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중견 탤런트 정애리 씨는 이제 ‘시청률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어도 될 성싶다. KBS 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서는 주인공 새벽(윤아)의 양어머니 영숙 역으로,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선 배신한 남자를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누는 뷰티숍 사장 민현주 역으로 출연해 연이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씨는 두 드라마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대신 그만큼 그의 일과도 바빠졌다. 그야말로 촬영의 연속. 잠시 짬을 내기도 쉽잖은 스케줄이지만 그가 바쁜 틈틈이 꼭 하고야 마는 일이 있다. 서울 노량진의 한 보육원을 찾아 아이들을 돌보고, 결식어린이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웃을 위해 연탄과 도시락을 나눠주는 일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연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봉사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서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 됐다”며 웃음을 짓는다.

하루라면 그들에게 힘이 돼줄 수 있다. 이틀 정도는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사흘간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이 한 달, 두 달…한 해 두 해 쌓여간다면 봉사와 희생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결정이다. 정 씨의 봉사는 어느덧 7000일을 넘겼고, 세월의 두께만큼 그 의미도 단단해졌다.
정 씨의 봉사활동은 2005년 5월 자전에세이집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랜덤하우스)의 출간과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이 에세이집을 통해 정 씨는 ‘굿 뉴스’와 ‘배드 뉴스’ 두 가지를 팬들에게 알렸다. 봉사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굿 뉴스라면 남편과의 별거는 배드 뉴스였다. 정 씨는 에세이집에서 ‘남편과 헤어져 사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는 말로 ‘17년 동안 사회봉사 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글 말미에 당시 자신의 상황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그는 끝내 이혼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지만 이후 일상엔 변화가 없었다.
정 씨의 소속사 관계자는 “정 씨는 출연료의 30% 이상을 떼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고, 에세이집 인세 수입 1억여 원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전했다. 이어 “2005년 말에는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10여 일간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정 씨는 누구도 쉽게 걷기 힘든 길을 그렇게 20년 동안 걸어왔다. 아픈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우리나라 산간오지이든, 세계의 아스라한 변방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매주 일요일이면 들르는 ‘아기의 집-성로원’에서 싹이 튼 그 따뜻한 마음은 노숙자와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로 이어졌고, 국경을 넘어 몽골과 인도의 배고픈 아이들에게까지 미쳤다. ‘봉사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그는 “나눠주니 더 넉넉해지고, 마음이 사랑으로 채워져 더불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정 씨는 일요일이면 딸 지현이와 함께 성로원에 간다.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은 모녀에게 일상이 됐다.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한 일이니 딸과 함께 성장해온 셈이다. 그렇게 봉사는 유전되고 전염되는 듯하다. 초등학생 때는 한창 놀고 싶을 나이라 귀찮아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지현이는 자기를 떼놓고 갈까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교회 권사이기도 한 정 씨와 딸 지현이의 일요일은 그 자체로 찬양이요, 찬송이다.
정 씨의 선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 씨 역시 정 씨의 봉사활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 씨는 “여기 한 명의 실존 천사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여자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심장을 꺼내주었는지 모른다. 바로 정애리가 그런 사람”이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자 여행가인 한비야 씨도 침이 마를 만큼 정 씨를 칭찬한다. 한 씨는 “정애리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똑똑하다, 차갑다, 예쁘다’일 거다. 나 역시 지진해일 현장을 같이 가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밤중에 지진해일 경보로 비상대피하는 등 동고동락한 후 밝혀진 그의 정체는 바보처럼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 약자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정 씨를 따라다니는 키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월드비전, 연탄은행, 생명의 전화, 평화의 마을 등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했거나 하고 있고, 북한동포 돕기 ‘생명의 이음줄 운동’ 후원, 한국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연예인 자문위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해왔다. 또한 2002년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정 씨는 연기로도 일가를 이뤘다. 출연 드라마의 시청률 고공행진은 덤이다. 1978년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그는 수십 편의 드라마와 연극, 영화에 출연해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MBC·KBS 연기상, 서울연극제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최고의 연기자로 평가받아왔다.
봉사는 연기생활에 활력을 더했다. 정 씨는 ‘너는 내 운명’과 ‘아내의 유혹’의 인기 비결을 묻자 “‘너는 내 운명’이 처음부터 고정 팬들이 있었다면, ‘아내의 유혹’은 방송시간이 프라임 타임대라서 무난하게 시작한 사례다. 이러한 후광 덕에 입소문이 나면서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무엇보다 김순옥 작가가 쓰는 ‘아내의 유혹’의 스토리 전개가 빠른 데다 깔끔한 연출과 연기자들의 열연이 보태져 인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가슴에 사무친 게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그들의 거친 손을 잡을 때마다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꺽꺽 소리 내어 함께 울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어요. 그들도 꾹꾹 누르며 살고 있는데 감히 제가 함부로 그럴 수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미칠 것처럼, 죽을 것처럼 깊은 슬픔을 제 속에 꾹꾹 채워 담았지요.”
정 씨의 가슴 저미는 고백이다. 자신의 일에 성심을 다하고, 남들을 위해선 최선을 다하는 여자. 정 씨의 봉사는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바꾸고 있다.
글·강석봉 스포츠칸 기자 / 사진·랜덤하우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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