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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호>최초의 여성 국립중앙박물관장 김홍남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시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철옹성처럼 굳건한 그 문을 활짝 열며 김홍남 신임 관장이 들어섰다. 척 보아도 강단 있는 그녀는 취임하는 그 날, 이런 뜻을 내비쳤다. 우리 행복하게 일합시다! 주눅 들지 말고, 웃으면서 씩씩하게! 생기로운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담뿍 묻어나는 취임사였다. 고이기 십상인 ‘박물관’이란 공간에서 ‘생기’를 운운하는 그녀, 김홍남. 그것은 흡사 기존 시스템을 향한 통첩처럼 들렸다. 박물관이 문을 연 지 61년 만에 처음으로 여자가 ‘장’을 거머쥐었다는 술렁거림. 그것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다시 던진 돌이 바로 ‘생기’라는 타이틀이었던 게다. 왜였을까? 그 많은 단어 중 하필 왜 그 단어였을까? 그리고 대체 어떻게, 무엇으로 생기로운 박물관을 만들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는 시원스런 미소를 지으며 답을 쥐어줬다. “모든 키워드는 ‘사람’입니다. 사람 때문에 필요한 ‘생기’이고, 또 사람이 만들어나가야 할 ‘생기’입니다.” 의외로 간단한 답이었다. 예의 그 말투로 툭 내던진 ‘사람’. 어쩐지 그 단어에는 정겨움이 스며 있었다. 그뿐인가. 따뜻함마저 빈틈없이 배어, 듣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사람을 향한 박물관의 진화가 자못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사람’이라고 발음한 그때였다. 수만 점의 그림과 조각, 예술품 가득한 창고를 공기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을 잔잔하게 그린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루브르 시티’가 떠올랐다. 일상과 특별함, 속됨과 고귀함, 해학과 꿈이 한데 어우러진 박물관의 일상을 녹인 그 영화는 그녀와 닮았다. 생동감 있는 박물관을 통해 변화된 현실을 꿈꾸는 까닭이었다. 여러 작품만큼이나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박물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녀에게는 중요했다. [B]행복한 사람이 행복을 부른다[/B] “가만 생각해 보면요, 제 임무는 간단해요. 국립중앙박물관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할 수 있죠. 어떻게요? 생기를 불어넣으면 돼요. 그러면 사람들이 모이게 돼 있죠. 다시, 어떻게 생기를 불어넣느냐가 문제죠. 물론 전시도 좋아야 하고 시설도 잘 갖춰야겠죠. 한데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행복하게!’를 외친 건 그 때문이죠.” 용산의 드넓은 부지로 옮겨와서 새로 지은 건물에서 일하건만 직원들은 여전히 시무룩했다. ‘이사가 공사’라고 너무 많은 일들에 지쳐 있었다. 그런 내부 사정도 모르고 외부에선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힐난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연스레 기운이 떨어졌던 것.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바로 이 부분을 김 관장은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외려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로 인식했다. 생기라는 건 건물의 생동감이고 그것은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건물을 아무리 잘 지어도 사람이 없다면 그저 한낱 물체일 뿐이라는 게 그녀의 지론. 멋진 건물이려면 그 안의 사람도 병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박물관을 찾는 이들 또한 건강한 행복을 풀어놓게 된다는 것. 그런 긍정의 순환이 그녀가 생각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에너지였다. 얼핏 보면 웅장하고 고리타분하지만 박물관은 그저 옛날 물건만 있는 곳이 아니다. 든든한 뿌리를 가진 울창한 나무에 비유하면 될까. 자유롭게 흐르고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는 과거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현재를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었다. 늘 곁에 두고 싶은 친구쯤으로 만드는 것.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시켜서 국내외인 누구든지 한번쯤 찾아오고 싶은 명소로 만들 욕심이다. 문화적으로 끌리는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 그녀의 궁극적인 청사진이다. [B]일상이 녹아 있는 매력적인 박물관[/B] “전시 있을 때 마지못해, 숙제하러 오는 그런 곳은 매력이 없죠. 저는 이런 것을 꿈꿔요. 늘 다른 느낌이어서, 혹은 너무도 편안한 일상이어서 매번 오고 싶은 박물관이요. 수요일 밤은 그곳에서 밤을 지내고 싶어, 주말에는 전시실을 어슬렁거리며 피곤을 풀고 싶어. 뭐 그런 거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외려 빠져버리는 게 매력적인 거겠죠.” 허나 매력적인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일 수는 없었다. 시대마다 다르게 자리매김하는 게 매력이지 않은가. 그래서 21세기 현재, 김 관장이 고심 끝에 잡아낸 콘셉트는 전통과 일상의 멋진 조화였다. 그로써 일주일 내내 박물관에서 색다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 탄생된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일종의 멀티플렉스라고 볼 수도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박물관. 그러나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는 또 다른, 박물관이 중심에 선 그런 복합문화공간을 그녀는 꿈꾼다. 때문에 모든 것이 ‘박물관다워야’ 한다고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다. 박물관다운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며 그녀는 콘텐츠와 교감에 온힘을 쏟는다.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도 바로 그것. 아무리 완벽하고 멋진 전시일지라도 전시자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죄다 헛짓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내가 본 것을 내 자신은 물론 관람객에게 설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냥 ‘좋으니까 봐라’ 식으로 그림만 달랑 걸어놓는 건 시간 낭비다. 대화가 아닌 외침일 뿐이니까. 그렇게 작품을 통해 전시의 의도를 읽고 작가를 이해하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작업. 그것이 진정한 전시의 미덕이지 않을까. “교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콘텐츠가 흡입력을 가지고 사람을 끌어들여야 해요. 전달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죠. 유물이라는 멋진 재료는 늘 있어 왔지만 이것을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전달하느냐가 관건인 거죠. 같은 재료라도 특정인의 손맛이 깃들면 맛이 달라지잖아요. 그것과 같은 맥락이죠. 이왕이면 제대로 맛있는 그런 요리를 내놓는 요리사이고 싶군요. 손맛 좋다고 평이 자자한 그런 요리사요.” [B]열린 박물관에서 미래를 그리다[/B] 한 번 맛 본 사람은 단골이 되는 그런 요리사. 그녀가 꿈꾸는 박물관은 참으로 맛깔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 모두는 박물관을 향한 애정에 기인한다. 또한 그 애정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어느 날의 경주에서부터 시작한다. ‘수학여행’이란 타이틀로 마주한 경주는 대단한 경험이었다. 뭣 모르던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는 꽤나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고요한 무덤과 살아 숨 쉬는 유물은 이제껏 맛볼 수 없던 쾌락을 주었다. 그래서 여러 기념품을 놔두고 토기 하나를 사오기도 했다.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그 토기는 그녀를 박물관과 이어준 소중한 매개체다. 그로부터 근 반세기를 지내며 그녀 인생은 박물관으로 채색되었으니 말이다. 이 개인적 체험 때문일 게다. 그녀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박물관을 그린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박물관,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박물관을 상상하는 게다. [SET_IMAGE]5,original,right[/SET_IMAGE]“아이들에게 열린 박물관이 되기 위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자긍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박물관, 한국의 유물을 문화적 열등감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문화적으로 우리가 동양의 문명뿐만 아니라 세계 문명에도 한몫 했음을 보여주고 싶어요. 국수주의적 우월감이 아니라 열린 자긍심이죠. 고립된 한국의 문화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를 인식케 도와주는 거죠.” 긍정적 마인드로 박물관을 문화 중심에 놓으려는 김홍남 관장. 그녀는 이제껏 수장고 정도로 인식되었던 박물관을 닦고 또 닦는 중이다. 먼지 속에 감춰진 아름다운 빛을 많은 이들과 나누려고 구슬땀 흘리며 광을 내고 있다. 하여, 아침에 박물관으로 향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자신을 기다리며, 변화된 박물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분명 가슴마저 뛸 일인 게다. ‘여자’와 ‘외부인사’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별 문제되지 않는 까닭 또한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들어서던 그 날, 세계 6대 박물관의 규모에 걸맞게 알찬 내용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슴에 새겼다. 유물을 지키는 데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교류하고 그로써 시너지를 창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다짐들과 몸을 아끼지 않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 고마운 일이다. 단지 구실 좋은 놀이터가 생겨서가 아니다. 잃어버린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를 관망하고 직조할 공간을 쥔 기쁨이다. 모두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진정한 미래를 가지게 된 기쁨이다. 그래서 김홍남 관장의 소신은 그저 반갑고 또 반갑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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