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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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셔터를 누른다. 찰나를 낚아채려는 심산이다. 영원히 반복되지 않을 한순간 위에 방점을 찍는다. 긴 인생 여정은 그리 기록된다.
그렇게 사진 한 장을 손에 쥐고 10여 년이 흐른다. 낡은 사진첩에 끼워져 장롱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사진 속 평면적 한때. 우연히 발견한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10년 전 그 한순간을 위해 필요했던 숱한 시간들을. 평면적이고 찰나적이지만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인 게다. 한순간을 읽기 위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간과 닿은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 한 장이 그럴진대 한 나라, 전 세계의 사건을 이해하는 건 어떻겠는가. ‘역사’라는 것이 단순히 학문일 수 없으며, 외교나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역사는 그만큼 중요한 까닭이다. 외려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뭇사람의 감시 어린 시선이 고맙기도 하다. 역사에 대한 관심도가 더 많은 역사 연구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런 바탕이라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국가적 분쟁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랫동안 학교에만 있었습니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게 제 오랜 업이었지요. 그런 제가 2006년 9월 1일, 이 자리에 임명되니 참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그것을 세계에서 인정받아 분쟁을 없애는 것임을 말입니다.”
[B]단단한 불신의 편견을 박차다[/B]
임명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동북공정에 관한 외부의 질문은 끊일 줄 몰랐다. 간혹 힐난 섞인 발언도 있었다. 시스템을 완비하고 앞으로의 청사진을 꾸리기에도 모자란 하루인데,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진이 빠지진 않는다. 그런 일쯤은 예상했었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던 터였다. 그는 해명을 요구하는 질타의 순간에 맞닥뜨릴수록 동북아역사재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모두가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다.
그랬다.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오해는 잘못된 정보로 인한 편견 때문이었다. 처음 고구려연구재단을 통폐합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불안케 했고, 엉뚱한 결론을 도출시켰다. 마치 중국 동북공정을 직접 겨냥해 연구에 박차를 가했던 고구려연구재단을 밀어내고, ‘분쟁 따위 시끄러우니까 미적지근하게 해결할래’처럼 보였나 보다.
그뿐인가. 연구하던 이들의 재능을 썩히고 홀대한다는 괴소문도 돌았다. 동북공정이 이슈로 떠오르자, 고구려연구재단이 있었으면 훨씬 더 많은 연구가 있었을 게다, 그렇지 못해서 우리가 골탕 먹고 있다며 나온 볼멘소리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 기저엔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모두가 두말하면 잔소리일 뿐인 오해다.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 한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그 연구원들은 이곳에 와서도 계속 연구 잘하고 있습니다. 또 언론을 비롯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고구려나 발해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중국보다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우리’ 역사에만 치중해서 중국과의 관계 안에서의 고구려, 세계 속의 고구려에 대한 연계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고구려연구재단이라는 명칭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 전문학자를 영입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그런 것들을 보완한 확대된, 대외전략적인 기관입니다.”
세계와 우리 역사를 함께 연구하는 게 기본이다. 우리 역사만 쏘옥 빼내어 연구하는 것은 왜곡을 낳기 쉽다. 그것은 현재의 역사 문제를 전쟁 치르듯 해결하겠다는 관점과 닮은꼴이다. 김 이사장은 그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꼬집는다. 전쟁은 승패를 나누게 마련인데 역사를 놓고 ‘너는 지고 나는 이겼다’는 해석은 무리라는 것이다. 역사란 서로를 존중하면서 흐르기 때문이다. 숱한 전쟁들은 그 최소한의 룰을 어긴 결과였다. 아무리 작은 나라여도 존재하는 한 그 역사를 존중하는 게 하늘의 법칙이라며 그는 힘주어 이야기한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B]“역사는 상식의 틀”[/B]
“동북아역사재단이 표방하는 것은 역사전쟁이 아닌 역사외교입니다. 동북아 3국은 이상하게도 같은 문화뿌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집요하게 싸웁니다. 그건 역사 때문입니다. 역사를 근원적으로 해결한다면 동북아의 평화 더 나아가 번영을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슈를 파악하고 분석할 때 역사적 배경 없이는 피상적인 답만 얻게 마련. 언 발에 오줌 누듯이 급한 상황만 모면한다면 더 큰 재앙을 부를 뿐이다. 역사를 통한 외교는 그래서 풀리지 않는 국제 문제의 해법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출구가 없을 때 깜박이는 비상구와 같은 존재다. 지금의 분쟁도 그러한 접근에서 해결한다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얻으리라고 그는 확언한다.
“역사는 상식의 틀입니다. 역사에서 엄청난 것을 찾아내려 할 때 왜곡이 생깁니다. 우리 것만 있을 수도 없고, 남의 것만 있을 수도 없는 게 역사이고, 그것은 멈춤 없이 흐릅니다. 지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의 바로 밑은 어제, 그 밑은 100년 전의 역사인 것입니다. 분명히 인식하고 나아갈 때 힘이 되는 게 역사입니다. 척박한 역사를 가졌어도 비옥한 미래를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겸허한 태도. 그것은 역사를 과거의 한 에피소드쯤으로 생각하는 이들, 긍정적인 역사만 바라보려는 이들에게 가하는 일침이었다. 내 것, 내 나라 것만 지키려다 벌어진 싸움은 결국 ‘나와 너’를 생각할 때 화해할 수 있다.
[B]정부 의지와 지속적 연구가 관건[/B]
사실, 우려는 있다. 요즘의 세태를 볼 때 우리만 외교를 한다고 잘 되겠느냐, 중국이나 일본이 순순히 ‘그래, 네 말이 맞으니까 그만 우기고 우리 서로 잘 지내보자’ 그럴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오해라는 게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중국과 일본에도 말이 통하고 진리를 위해 싸우는 역사가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김 이사장 또한 ‘우리’ 역사만을 고집하며 역사전쟁을 불사했을 것이다. 생각만큼 어두운 전망은 아니다. 외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한다면 역사외교는 대단한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의 단호한 입장 표명과 더불어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합니다. 괜한 흥분은 외국의 국수주의자들에게 빌미만 제공할 뿐입니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일본, 중국과의 역사문제를 처리하는 성숙한 태도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힘 있는 학술적 근거를 위해 종횡무진 내달릴 동북아역사재단. 3개의 연구실과 전략기획실, 교류홍보실은 이제부터 밤낮없이 세계 속의 한국을 조명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김 이사장을 비롯한 동북아역사재단 사람들의 노력으로 국제적인 역사 속 한국으로 우뚝 서기를, 한 치의 왜곡도 없이 우리 역사가 인정받기를 희망해 본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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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