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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제일 좋아요.”
밝게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박영욱(35·여) 씨. 사장님이 제일 좋다는 말에는 거짓이 없다. 싫은 것을 좋다고 꾸미는 것은 그녀의 능력 밖이다. 정신지체 3급 중증장애인으로 유치부 연령의 지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해맑은 마음을 서른 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갖고 있다. 거짓말도 할 줄 모르고 잔머리를 굴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취직하면 엄마가 좋아해요. 칭찬도 해주고요. 나도 돈 벌 수 있으니까 일하는 게 좋아요.”

박영욱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액세서리를 만드는 회사인 진영사에서 일하며 지각 한 번 한 적 없다. 경기 남양주 퇴계원면에서 서울 강동구 길동까지 한 시간 넘는 출퇴근길이 즐겁기만 하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 자리에 앉아 작은 구슬을 실에 꿰는 단순 노동이지만 지루함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일을 해서 좋다고 연신 ‘좋다’는 말만 반복한다. 일하면 돈을 버니까 좋고 그 돈을 모아 언젠가 부모님을 위해 쓸 수 있으니까 또 좋단다.


지각 한번 한 적 없어 회사서도 신뢰
“돈은 전부 저축하고 있어요. 나중에 돈 많이 모으면 부모님께도 드리고 결혼도 할 거예요.”
수줍은 듯 미래의 꿈을 살짝 내보이는 박씨는 장애인이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10년 가까운 동안 아플 때 빼고는 일을 쉰 적이 없다. 선풍기 회사, 양말 공장, 휴대전화 공장 등 박씨가 거쳤던 공장 사람들은 그녀가 성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진영사 권영화 사장은 “처음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함께 일하면서 성실한 모습에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특히 이번 회사에 애착이 크다. 2년 전 난소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까지 받은 후 다시 일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차에 얻은 직장이기 때문이다.
“수술할 때 무서웠어요. 그래서 엄마 손을 꼭 잡았더니 무서운 게 많이 없어졌어요.”
암치료가 어느 정도 끝난 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할 때 다시 찾은 곳이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장애인 종합복지관.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줬던 곳으로 박씨에게 사회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15세 이상 장애인 대상 다양한 직업재활 프로그램
박영욱 씨는 특수학교인 주몽학교 졸업 1년 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았다. 장애인이 취직하게 도와준다고 해서였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는 직업재활 프로그램이 있다. 만 15세 이상 장애인 대상으로 전문적인 직업평가를 거쳐 직업적응훈련, 지원고용 및 보호고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박씨 역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2003년 신일산업에 취업하면서 정식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박영욱 씨는 복지관에서 직업교육을 받을 때도 일은 했지만 주로 아르바이트생 신분이었다. 그러나 복지관에서 알선해주는 회사들은 박씨를 4대보험에 가입한 정식 사원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 회사가 문을 닫아 옮겨야 할 때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은 새로운 곳을 소개해줬다.

이번에도 복지관이 지난해 8월부터 실시 중인 프로그램을 통해 박씨의 취업을 도와줬다. 노동부로부터 위탁받아 실시하는 ‘지역 특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찾아가는 노동부 통합고용지원 사업’ 이 바로 그것. 특히 강동구는 장신구와 화훼 분야를 특화산업으로 택해 취업자와 고용주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우리 영욱이가 버는 80만 원은 보통 사람의 수백만 원에 해당합니다. 부모가 계속 살아있다면 모르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갈 텐데….”
말문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 김광옥 씨는 장애인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암치료를 위해 박씨가 계속 복용해야 하는 약값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직장도 잘 다니고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일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박영욱 씨의 소망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선민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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