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국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자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화제가 됐다. 철저하게 실력을 기본으로 선수를 선발했고, 선수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전력을 극대화했을 뿐 아니라 순간적인 대응력으로 심판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그의 모습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매료됐다. 그가 한국을 떠난 이후 한국축구는 하락세를 걸었고, 여러 명의 외국인 감독이 거쳐 갔지만 그다지 성공한 카드는 없었다.
7년이 지난 지금 한국축구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장수가 있다. 그는 외국인 감독이 아닌 한국인 허정무(54) 감독이다. 주장에 박지성을 선임해 대표팀 분위기를 백팔십도 바꿔놓고, 신인 선수들을 대거 발탁해 대표팀의 전력을 끌어올리는 등 선수를 발굴해내는 탁월한 안목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어냈다. 대표팀이 예선에서 두 경기를 남기고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결정짓자 허 감독의 지도력은 히딩크 감독과 비교될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허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새로운 실험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K리그에서 뛰어난 기량을 펼치는 선수라면 누구나 대표팀에 불러 기량을 점검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대표팀의 초반 성적은 초라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주변의 우려에도 ‘세대교체 없는 대표팀에는 미래가 없다’는 일념으로 계속해서 ‘젊은 피’를 수혈했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개인기술과 패기로 무장한 젊은 태극전사들은 박지성, 이영표, 이운재 등 노장 선수들과 호흡을 이뤄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대표팀은 북한과의 첫 경기에서만 비겼을 뿐, 이후 두 경기를 내리 손에 넣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 경기로 치러진 3차전을 이근호, 박주영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승리하며 대표팀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대표팀은 무패로 본선 진출을 결정지었다. 허 감독의 뚝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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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주장 선임도 그의 탁월한 선택 중 하나다. 기존 주장 김남일의 경고 누적으로 공백이 생기자 허 감독은 주저 없이 박지성을 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세계적인 스타 박지성이 주장을 맡아 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면서 팀을 융화시켰다. 엄격한 선후배 관계가 아닌 함께 어울리는 선후배 관계가 형성되면서 어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자신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또한 박지성의 솔선수범은 대표팀 분위기를 ‘스스로 움직이는 팀’으로 백팔십도 변신시켰다
허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강약 조절이 특징이다. 허 감독은 강하기로 소문난 감독이어서 그가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직후 대표급 선수들은 걱정했다. ‘대표팀 발탁=죽음’이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
하지만 허 감독은 바뀌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훈련 방식과 지도 스타일 등을 모두 바꿨다. 경기 중심의 훈련과 강온(强穩) 조화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지휘했다. 허 감독의 스타일 변신은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선수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전술과 훈련 방법 등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함께하는 축구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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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감독은 또 하나의 도전을 남겨두고 있다. 한국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태극호를 월드컵 16강에 올려놓는 것이다. 최근 2차례 월드컵에서 대표팀 사령탑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허 감독은 ‘한국인 감독도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이 생소한 아프리카 대륙의 남아공에서 열리기 때문에 16강의 길은 더욱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허 감독은 벌써부터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월드컵 최종예선전을 마친 직후 남아공으로 날아가 현지답사를 하고 내년 1월의 전지훈련지를 정하는 등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초석 다지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남북한이 동시에 출전하는 첫 무대다. 허 감독 처지에서도 더욱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전력만 놓고 보면 남과 북 모두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 여러 차례 월드컵을 경험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럽, 남미 등 세계적 강호들에 비하면 기량이 한 수 아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북한은 경험도 없고 전력도 크게 떨어진다. 세계축구의 흐름과 달리 수비에 치중하는 스타일로 월드컵 본선에서 강호들과의 대결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남과 북의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은 얼마나 잘 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고 유럽 강호들과 대결하면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고 말한 박지성의 말처럼 경험을 통해 팀을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은 오는 11월 유럽 원정으로 2차례 A매치를 치를 계획이다.
북한은 아직 구체적인 훈련 계획 등을 발표하지 않았다.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한 남과 북이 동시에 16강에 오르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러나 둥근 축구공처럼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종목이 바로 축구다. 남과 북 선수들이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해 보여준 불굴의 투지와 노력이라면 또 한 번 기적을 일으키며 세계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글·최용석(스포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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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