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간혹 노숙인을 보고 ‘멀쩡한데 왜 저러고 사나?’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노숙인들을 대변하며 큰형님 노릇을 자처하는 이가 있다. 바로 남대문경찰서 노숙인 보호전담관리 TF 팀장 장준기(48) 경사다. 그가 말하는 노숙인들의 사연은 기구하기만 하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을 전전했던 김모(39) 씨. 사회에 나왔지만 학력도 없고, 기술도 없는 그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었다. 막노동을 하다 허리를 다친 후로는 일도 할 수 없어 결국 노숙인으로 지내게 됐다. 한때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던 최모(52) 씨는 회사가 망한 후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도 빚쟁이에 쫓기다 노숙인으로 전락한 경우다.
“노숙인 중에는 일하기 싫다고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보다 수많은 좌절을 겪다가 삶의 애착이나 의욕이 사라져버린 노숙인들이 더 많습니다.”
장 경사는 노숙인을 악하거나 못된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단지 의지력이 부족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따뜻한 가족애가 부족한 것이 노숙인이 늘어나는 한 원인이라는 나름의 분석도 내놓았다.
장 경사는 오후 3시부터 서울역 앞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그가 서울역 광장에 들어설 때면 노숙인들이 달려와 이런저런 일들을 부탁하느라 소란스럽다.
그는 이들을 마치 가족처럼 대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꼼꼼하게 듣고 해결해준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출근 때마다 벌어지는 광경이다.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 이에 대한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임금을 받지 못해 노숙인으로 전락했던 분을 도와 체불임금을 받아낸 적도 있고요.”
장 경사의 따뜻한 마음이 통해서인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노숙인들도 그 앞에서만큼은 순한 양이 된다.
남대문 경찰서 서울역 지구대에 근무하는 장준기 경사는 올 2월 15일자로 노숙인보호전담관리 TF 팀장을 맡았다. 하지만 노숙인과의 인연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F팀 만들어 체계적 관리·진료소 설치
장 경사가 서울역파출소에 부소장으로 부임한 것이 2000년. 당시 서울역 주변은 IMF 이후 급격히 늘어난 노숙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몸이 약한 노숙인이 앓다가 숨진 채 발견되기 일쑤였고 싸움이 자주 일어나고, 대낮부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많았다. 게다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걸을 하거나 시비를 걸어 민원신고도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파출소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장 경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노숙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제일 먼저 그들과 통성명을 하며 수백 명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숙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동안 가족을 찾아주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서 노숙인들의 호적등본을 떼어 주소지로 직접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5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지만 가족을 찾았어도 다시 돌아오거나 외면하는 통에 그만두고 말았다.
“살아온 세월도 힘든데 우리까지 노숙인을 모질게 대하면 안 되죠. 단속보다는 시민 피해를 예방하고 이 사람들의 인권도 보호해주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남대문경찰서는 노숙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생활질서계, 보안과, 수사과와 중구청의 사회복지사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노숙인보호전담관리 TF팀을 만들었다. 그후 112 신고 중 노숙인 관련 사안이 48% 이상에서 지금은 20% 이하로 급격히 낮아졌다. 두 달밖에 안 됐어도 성과가 커서 다른 지역 경찰서들과 화상회의를 통해 사업결과 등을 공유중이다.
“노숙인을 단속, 관리하는 것은 최소한의 임무일 뿐입니다. 앞으로 행정과 경제적인 분야는 지자체에서, 보살핌은 비정부기구(NGO)에서 하는 식으로 발전적인 업무 분담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또 서울역 앞에 노숙인을 위한 진료소를 설치했다. 노숙인들이 몸에 이상을 느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게 했고, 꽃동네와 연계해 질병이 심한 노숙인은 꽃동네에 보내 회복을 도왔다.
그는 노숙인들에게 무언가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발기술도 익혔다. 사비를 털어 이발기계를 사고 가까운 미용실에 들러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매주 금요일 오후면 자원봉사자나 이발 기술이 있는 노숙인들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이발을 해준다. 호응도 높아서 매번 30~40명이 줄을 선다.
노숙인들을 위해 친구, 법률상담가, 인생상담가, 형, 동생, 오빠, 이발사 등으로 무엇이든 필요한 역할을 해온 장준기 경사는 “일이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것도 없어서 보람차다는 표현을 하기가 쑥스럽다”고 말했다.
글 이선민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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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