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 “20주년이라고 딱히 감회가 다를까 …. 기념만 할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뜻을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말입니다.”
현충일인 6월 6일 서울 신촌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서 만난 최병수(47) 화백은 때 이른 뙤약볕 아래 이렇게 또렷이 짚어 내려갔다. 꼭 20년 전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스러져간 이한열(당시 20세) 열사의 영정과 걸개그림으로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운동에 불씨가 된 주인공이다. 오전 8시에 도착했다는 최씨는 높이 7.5m 너비 10m 걸개그림에 덧칠을 하고 있었다. 1995년 걸개그림이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옮겨진 뒤 12년 만에 다시 그린 것이다. 나흘에 걸친 작업이 이날 오후 3시 건너편 중앙도서관에 내걸리기 전 매듭을 짓는 시간이다. 그림은 항쟁의 날인 10일까지 민주화운동에 담긴 뜻을 다시금 알릴 터이다.
“민주화운동 출발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데 있었습니다. 실제 민중들의 삶과 맞닿은 문제들에 눈길을 줘야 할 때입니다. 바로 자본의 논리에 파묻혀 있는 환경문제들이지요. 눈에 얼른 띄지 않는다고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민주화운동으로 쓰러진 이들에 대한 부채(負債)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에게는 뜻밖에 찾아든 민주화운동 참여의 계기가 여전히 이어지는 듯하다.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목수 일을 전전하던 최씨는 86년 하나의 사건과 맞닥뜨린다. 초등학교 동기인 미대생들의 작업 받침대 설치를 돕다 불온벽화란 이유로 경찰에 붙들려 조사를 받는다. 어려서부터 주변에 남아나는 나뭇조각이 없을 정도로 조각(彫刻)에 소질이 많았던 그였다. 회색 담장이 그렇게 보기가 싫어 친구들 일에 선뜻 거들고 나선 게 빌미였다.
“허가받지 않은 그림이라 문제라고 검사가 말합디다. 그래서 ‘얼마 전 세종로와 서대문 사이에 있는 공사장 담벼락에 미관으로 장식한 그림이 방송에 나왔는데, 그런 것은 일일이 허락을 받았느냐’고 따졌더니 아무 말을 못하지 뭐예요. 아, 이처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여서 학생들이 현실 타개에 나서는구나 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 길로 지금껏 쭉 달렸어요.”
그리고는 경찰이 “그림 그리다 잡혔는데 목수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며 조서(調書)에 직업을 화가로 적었던 기억을 곱씹는다. 어린 시절 대물림한 가난이 이런 모순 때문이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단다.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국졸(國卒)이라는 학력을 처음 대하는 사람은 반신반의(半信半疑) 해서인지 작품에 대해서든 무엇이든 몇 차례이고 거듭 확인하려 든다는 것이다.

자신이 숨쉬고 있는 이 땅에서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로 둔갑시키는 일이 벌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투쟁의 길을 선택했다. 그림, 아니 판화를 무기로 삼았다.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던 모습을 신문에서 본 그는 밤새 목판에 조각해 광목 천 조각에다 찍어 리본을 만들었다. 치밀어 오른 분노로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글까지 새겼다. 한 학생이 “크게 만들어 모든 사람이 보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그는 걸개그림을 그려 6월 15일 도서관 한쪽 벽면에 내걸었다.
88년 무렵부터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란 어떤 모습인가를 고민하던 터에 환경문제야말로 정답이라는 데 생각이 닿았다. 서적을 탐독하는 등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다. 고발성 작품을 잇달아 기획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90년 4월 22일 ‘지구의 날’ 서울 남산에 전시한 ‘쓰레기들’이다. 길이 10m, 폭 7m로 어린아이가 쓰레기 더미에 놓인 지구본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이 그림은 곧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를 앞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전시돼 지구촌에 퍼진다. 96년은 본격적으로 뛰어든 해이다. 때마침 지구촌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일정을 밝힌 ‘교토 의정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최 화백은 온난화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97년 일본 교토 지구온난화 회의에서 얼음조각 작품 ‘펭귄이 녹고 있다’를 발표한 뒤로는 세계적인 미술관에 내걸리는 등 환경예술가 명성을 드높였다.
“전북 부안에 내려가 있을 때였어요. 날마다 바닷가를 돌았죠. 겨울은 추워야 하는데, 언론을 통해서도 나타나듯 너무 따뜻하지 뭐예요. 계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추워야 온갖 생명들이 죽음과도 같은 깊은 수면으로 휴식을 취하고, 따뜻한 봄이 되면 새로운 기운으로 생생하게 소생시키는 게 자연의 섭리인데 말이죠.”
위암수술을 받은 뒤 지인의 초대로 전남 여수시 백야도에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다음 달부터 각국을 돌며 ‘펭귄이 녹고 있다’ 순회전을 갖는다고 귀띔했다. 나라마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쯤 머물 계획이다. 대상은 무한정이라고 웃었다.
글 송한수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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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