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당신의 상처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내 상처를 당신이 안아주길 원합니다. 그 누구도 당신을 손가락질할 권한도, 자격도 없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이며 행복할 권리를 타고난 존재입니다. 전 그저 당신이 행복하길 원합니다.”
지난 9월 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공연된 뮤지컬 ‘당신도 울고 있나요?’에서 김선경(41) 씨가 읊조리는 대사다. 자신이 기획, 연출하고 대본도 직접 쓴 이 뮤지컬에서 그는 1인 8역으로 출연해 사랑의 아픈 사연을 옴니버스 식으로 연기했다. ‘치유 뮤지컬’이라는 부제를 붙인 건 이금희 아나운서의 조언 덕분이다. “치유란 다른 게 없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울고 웃고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해 공연을 올리기 전 이런 부제를 붙인 것이다.
김 씨는 뮤지컬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당신도 울고 있나요?’의 DJ 선경 역을 맡았다. 뮤지컬 1부에서는 청취자가 보내온 7편의 사연을 읽으면서 20대부터 70대까지 사연의 주인공들을 연기했다.
실연당한 여자, 사기꾼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여자, 매 맞고 사는 여자,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할머니 등을 연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애절하기도 하고, 카랑카랑하기도 하다. 남자배우 장준휘 씨가 감초로 등장하지만 김 씨가 거의 혼자 극을 이끌어가다시피 한다. 사연 중간에 ‘배반의 장미’ ‘화장을 고치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고, 자신이 초청한 가수 이문세, 신성우, 배우 정경순, 추상미, 이다희 씨 등 유명 연예인들과 토크쇼를 곁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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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아픈 사연이 있는 관객을 무대로 불러 위로하는 시간이다. 공연마다 관객에게서 의외로 솔직하고 감동적인 사연들이 쏟아져 나온다. 김 씨는 이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분들, 정말 시원하게 울고 가세요.”
김 씨는 기획·연출료는 물론 출연료도 전혀 받지 않았다. 또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공연에는 장애인을 초청해 무료로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뮤지컬로는 최초로 수화 통역원을 두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보면서 공연을 관람하고, 시각장애인은 들으면서 상상을 하죠. 장애인도 행복과 슬픔은 마음으로 똑같이 느끼잖아요. 장애인, 비장애인으로 나누지 않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선교사가 꿈이었던 김 씨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타인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조언도 서슴지 않다 보니 나눔과 기부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직원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다. 하지만 자신이 평소에 하는 봉사활동이나 공연 기부에 대해서는 ‘그저 평범한 일’이라고 말을 아낀다.
1988년에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 씨는 뮤지컬 배우로 더 유명해졌다. 1991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역을 필두로 ‘갬블러’ ‘라이프’ ‘루나틱’ ‘맘마미아’ ‘진짜 진짜 좋아해’ ‘클레오파트라’ 등 수많은 뮤지컬 무대에 섰기 때문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인기상을 3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MBC 드라마에 출연, ‘태왕사신기’의 연부인과 ‘크크섬의 비밀’의 김 부장을 연기해 시청자들과도 친숙하다.

“제 인생의 반을 살았다면, 반이 더 남았잖아요.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자문해보니 답은 ‘연기’였어요. 제가 가진 재능이 연기인 만큼 연기로 계속 봉사해야죠.”
그에게 기부란 곧 ‘같이 손잡고 안아주는 나눔’이다. 올해 9월과 10월에 ‘당신도 울고 있나요?’로 뮤지컬을 선보였듯이 앞으로도 매년 같은 시기에 치유와 나눔을 위한 ‘노 개런티’ 공연을 할 계획이다.
“돈, 명예, 지위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용기와 신념이 필요해요. 손을 펼쳐서 자꾸 비우고 내려놓아야 하는데, 쥐려고만 하니까 힘들 밖에요. 욕심을 조금만 덜 내면 서로 나눌 수 있어요.”
김 씨는 앞으로 치유극 대본을 쓸 때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할 작정이다. KBS ‘추적 60분’이나 SBS ‘긴급출동 SOS 24’에 소개된 사건들을 바탕으로 대본을 쓰겠다는 것이다. 올해의 소재가 사랑이었다면, 내년에는 사기와 폭력이다. 다소 험악한 소재일 수 있지만, 이 때문에 고통 받았던 사람들을 치유하는 게 목적이다.
“사회문제 고발이 고발로만 끝나면 안 되잖아요. 동시에 개선이 돼야 하고, 포용과 평화의 메시지도 있어야 해요. 예술이 그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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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재정문제다. 이번 공연을 할 때도 역시 재정문제가 큰 난관이었다. 직접 기업체나 단체로 공연을 지원할 만한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사람들은 ‘배우가 이런 일까지 하느냐?’며 놀라기도 했고, 색안경을 쓰고 보기도 했다.
“배우도 무대에서 내려오면 일반인과 똑같아요. 공연을 지원해달라고 찾아가면 ‘드라마나 다른 데 출연해서 돈 벌면 되지 왜 그러느냐’ 하는 분들이 있어요. 욕먹는 건 상관없어요. 저랑 함께하는 배우들이 배가 고프면 안 되니까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죠. 관객에게 좀 더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점에서도 지원이 아쉬워요.”
‘당신도 울고 있나요?’를 공연하며 두 달 동안 번 돈이 한 푼도 없지만, 그동안에도 작품 섭외는 쇄도했다. 머지않아 뮤지컬 ‘더 씽 어바웃 맨’ ‘진짜 진짜 좋아해’ ‘건 메탈 블루스’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돈이 아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돈 때문에 힘들고 가슴을 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는 게 필요하죠. 개런티나 생활비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10년이고 20년이고 공연 기부를 계속하겠습니다.
글·변인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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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