과 서울 집을 한 달에 두어 번씩 오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에 대한 그의 열정과 애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양박사가 매달리고 있는 한국형 헬리콥터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헬리콥터 제작 기술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헬리콥터를 자체 기술로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7개국 정도다. 한국형 헬리콥터는 철저한 시장, 수요자 중심의 개발 사업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FAR 인증을 목표로 하는 것도 수출에 주력을 뒀기 때문이다. 개발 개념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민군 겸용의 다목적 헬리콥터라는 점이다. 양 박사는 “중량으로는 1만6000파운드 급으로 자동차로 치면 중형과 대형의 중간쯤 된다”라고 말했다. 가장 수요가 많은 기종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보통 군용으로 쓰일 경우 승무원을 포함해 13~18명 남짓의 전투원이 탈 수 있다. 민간용으로는 산업물자 운반, 관광 승객 수송 등에 두루 쓰일 수 있다.

한국형 헬리콥터 개발은 이밖에 기술 제휴선이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라는 것도 눈에 띈다.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헬리콥터 산업을 주도하는 유로콥터(Eurocopter)사로부터 기술을 주로 이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간의 항공기 개발의 주 제휴 대상이었던 미국의 첨단 기술에 이어, 이번에 유럽형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국형 헬리콥터는 올해 들어 본격적인 설계 단계에 진입했다. 이와 함께 시제기 제작도 시작됐다. 설계와 시제기 제작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은 국내 항공기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한국항공은 지난 2000년 국내 처음으로 초음속 전투훈련기(T-50·골든 이글)를 자체 개발해 처녀비행에 성공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양 박사는 ‘골든 이글’ 개발 때에도 체계 및 설계팀의 책임자로 일한 바 있다.

양 박사는 한국형 헬리콥터 개발 성공을 낙관했다. T-50 자력개발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만큼 그의 말은 신뢰감이 있었다. 그는 회전날개를 가진 헬리콥터와 고정날개를 가진 항공기를 동시에 개발한 경험이 있는 국내외에서 보기 드문 항공분야의 엔지니어다.

한국형 헬리콥터는 2년 후쯤 첫 시험 비행을 실시할 예정이며, 양산 체제에 들어가는 것은 오는 2012년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공학 전문가들은 헬리콥터 자력 개발은 국내의 항공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헬리콥터는 전투기나 여객기 같은 이른바 고정익기에 비해 공기의 흐름에 더욱 민감한 탓에 또 다른 차원의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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