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0여 년 전 5월, 산불이 났어요. 방화 장비를 짊어지고 산의 8부 능선 부근 현장에 도착해 진화작업을 펼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맞은편 불씨를 발견했고 진화를 위해 달려갔는데, 그만 이끼에 미끄러지면서 병풍 같은 바위자락을 30여 m 구르다 나무뿌리에 걸려 멈췄어요. 제 밑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더군요. 나무뿌리에 걸리지 않았으면 아마 그때 세상을 떴을 겁니다.”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서울국유림관리소 연천팀 안순진 실장의 말이다. 안 실장뿐 아니라 산불진화 현장에 나서는 산림공무원과 산불예방진화대원들은 누구나 ‘아찔한’ 경험이 한두 번씩 있다.
최근엔 큰 산불이 나면 산림청 헬기가 지원을 하지만 그래도 잔불은 물탱크를 짊어지고 사람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 마음은 급한 데다 무거운 물탱크와 진화장비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다 보면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창녕 화왕산 산불로 인명피해가 난 것 역시 이들에겐 가슴 아픈 사건이다.
“작은 불로 보여도 건조한 날씨에 돌풍이 동반되면 금세 화염으로 변하는 게 산불입니다. 화왕산 산불 역시 갑자기 발생한 돌풍이 큰 불로 이어진 것이죠.”
산불이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정부에선 이 기간에 산불 예방과 감시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산불예방진화대원을 모집해 운영한다. 경기 연천·포천 지역의 산불예방진화대원은 모두 35명. 정년퇴직한 소방공무원, 산림업 관련 종사자 등으로 이뤄진 이들은 계약 기간(3개월 15일) 동안 산으로 출퇴근하며 책임 지역 내의 산불 위험 요인을 제거하고 산불이 일어나면 즉시 조치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산불예방진화대원 포천팀장 이철(49) 씨는 “하루 8시간 근무지만 24시간 비상대기하고, 특히 주말에 더욱 바쁜 게 우리 일”이라고 말한다. 언제 어느 때라도 산불이 났다 하면 뛰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겐 비상연락망이 가장 중요하다. 만의 하나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대원은 해고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등산객이 많은 주말엔 더욱 신경을 곤두세운다.
등산객 증가로 1년 내내 위험, 산불 예방 인력 늘렸으면
산불이 발생하면 이들은 20kg이 넘는 물탱크를 등에 짊어진 등짐조, 방화선을 구축하는 방호벽조, 불을 끄는 진화조 등으로 나뉘어 신속하게 진화에 참여한다. 대형 산불이 났을 땐 산림청 헬기의 지원을 받지만 여전히 위험한 요소들이 많다.
“산불이 겉으로 진화된 것처럼 보여도 낙엽 밑이나 바위 틈 등에 잔불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잔불이 불씨를 되살리는 바람을 만나게 되면 금세 불기둥으로 치솟아 화염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죠.”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주말도 반납하고 늘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24시간 비상대기해야 하는 팽팽한 생활. 그렇다고 이들의 보수가 넉넉한 편은 아니다.
“돈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많이 힘들겠죠. 하지만 보통 직장인들은 주말에만 등산을 하는데, 저희는 날마다 산에 오를 수 있으니 즐거운 일이죠. 무엇보다 제 작은 노력으로 우리 숲이 지켜질 수 있고, 그래서 더 많은 시민들이 숲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납니다.”
‘숲 지킴이’들의 노력에도 산불은 해마다 반복된다. 과거엔 본격적으로 건조해지기 시작하는 3월 중순부터 발생했지만 올해는 1월부터 산불이 났다. 산불은 99%가 사람의 실수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산불 예방의 근본대책 역시 산을 찾는 이들의 올바른 자세에서 비롯된다.
산불 예방을 위한 인력을 늘리는 것도 시급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이곳 연천팀의 산불예방진화대원 40여 명이 관리하는 지역만 1만 1000여 ha에 이른다. 산림 관리에 철저한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산불 예방을 위한 전문요원을 100여 일만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과거엔 봄가을 건조한 시기에만 산불이 났지만 최근엔 등산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1년 내내 산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천팀의 안 실장은 “한국의 조림사업은 성공했지만 상업성 있는 나무는 거의 없는 게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울창한 아름드리 숲을 가꾸기 위해선 수백 년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난 40여 년의 노력으로 겨우 얻게 된 우리의 숲. 이 숲을 수백 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숲 지킴이들의 모습이 마치 나무들처럼 늠름하고 건강해 보였다.
글·최철호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