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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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공자가 말했다. 나이 50은 ‘지천명(知天命)’이라고. 적어도 반백년은 살아봐야 하늘의 뜻을 안다는 말이다. 하늘이 자신에게 준 소명과의 숨바꼭질에 종지부를 찍는다고나 할까. 지천명은 그렇게 천직에 안착하는 나이다. 지난 시간이 어찌해서 그토록 한 곳으로 내쳐 흘렀는지, 그 한 곳이 왜 하필 지금 이곳이었는지를 주억거리게 되는 인생의 한 지점.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환한 눈으로 다시 문장을 적어나가는 이가 김봉건(50)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다.
김 소장은 지난 6월 23일 국립문화재연구소장에 재선임됐다. 반평생을 문화재와 함께 지냈던 그에게 연임은 특별하다. 연구소 내부 출신으로 제1회 개방형 직위의 초대소장이었기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째 소장 임명이라서가 아니다. 다시 앉게 된 소장직은 이제까지를 아우르고 또 앞일을 열어주는 나들목에 가깝다. 그곳에서 천직과 만났다. ‘문화재’를 매개로 ‘역사’를 들여다보려 애쓴 지난 시간은 이어질 테지만 전혀 다른 각오로 좀 더 활기찬 미래를 열게 된 셈이다.
[B]고고학적 증명만이 역사 왜곡 바로잡아[/B]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문화유산 최고의 연구기관으로 거듭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고 싶은 게 저의 바람입니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런던대를 거쳐 1983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적을 두었던 그는 미술공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하고 연구소장에 취임했다. 24년여 시간이 고스란히 곰삭아 지문처럼 남아 있는 곳이니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실 단위로 시작해서 140여 명의 인원으로 꾸려진 연구소가 되기까지를 지켜본 그였다. 때문에 38년 역사를 지닌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매장문화재 법인체, 각종 공·사립연구소들의 설립으로 국립연구기관으로서의 전문성·정체성 문제가 제기됐을 때 무언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학술 위주의 발전을 밑거름으로 한 문화재 전반에 대한 정책의 싱크탱크로 거듭나야 된다고 다짐했다. 연임 소감을 묻는 이들에게 ‘최고의 권위’를 키워드로 내세운 까닭은 그 때문. 한·러 공동발굴특별전 ‘아무르·연해주의 신비’도 같은 맥락으로 준비됐다.
“우리나라만의 문화재가 아니라 해외 교류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러시아·일본·중국과는 공동 내지 비교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번에 아무르·연해주 공동발굴이 바로 그 예입니다.”
의외의 수확이었다. 사실에 근거한 뚝심 있는 연구였을 뿐이다. 연구가 끝나고 결과물이 정리된 어느 날, 동북공정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김 소장은 그때 전시회를 떠올렸다. 우리 고대국가의 기원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연구가 아무르·연해주 공동발굴이었던 까닭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학자들만 알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 모두에게 알려야 된다. 김 소장은 그것이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물론, 보고서로 작성될 테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으리라고 여겼다.
한·러 공동발굴특별전 ‘아무르·연해주의 신비’에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지부 고고학민족학연구소와 공동으로 발굴한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아무르강 하류 수추(Suchu)섬 유적과 연해주 불로치카(Bulochka) 유적에서 진행됐던 6년간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B]공동연구가 동북아 화합의 지름길[/B]
더불어 러시아 극동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발해·여진까지의 고고유물과 현지 원주민의 민속유물 등 총 393점의 유물이 함께 전시돼 있으니 고대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김 소장은 말한다. 이 엄청난 유물들이 잠자던 연해주의 불로치카 유적은 두만강에서 멀지 않기에 발해의 다양한 흔적도 발견되었다고. 이중 옥저의 ‘돌상자형’ 온돌의 발굴은 우리 민족 고유문화인 온돌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근거로 읽힌단다.
“수추섬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토기를 보면서 생각하는 거죠. 아무르강, 연해주, 두만강, 동해안으로 연결되는구나. 문화 자체가 교류했구나, 연계성이 있구나. 그렇게 말입니다. 동북공정과 관련해서 중국학자들의 억측 대상인 발해와 옥저만 봐도 그래요. 옥저의 궁궐 배치 형태, 건물평면 등은 고구려의 안압궁과 똑같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와 거의 흡사해요. 기와 문양도 거의 똑같고요. 중국학자들의 억측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발해와 말갈·여진 등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지난 6년은 그에게는 희열로 짜인 퍼즐이었다. 우리의 고대국가를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그로써 역사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증거물을 거머쥐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도 발굴할 것이 많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유적은 중국과 러시아·일본에도 상당하다. 동북아 3국의 정치적 얽힘을 풀기 위해서도 공동발굴은 꼭 필요하다는 게 김 소장의 생각이다.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를 통해서만이 객관적 사실의 왜곡 없는 역사 쓰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부러 화를 내며 싸울 필요도 없다. 명백하게 왜곡할 수 없는 사실들이 쌓이면 그만이다. 수추섬 유적, 그리고 불로치카 유적과 유물들은 그렇게 우리 국민의 억울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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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문화재는 미래의 콘텐츠[/B]
“배로 18시간을 가야 수추섬이 있어요. 그곳에서 40일을 천막을 치고 발굴·조사하는 거죠. 물이 없어서 1시간을 걸어가고 옷을 뚫고 물어대는 모기와 전쟁을 치르고…. 그렇게 고생해서 발굴하고, 보고서도 바로 작성하니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를 신뢰하게 되더군요. 그 신뢰가 이런 전시를 가능케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입지이자 곧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입지죠. 연구원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오지로 연구원들을 내보내는 김 소장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음을 안다. 자신에게 그렇듯 그들 또한 이 일이 천직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늘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홀대받는 것이다. 아니, 비난받는 것이다. 동북공정처럼 첨예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다. 꾸준히 열심히 잘 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일이 뭐냐고 윽박지를 때 연구원들이 안쓰럽다. 국내에서 할 일도 천지인데 왜 해외까지 나가 돈을 쓰느냐며 딴죽 걸 때 허탈해진다. 음지의 영역임은 이미 체득했지만 숱한 연구원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속상한 게 사실이다. 정작 동북공정 같은 첨예한 사안이 대두됐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인데도 말이다. 서운함보다도 허무함에 가까워 씁쓸해진다.
그렇다고 본업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연구를 더욱 추진하고 그 결과를 알리고자 좀 더 노력한다. 안으로 숨기보다는 밖으로 내보이면서 문화재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가시화하는 게다. 그래야 도태되지 않는다고 그는 믿는다. 문화재만한 경쟁력은 어디에도 없단다.
문화재 보존은 과거 그대로의 보존이 아닌 현재 그리고 미래의 콘텐츠라는 그의 지론은 뿌리를 찾아 흔들림 없이 선 나무에서 황금이 열리는 격이랄까. 그것은 문화재종합병원 건립이 연구소 최대 현안인 까닭이기도 했다. 2008년 개원할 문화재종합병원은 확실한 문화재 보존처리가 이뤄질 아주 중요한 곳이라고. 더불어 현재의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종합연구소로 전환시킴은 물론 문화유산 관련 자료의 종합아카이브를 구축하고, 해외연구소와의 연구교류를 강화시킬 예정이라는 김 소장. 그의 바람처럼 든든한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인해 급격한 세계정세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의 ‘우리나라’를 기대해본다. 그것이 그가 나이 50에 마주한 지천명이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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