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엄계숙(45)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다. 그 중 두어 통은, 흘려 듣자니 그와 인터뷰를 원하는 언론에서 걸려온 전화인 것 같았다.
엄씨는 최근 열세 번째 아이를 낳은 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언론들이 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엄씨가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대략 6~7년 전부터다. 아홉째, 열째를 낳으면서 다자녀 출산의 주인공으로 부각된 바로 그 시점이다. 그 뒤로 식구가 한 명씩 더 늘 때마다 예외 없이, 또 어김없이 언론이 그녀의 가정을 찾았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연락받은 것이 지금까지 100번도 훨씬 넘는 것 같아요. 한데 우리 가족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조금은 부담스러워졌어요. 그래서 언론과 인터뷰를 가능하면 사양하고 있습니다.”
엄씨는 그러면서 <코리아플러스>의 취재 요청에 응한 것은 정부 정책 홍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이 국가적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다자녀 가정으로서 출산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가임 여성 1명당 1.1명 정도다. 달리 얘기하면 자녀가 둘인 가정보다 하나인 가정이 훨씬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엄씨의 경우 혼자서 가임 여성 10명 이상의 몫을 한 셈이다.
저출산은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대한민국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경제기구들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하나같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이 출산율 저하 문제다.
단적인 예로, 최근 같은 저출산율이 지속된다면 20년쯤 후에는 경제활동인구(18~64세) 3명이 고령인구(65세 이상)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2007년 현재는 경제활동인구 약 7명이 고령인구 1명을 부양하고 있다.
작년 말에 열셋째 태어나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물론 제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이 너무 좋습니다. 생긴 것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답니다.”
방 안으로 들락거리는 아이들에게 이따금씩 얼굴을 돌리곤 하던 엄씨는 웃으면서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보니 어느새 열셋째까지 낳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은 한결같이 각자의 나이 또래에 어울릴 법한 순수하고 선한 표정과 태도를 갖고 있었다.
지난해 말에 낳았다는 열셋째인 막내는 강보에 쌓여 언니와 오빠들이 들락날락하건 말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열두째는 종종걸음으로 꽤나 높은 안방의 문지방을 넘어질 듯 넘나들다간 종내는 엄마 품을 파고들곤 했다.
올해 대학 4학년에 진학한다는 큰딸은 식구들의 때늦은 점심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쑥스러운지 눈을 딱 맞추지는 않았지만 산소처럼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키가 고만고만한 초등학생인 아들 넷(다섯째~여덟째)은 똑같은 줄무늬의 옷을 입고, 엄마의 인터뷰를 흥미 가득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중 한 녀석은 줄곧 방 안의 탁자에 붙어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있기도 했고, 잠깐씩 누워 동생과 장난을 치거나 들락거렸다.
아홉, 열, 열한 번째는 모두 여자아이들인데, 어린이집에 갔다가 느지막한 오후가 돼서야 한꺼번에 몰려왔다. 집에 오자마자 어린이집에서 그린 그림들을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며, 재잘거리는 것이 예쁜 병아리들 같았다.
“사람들이 저보고 아이를 쑥쑥 잘 낳는 줄 알아요. 아이가 많다 보니까요. 하지만 저는 유난히 입덧이 심하고, 난산인 편이에요. 첫째, 둘째는 임신 열 달 내내 입덧을 했어요. 다행히 다섯째 이후로는 입덧 기간이 5개월 정도로 줄었지만요. 산통이야 하루 이틀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입덧은 정말 끔찍해요. 입덧만 생각하면 그 다음 아이는 갖지 말아야 하는데, 아이들을 보면 너무너무 행복한 겁니다. 입덧이며, 산통을 다 잊어버리고서 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힘을 얻는 거지요.”
엄씨는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아주 다채롭다고 말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사춘기 아이는 사춘기 아이대로, 코흘리개는 코흘리개대로, 젖먹이는 젖먹이대로 나름의 행복감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또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대로,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대로 키우는 맛이 다르다고 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편 김석태 목사(50)는 그래도 여자아이 키우는 재미가 조금 나은 것 같다고 거들었다.
엄씨의 자녀 열셋은 첫눈에 봐도 생김새며 풍기는 이미지가 제각각이었다. 엄씨는 “동네 어른들도 어쩌면 아이들 낯이 저렇게 다르냐”며 신기해 한다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우리 부부가 봐도 아이들 얼굴이 서로 형제 혹은 자매라고 하기에는 많이 다른 편”이라며, “몇째부터인가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이번에는 어떻게 생긴 아이가 나올까 궁금증이 일곤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엄씨 부부가 다자녀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은 일정 부분 운명인 것 같았다. 단적인 예가, 두 사람 모두 결혼 전부터 ‘초원의 집’,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아이가 여럿 등장하는 외화를 보며 다자녀를 둔 화목한 가정을 꿈꾸었다는 것이다. 혼수로 TV를 제쳐두고 재봉틀을 장만한 것도 손수 옷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입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엄씨는 아이들 숫자가 너무 많아져 손이 달리기 전까지 실제로 옷을 해 입혔다.
엄씨 부부의 ‘출산 철학’은 간명했다. ‘믿는 사람’으로서 생명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에겐 당초부터 ‘경제력’ 같은 것은 이유가 되지 않았다. 김 목사는 “제 밥그릇은 다 달고 나온다”는 우리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다자녀 철학을 설명했다.
엄씨 부부나 아이들 모두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함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김 목사는 “교회와 독지가들로부터 한 달에 80만원 안팎 지원을 받고, 날품을 팔아 생계를 꾸리지만 그래도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정부의 지원도 제법 큰 힘이 된다고 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정부의 다자녀 지원책 큰 힘
김 목사는 신자라고 해야 양손으로 꼽을 정도로 작은 시골 교회여서 애초부터 사례 같은 걸 기대하기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다행히 손재주도 있고 눈썰미도 괜찮은 편이어서 봉사로 시작했던 목공일이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로 연결이 되어 가게에 다소나마 보탬이 된다고 한다.
교회와 집을 겸한 낡은 건물 옆으로는 목공일을 할 수 있는 노천 작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집을 찾은 1월 하순, 김 목사는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데도 의뢰가 들어온 일거리의 날짜에 맞춰야 한다며 바쁜 모습이었다.
낮게 세워진 조그만 십자가와 차 대여섯 대를 주차할 정도로 다소 널찍한 마당을 제외하면 엄씨네 집은 여느 시골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속에 사는 15명의 식구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엄씨네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것이었다. 길게는 이십 몇 년에서, 짧게는 열한 달 터울의 형제자매 열세 명이 서로 자연스럽게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관계, 그것을 화음이라고 하면 그 보다 아름다운 소리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한결같이 밝은 데 대해 김 목사는 “천성도 순한 편들인 데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키워서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엄씨는 “대책 없이 아이들만 많이 낳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특히 아이들의 인성 교육과 집안 분위기에 한층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또 신앙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성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 8녀 5남… 첫째와 막내 20년 차이
엄씨의 13자녀는 성별로는 8녀 5남이다. 첫째가 87년생이고, 막내는 2007년생으로 만 20년 차이가 난다. 넷째와 다섯째는 같은 95년에 태어났다.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 넷은 죽 아들이고, 아홉째부터 열셋째까지 다섯은 모두 딸이다. 큰아이를 수원에서 낳은 뒤 곧바로 현재의 경북 구미로 이사와 나머지 아이들을 뒀다. 혈액형은 O형 다섯, A형이 여덟이다. 남자아이 다섯은 모두 아빠와 같은 A형이고, 여아 중에는 엄마와 같은 O형이 다섯으로 3명인 A형보다 더 많다. 또 13명 중 9명이 토끼, 뱀, 원숭이, 돼지(3명)로 띠 동갑이다. 김 목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면 “좋은 일 하십니다”라는 인사를 가끔 받기도 한다며 웃었다. 보육원을 운영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엄씨는 다출산으로 유명세를 타다 보니, 불임 여성이 찾아와 내의를 간곡히 청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