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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숙(본명 정현숙)이 1월 30일 삼성효행상 특별상을 받았다. 30년 동안 지병으로 고생하던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면서 치매 가족 돕기와 치매 바로 알리기 캠페인에 공헌한 공로 덕이다. 현숙은 1996년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2007년 중풍으로 오랜 투병생활 끝에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핀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효녀 가수’일까.

현숙은 시상식에서 상금으로 받은 1500만 원을 고스란히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기부금으로 내놓아 또 한번 주위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 돈은 척추 질환과 심장 확장증을 앓고 있는 문지수(8) 양의 치료비로 쓰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제정된 상이니 상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는 건 당연해요. 상금이나 부수입이 생기면 오래 전부터 무조건 ‘사랑의 리퀘스트’에 기부해왔고요. 방송이 시작된 1997년부터 꾸준히 인연을 맺어왔는데 어려운 이웃을 항상 투명하게 돕는 진정한 자선 봉사 프로그램이죠.”

현숙은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부르면 언제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간다.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인과 독거노인, 중증 환자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그들을 목욕시키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닐 텐데도 지금껏 그가 얼굴을 찌푸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현숙은 2004년부터 매년 어버이날에 장애인과 독거노인을 위한 이동목욕차량(4500만 원 상당)도 ‘사랑의 리퀘스트’에 기증해왔다. 이 목욕차량들은 현숙의 고향인 전북 김제시를 비롯해 경북 청송군, 경남 하동군, 충남 청양군, 울릉도 등 복지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생계가 어려워 수발들 사람이 없는 장애인과 독거노인들은 일년에 한 번 목욕하기도 힘들어요. 그분들에겐 이동목욕차량이 꼭 필요하죠. 제가 기증한 이동목욕차량들이 전국을 누비는 것이 소원이에요. 그날을 위해 매달 500만 원씩 저축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마이너스 통장을 쓸 때도 있다는데 그의 표정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쓰고 남은 돈으로 어떻게 남을 돕느냐”며 “쓰고 나면 꼭 채워지고 일도 더 잘 풀린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평소 현숙은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을 돕는 데 열심이다. 치매 하면 현숙이 떠오를 정도다. 2년 전부터 한국치매학회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그는 치매 바로 알리기 캠페인에 앞장서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치매 가족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격려와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밤마다 속옷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겨넣는 게 일이었어요. 아버지가 말없이 집을 나가거나 제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도 큰 아이를 돌본다는 생각으로 보살폈어요. 치매 환자는 누군가가 계속 지키지 않으면 무슨 일을 낼지 모르기 때문에 가족의 애정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일을 안 하면 생계유지가 힘든 가정에서는 온종일 지키기가 쉽지 않죠. 그럴 땐 환자 속옷에 죄다 이름과 연락처를 새겨두는 게 좋아요. 또 자꾸 말을 걸어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도와야 하고요.”

현숙은 김제의 농가에서 12남매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났다. 그중 여섯은 태어나면서, 자라면서 세상을 떠나 지금은 3남 3녀 중 셋째딸이다. 인사성 밝고 싹싹한 막내딸을 유난히 귀여워하던 어머니는 자식 중 절반을 잃어서인지 늘 형제간의 우애와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셨단다. 그런 어머니의 가르침은 현숙을 비롯한 6남매로 하여금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효성을 발휘하게 했다.

“어머니는 제가 가수로 데뷔한 이듬해에 중풍으로 쓰러지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입을 다무셨어요. 게다가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돼 11년 동안 병상에 누워 호스로 영양액을 공급받아 연명하셨죠. 혹여 어머니가 잘못 되실까봐 저뿐 아니라 가족 모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오빠 내외는 평일에, 언니 내외는 주말에, 저는 밤마다 병석을 지켰죠.”

그 때문에 현숙은 그 오랜 세월을 매일 서너 시간씩 새우잠을 자며 버텨야 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도 도맡다시피 했다. 무엇보다 여자로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쳇바퀴처럼 방송국과 병원을 오가며 지내다 보니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엄두를 낼 겨를이 없었다. 이제는 결혼하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그에게서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속 깊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 순리에 따를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부모를 원망해본 적이 없어요. 자식이 아픈 부모를 봉양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건강하게 나아주신 부모에게 늘 감사하며 기쁘게 모셨어요. 다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게 후회돼요. 좋은 음식 먹어도 목에 걸리고, 좋은 곳에 가도 편치 않아요. 몸이 불편한 노인을 봐도 부모님이 생각나고….”

그의 두 눈에는 어느새 부모를 향한 그리움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는 아버지를 “남에게 퍼주기를 좋아하던 한량”으로,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 친정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해다 자식들을 먹인 현모양처”로 기억했다. 또한 “그 두 분이 가수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다”며 옛일을 떠올렸다.   

“1980년대 초반에는 데뷔곡 ‘정말로’로 승승장구했지만 1988년부터 가요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슬럼프에 빠졌어요. 그러다 1996년 부모님이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휴먼 다큐 프로그램에 나와 재도약할 수 있었어요. ‘사랑하는 영자씨’가 그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깔린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거든요.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요즘 여자 요즘 남자’, ‘오빠는 잘 있단다’, ‘춤추는 탬버린’, ‘월화수목금토일’ 등 매년 한 곡씩 히트를 쳤어요. 그 바람에 방송대상과 프로듀서가 뽑은 최고 인기 가수상 같은 큰 상도 받았고요.”

현숙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두 번의 죽을 고비를 극적으로 넘기고 그의 생일인 2007년 7월 1일 고향인 김제의 선산에 고이 잠들었다. 현숙은 “어머니를 생일에 가슴에 묻었다”며 “혼자 살아 생일도 잘 못 챙기는 나를 위해 이날까지 기다렸다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전의 히트곡 ‘정말로’의 노랫말처럼 가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감동적인 삶의 주인공 현숙. 이제는 그의 아름다운 인생에 “사랑하는 현숙씨” 하고 끼어들 멋진 상대가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글·김지영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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