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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지킴이 故 김도건 씨 부모 장학금 1억원 기부


“나름대로 우리 애 열심히 키웠는데… 먼저 가버리니 허망하지요. 작별 인사도 못 나누고…. 그렇게 갔어요.”

4월 30일 오후 경남 마산시 외곽의 한 공원에서 만난 고 김도건(20·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군의 아버지 김청수(52) 씨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눈물을 참고 있었다.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아내 양금옥(46)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건이는 못하는 것이 없었어요. 잘하면 뭐하겠습니까. 가버렸는데….”

기자가 건네는 명함을 김 씨가 의자에 앉아 그대로 받았다. 그러자 양 씨는 “일어나서 받아요” 하고 남편을 나무랐다. 이들 부부의 말투에서도, 작은 몸동작 하나에서도 소탈함과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식사를 겸한 2시간 동안의 인터뷰 내내 그랬다.

서울대 동아리 ‘독도 레이서’에서 활동하던 김 군이 유명을 달리한 것은 지난 2월 23일 밤. 그날 김 군은 경북 영덕군의 한 국도에서 트럭에 치여 숨졌다. 독도 레이서와 방송사 등이 독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공동 기획한 ‘독도가 달린다’ 행사에 참여하던 중에 벌어진 사고였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3백50킬로미터는 자전거와 이어달리기로, 포항에서 독도까지는 배편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됐는데, 김 군은 육로 목표지점인 포항을 30킬로미터 정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밤늦게 연락을 받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도건이의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사고 장면이 담긴 화면도 봤습니다. 내 아이의 일이니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영안실에 도건이 친구들이 잇따라 도착해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되레 마음의 짐을 지운 것 같아서였습니다.” 



양 씨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온몸이 떨린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최근 사고를 낸 트럭기사와 형사 합의를 했다. 김 씨는 “이런 일로 남 힘들게 해서는 안 되고, 나만 잘 살겠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한 것 아니냐”며 “그래서 좋게 마무리하고 모두 끝냈다”고 말했다. 합의금은 그리 큰 금액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는 아들의 모교인 서울대와 마산 중앙고에 모두 1억원을 기부했다. 도건 군의 보험금에서 떼어낸 것이다. 4월 중순 마산 중앙고에 기탁한 5천만원은 학교발전기금으로 쓰인다. 최근 서울대에 낸 5천만원은 ‘김도건 장학금’으로 적립된다. 여기에서 조선해양공학과 재학생 2명에게 매학기 장학금이 주어진다. 양 씨는 “아들을 대신해 후배들이 바다와 선박설계에 대한 꿈들을 키워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던 김 군의 뜻을 후배들이 기억하면서 오래오래 기릴 수 있도록 기금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김 군은 학업 성적은 물론 눈썰미가 남다르고 손재주도 뛰어났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장난감 조립에 소질을 보였다. 마산에서 자란 때문인지 바다와 선박에 관심이 많아 결국 선박설계사를 염두에 두고 진학했다. 평소 부모님께 “배를 만들어 선물할지도 모른다”는 농담도 건넸다. 양 씨는 “도건이가 평소 자신감도 많았지만 의지가 강해 한번 마음먹으면 꼭 해내는 성격이었다”고 회고했다.




고향인 마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 일용직으로 입사한 아버지 김 씨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마산에서 직장을 다니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김 씨는 현재 두산중공업 환경안전부에 소속돼 오염물질 유출 등을 감시하는 일을 한다. 양 씨는 15년 전부터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한다. 벌이가 많지 않아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마산시 회성동 80평방미터짜리 빌라가 재산의 전부다. 그래도 김 씨 가족은 행복했다. 국립대 사범대를 다니는 도건이 누나는 내년에 졸업을 한다.

김 씨는 “올해만 지나면 고생이 끝나고 생활이 좀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고 말했다. 양 씨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지만 대신 6명의 자식(독도 레이서 동아리 회원)을 새로 얻었다”며 “그들이 아들 딸 역할을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자주 연락을 해온다”고 말했다.

동아리 리더인 한상엽(25·중어중문학과) 군 등이 보낸 편지에는 “도건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평생 그럴 겁니다. 이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다면 정들기 전에 ‘웃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봅니다. 시간 될 때마다 도건이를 가슴에 품고 찾아 뵙겠습니다”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

양 씨는 “도건이와 비슷하게 생긴 청년이 지나가면 아들로 착각하기 일쑤”라며 “형편이 좋아지면 도건이를 위한 기념사업이라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버지 김 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세상에 태어나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자식도 부끄럼 없이 그렇게 살다 떠났습니다.”

구김살 없고 적극적이며 명석했던 스무 살 청년 김도건 군은 독도를 밝히는 별이 되었다.  

글과 사진·강정훈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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