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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한 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빛나는 눈물들 /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짧은 추억도 /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제 잡스럽게 못 살아요. 그런 싸움을 거쳤는데 사리사욕을 채우겠다고 해야 할 것을 저버리는 짓은 못 하죠.”
문승현(50) 씨는 6월 항쟁이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삶의 테두리를 둘러버렸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그 전 5·18때 이미 그런 삶의 테두리를 갖게 됐지만 6월 항쟁으로 인해 더 강고해졌다는 것이다.

6월 항쟁 당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냥 싸웠단다. 싸우는 것 말고 무엇을 했겠느냐고 오히려 질문했다. 공연을 했을 것도 같은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단다.

 그만큼 그에게 6월 항쟁은 투쟁이었다. 1977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문승현 씨는 선배들의 꾐(?)에 넘어가 노래패 ‘메아리’에 들어가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노래패 ‘새벽’을 만들고 민중문화운동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6월 항쟁 때 많이 불렀던 ‘그날이 오면’을 만들었다.

“내 가슴에 맺혀 있는 전태일의 이미지를 끄집어낸 것이 ‘그날이 오면’입니다. 86년 전태일의 일생을 그린 노래극을 만들 때였어요. 그 곡이 86년 3월쯤 소개됐는데 순식간에 대학가에 퍼졌죠.”

그는 좋은 이미지가 있으면 노랫말과 곡이 동시에 떠올라 금세 노래를 만든다. 그렇게 나온 노래가 ‘사계’다. 반면 ‘그날이 오면’은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일주일 이상 작업한 것이다.

6월 항쟁을 겪으며 샐러리맨과 주부로 지내던 친구들을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노래패에 있다보니 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  모스크바와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했다. 귀국 후 대학 강단에 섰다가 교수사회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지금은 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뮤지컬이 될지, 노래극이 될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새로운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젊은 날 가슴 뜨겁게 느꼈던 그 감동을 담고 싶어서다. “6월항쟁에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얻기 위해 모두 힘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을 얻어낼 것이냐가 아니라 누가 뭘 하느냐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입으로 떠드는 대신 자기 자리에서 실천하며 무언가 결과를 얻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6월 항쟁의 계승 아닐까요?”  

            이선민 기자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지난 2004년 3월 탄핵규탄 촛불시위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켰던 국민들의 결집력과 새로운 ‘광장문화’를 만들어 가는 단초 구실을 했습니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어느 나라에도 없는 역동적이고 독특한 광장문화를 보여주었습니다.”

문화평론가이며 축구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정윤수(42)씨는 6월 항쟁 의미가 퇴색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발끈하고 나섰다. 6월 항쟁 기념사업 기획자문위원인 정씨는 20년 전의 6월 항쟁 당시 함성의 감동은  광장문화에서 되살아났다고 강조했다.

정씨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상상변주곡. 지난 4월 26일부터 시작해 6월 8일까지 열리는 상상변주곡 강좌에는 6월 항쟁의 주역들이 강사로 초빙돼 6월 항쟁 이후 지난 20년간 우리사회의 변화를 문화적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앞으로 20년 후 한국사회의 비전을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광장문화가 민주적인 소통과 교류의 가능성을 높여주었고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습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요 정치적 계기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광장)로 모였다”며 “이는 87년 이후 상실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 것이고 6월 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정씨가 강조하는 민주국가의 광장은 민의의 소통, 화합과 축제의 장이다.
정씨는 “촛불시위 집회장과 거리응원의 시민들은 ‘4열 종대 헤쳐 모여’식의 권위주의적 동원령을 뿌리치고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인 군중”이라며 “6월 항쟁도 정치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참여해 빚어낸 국민의 합창”이라고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에게 87년 6월은 인생의 전환기를 만들어주었다. 85년 서울 대일고등학교 3학년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측으로부터 퇴학을 당했다. 그 전력으로 대학진학은 불가능했고 민중문화에 심취해 갔다. 이후 87년 1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고 5개월 뒤 6월 항쟁이 일어나자 시청광장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했다.

6월 항쟁 후에는 민중문화 운동가로서 활동했고 그 경험을 살려 1995년 문화 비평지 ‘리뷰’를 창간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 중에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축구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력과 입담으로 독창적인 축구 칼럼의 경지를 선보여 많은 축구인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정씨는 “아직 우리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고 더 발전해야 한다”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국민들은 모두 6월 항쟁의 커다란 뜻을 간직하면서 가슴 속에 영원히 계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태욱 기자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작가 김영현(52) 씨의 6월 항쟁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집회가 원천불가능하던 시절 대학을 다니다 붙잡혀 고문과 강제징집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울 중심가를 누비는 시위가 기분 좋았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의 일원으로 시위대와 함께 종로, 청계천으로 다니며 유인물도 돌리고 대중을 학습시키는 역할도 했다. 밤마다 거리에서 평가회를 열고 내일의 일정을 토론했다.

“6월 항쟁은 우리 역사에서 놀라운 성과다. ‘광주’ 이후 성숙한 학생운동과 여러 분야의 축적된 잠재력이 응집돼 폭발했다. 4·19와 함께 ‘유이’하게 승리한 대중운동이며 위대한 민중의 힘을 보여주었고 사회 전반에서 민주화의 가치가 바로 서는 전환점이 됐다. 동남아 등 식민지에서 해방된 많은 나라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산업화와 함께 민주적 역량을 과시했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6월 항쟁 후 ‘운동사를 되돌아보자’는 생각에 문학에 전념하기로 했다. 1990년 첫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냈고 문단에는 ‘김영현 논쟁’이 일었다. ‘인간의 철학적 고뇌’를 담은 그의 소설에 대해 ‘문학을 풍요롭게 한다’는 칭찬과 함께 ‘개량적’이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후 그의 작품은 언제나 ‘인간’을 성찰했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오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경제 민주화가 미흡해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나눠지지 않고 있다. 반면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이 너무 커져 물신화(物神化) 풍조가 두드러지고 민주화의 정신이 퇴행하는 것 같아서다. ‘보다 겸손하게, 더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하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6월 항쟁 이전 민주화를 이룬 다음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살펴보면 민주화를 성취한 여러 나라들이 경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사적 딜레마라고 해야 할까. 한 쪽에서는 웰빙을 말하고 한 쪽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니 요즘 말하는 ‘양극화’가 큰 문제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삶의 방식을 모색할 때다”.

시인이자 소설가로 그리고 실천문학사 대표로 일하면서 그는 친구들과 함께 자본주의적 삶과 문화의 대안을 찾고 있다. 작은 소비와 생산을 목표로 한 작은 공동체 운동이다. 환경운동, 생태주의, 녹색운동, 대안운동 등이 모두 포함된 아직 실험적인 움직임이다. 

“양적으로 풍족하면서도 삶의 질이 행복하지 못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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