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국민참여재판제도(배심원제)가 사법 사상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가운데, 지난 1월 10일 대구 지방법원에 첫 배심원 재판 신청이 있었다.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한 20대 남성이 재판부에 배심원 재판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빠르면 2월 초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배심원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제도(이하 참여재판)에 대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참여재판은 이 제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경우, 우리 사법 사상 손꼽히는 변혁이 될 만큼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재판 탄생에 산파 역할을 한 김선수 변호사(47)로부터 이 제도의 탄생 배경과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김 변호사는 이 제도를 낳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기획추진단장이자 간사로 활동했다. 사개추위는 2005~2006년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기구로 참여재판제와 함께 법학전문대학원(일명 로스쿨) 제도를 마련한 게 주요 성과로 꼽힌다.
김 변호사는 참여재판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사법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큰 재판 제도의 변화여서 착근을 예측하기가 쉽진 않지만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또 자신이 산파역을 한 만큼 누구보다 배심원제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도 감추지 않았다.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법부와 정부 부처, 변호사 단체 등이 보인 적잖은 이견들을 조정하며 동분서주했던 만큼 애착 또한 큰 것으로 보였다.
참여재판제도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습니까.
“크게 보면 시대의 흐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사법체계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 오래전부터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시민사회, 학계 그리고 일부 판사들까지도 재판제도 개선 등을 요구해 왔습니다.”
국민이 재판에 참여한다, 즉 배심원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배심원이라고 하면 흔히 미국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심원제도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가 미국이니까요. 요즘 인기가 있다는 미국 드라마 가운데도 배심원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많잖습니까. 배심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재판에 배석해, 심판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배심원들은 보통 국민들 가운데서 뽑습니다. 그래서 국민참여재판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한 우리의 배심원제는 미국의 배심원제도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전면적인 배심원제 도입을 주장한 측에서는 다소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배심원제도와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경우 미국과는 달리 배심원들의 평결이 기속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결이란, 전문 법관 즉 판사가 내리는 판결과 비슷한 개념으로 말하자면 배심원들의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결은 유무죄만을 판단합니다. 평결이 기속력이 없다는 것은 재판에서 구속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판사가 배심원들의 평결과 다른 판결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평결이 법적 효력이 없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배심원제는 아니겠습니다.
“법조 일각에서는 배심원제 도입 자체를 놓고,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헌법에 나와 있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비록 평결의 효력이 권고적인 데 그치더라도 그간의 재판 관행과 문화를 개선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판사가 배심원들의 평결을 뒤집으려면 그 이유를 명시해야 하므로 그만한 부담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변호사는 배심원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서도, 명칭 자체를 두고 한동안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시민단체의 경우 시민 법관, 시민 판사 등 배심원들에게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용어를 선호한 반면, 법원 등에서는 사법 참여인 등 가능하면 배심원의 지위를 제한하는 뉘앙스를 가진 어휘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판결에 제한된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재판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존의 우리 사법체계에 비하면 민주주의의 성숙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배심제 혹은 배심제와 비슷한 것으로 참심제라는 것도 있는데요. 배심제든 참심제든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가 무르익을수록 국민의 재판 참여를 확대하는 경향이 있고, 독재권력 혹은 폐쇄사회일수록 재판 참여를 제한하는 게 추세였습니다.”
국민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듭니다만, 실제 법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국민이 배심원으로 일하면 오판이 나올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이럴 경우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텐데요.
“전문 법관도 오판을 합니다. 물론 배심원들의 평결도 오판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쪽의 오판 확률이 더 높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한 통계 자료나 연구결과는 없습니다.”
참여재판제가 확산되면 법관들의 존재가치라고 할까, 권위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배심원제가 가장 철저한 미국의 경우를 보면 결코 판사들의 권위가 우리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재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법관에 대한 신망도 높아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재판에서 배심원들의 역할이 늘어나면 전관예우라든지, 서류재판 같은 그간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사법부 일각의 풍토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배심원 재판은 형사재판에만 국한돼 열립니다. 민사재판에는 참여재판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지요. 일단 배심원 재판이 된다면 서류재판은 발붙이기 힘들 것입니다. 검사와 피고인측 변호사가 재판정에서 배심원을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른바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되는 거지요. 또 전과는 달리 유무죄를 배심원이 우선 평결하기 때문에, 전관을 예우하기가 전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배심원제가 정착되면 아무래도 재판의 중심이 판사에서 배심원 쪽으로 옮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차 사법고시나 로스쿨 인기가 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배심원이 판사의 고민을 덜어주는 측면이 있어 판사의 지위가 낮아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전문지식이 떨어지고, 노력하지 않는 변호사나 검사들은 발붙이기 힘든 풍토가 생겨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법고시 수석 합격 후 김 변호사는 노동자들의 변론을 주로 해왔다. 강제징집으로 1981~83년 군대를 다녀온 뒤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뒤 이를 실천해 온 것이다. 1985년 사법고시에서 수석합격하고도 법원이나 검찰로 진출하지 않은 이유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합류한 것도 애초에 노동계 대표로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직후 지금은 고인이 된 조영래 변호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에서 주로 활동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사회성이 아주 부족한 편인데, 집안 내력이 그런 점도 있고, 어린 시절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은 등의 환경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 쉰이 가까워오면서 해를 더할수록 변호사 일에 지치고 조금은 회의가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변호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상 살기가 팍팍한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힘을 추스른다고 했다. 최근 등산에 부쩍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꽃이나 나무를 보는 게 큰 낙이 됐다고 했다. |
“기대 반 걱정 반 모의재판 결과 안심”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서울중앙지방법원 한양석 부장판사(46)는 우리 사법의 신기원을 여는 ‘실무’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법 사상 올해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을 전담하는 전국 수십 명의 판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사건 가운데서도 살인, 강도상해 등 중한 사건에 대해서 1심에서만 이뤄진다. 한 판사는 세 사람의 판사로 구성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참여재판 전담재판부의 재판장이다. 한 판사는 전국의 법관들 가운데 국민참여재판 모의재판을 가장 많이 해본 재판장이다. 지난해 9월, 11월, 12월 등 3차례에 걸쳐 재판을 주도했다. 모의재판은 일반 국민들 가운데 무작위로 뽑은 배심원과 검사, 변호사가 참여하는 등 실제 재판과 똑같은 상황을 설정하고 이뤄졌다. 한 판사는 “재판에 참석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생소한 제도여서 모의재판 전에 법원 직원 등과 함께 리허설도 여러 차례 가졌다”고 말했다. 예행연습까지 합치면 한 판사는 1월 현재 국내 판사들 가운데 배심재판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기대도 있었고, 걱정도 있었는데 다행히 3차례의 모의재판 결과는 안심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배심재판을 청구하는 사건 수가 얼마나 될지, 또 배심재판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뤄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판사는 국민들의 사법 참여는 무엇보다 사법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 배심원들의 평결이 판사의 판단과 크게 어긋나는 상황이 온다면 판사들로서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또 길게는 3일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 재판 소요시간이 크게 늘어나거나, 배심재판 청구 건수가 폭증하는 상황이 와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법관, 재판정 등 자원동원에 한계가 있는 법원으로서도 대처에 애를 먹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판사가 재판장을 맡은 지난 3번의 모의재판은 각각 살인, 성폭행치상, 뇌물사건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재판 전에 9명의 배심원들이 내리는 유무죄 평결이 자신의 판단과 다르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이 컸다고 했다. 그러나 3건 모두 평결이 자신의 판단과 같은 것이었고,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나왔던 한 건도 8대1로 절대다수여서 안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애초 배심재판이 전국적으로 연간 100~200건 정도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인력과 재판정 등을 준비했었다. 한 판사는 그러나 국회에서 법안이 성안되는 과정에서 대상 사건의 폭이 넓어진 데다, 처음 실시하는 제도이다 보니 피고인 측의 호응이 어떨지를 점칠 수 없어 실제 배심재판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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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