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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오후만 되면 서울 풍납종합사회복지관에는 활기가 넘친다. 주부봉사단원들이 정성껏 만든 밑반찬을 송파구 관내 장애인 가정에 배달하기 위해 청소년 봉사동아리 ‘보둠이’ 회원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반찬’을 배달하는 보둠이 회원은 3월에 중학생이 된 최한샘·한비(12) 쌍둥이 남매부터 대학생이 된 김성현(18) 군까지 모두 9명이다. 매주 월요일 학교수업이 끝나면 복지관으로 달려와 40가정에 일주일치 밑반찬을 배달한다. 날씨가 추우면 양손에 반찬이 든 비닐가방을 들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게 쉽지 않다. 겨울뿐 아니라 무더운 여름이나 눈, 비가 올 때도 힘이 든다.  

“그럴 때마다 반찬을 받는 분들을 생각해요. 반찬을 전해주면서 그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시는지를 느끼거든요. 그러면서도 다들 감사하다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세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끼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7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성현 군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한 주도 거를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봉사는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고,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선천성 백내장을 지니고 태어난 성현 군은 1%의 성공률만 믿고 수술을 받아야 했던 절체절명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해 미국에서 두 번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시력을 잃지 않았지만, 지금은 녹내장과 싸우고 있다. 녹내장은 안압이 높아져 눈이 아프고 시야가 좁아지는 증세가 나타나는 병이다. 심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 요즘도 성현 군은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조심하고는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눈에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제가 백내장 수술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고 해요. 그래서 부모님은 남을 돕는 사람이 되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저도 제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성현 군은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중학교에 입학한 후 집 근처 풍납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갔다. 보둠이 활동 초기엔 방문해야 할 40가정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지 못해 다른 집에 반찬을 갖다 주기도 했다. 쌀자루와 김치통을 나르다 힘이 부쳐 떨어뜨리기도 했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참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과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학원 빼먹고 봉사활동 하느라 혼도 많이 났지요”
중고등학생 가운데는 봉사활동 점수 때문에 마지못해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성현 군은 밑반찬 배달뿐 아니라 여러 영역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확대해나갔다.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하는 친구들에게 ‘봉사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청소년 자원봉사 소식지를 만들었다. 자신이 다닌 풍납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에 자원봉사단도 조직했다. 또 어린이 화상환자를 돕는 단체인 ‘비전호프’ 활동, 장애아동을 1 대 1로 멘토링하는 ‘하트하트재단’ 활동, 저소득층 청소년공부방 지도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성현 군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6년 여름방학 때는 세계청년재단과 하트하트재단을 통해 파키스탄에 가서 지진으로 집을 잃은 난민들에게 텐트를 쳐주고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2007년 봄방학 때는 글로벌피스메이커를 통해 호주에서 나무심기와 잡초제거 활동을 했다. 

대학입시에 신경 써야 할 고3 때까지 일주일에 2, 3일씩 봉사활동을 하느라 학원을 빼먹은 적도 여러 번. 그러다 보니 공부 때문에 걱정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시험 기간에 압박감을 받긴 했죠. 봉사활동을 한다고 성적이 떨어지면 다들 어떻게 보겠어요? 하지만 공부한다고 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어요. 저는 봉사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또 다른 공부라고 생각해요.”성현 군은 봉사활동에 들인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잠을 줄였다. 공부할 때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고1 때 4등급 정도였던 성적이 고3 때는 2등급까지 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맡은 일은 해야 한다’는, 봉사활동을 통해 익힌 성실한 자세가 자기관리에도 도움을 준 것이다.

“봉사활동은 사실 자신을 위해 하는 겁니다. 처음엔 남을 도우려고 시작하지만 하면 할수록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와 자신이 성장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거든요.”



성현 군은 봉사활동을 통해 자아를 찾고 세상 보는 눈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를 보는 시선이 다 곱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대학 가려고 봉사활동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또 ‘봉사활동은 이제 그만하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요구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고1 때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정말 자원봉사가 좋아서 하는 걸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송파청소년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한비야 씨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꿈을 접지 말고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지라고 조언해주신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사회복지 숨은 현장 알리는 사회복지전문기자 되는 게 꿈
성현 군은 올해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복지에 헌신하겠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성현 군의 꿈은 사회복지전문기자가 되는 것이다. 송파청소년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사회복지의 숨은 현장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진 결과다.

요즘은 자원봉사활동도 화려한 외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밑반찬을 전달하는 일 정도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화려한 이벤트성 봉사보다 단순하지만 꾸준히 계속되는 생활 속 봉사가 더욱 절실하다. 그래서 7년째 계속되고 있는 성현 군의 밑반찬 배달 봉사가 더욱 값지고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성현 군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글·이혜련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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