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 “아직 맥박이 뛰고 있는데 포기란 있을 수 없어요.” 이제 막 피어나는 교포 여고생에 얽힌, 딱한 얘기를 들은 총영사는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 캐나다 토론토 리치몬드 고교 이연주(가명·17) 양의 목숨을 건 국내후송 작전은 이렇게 막을 올린다. 현지 의료진도 연주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쓰러진 뒤 100일이 넘도록 정확한 원인조차 짚어내지 못한 채 꺼져가는 생명에 안락사를 권유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연주 가족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때는 지난해 10월. 의식불명 상태인 연주를 놓고 찾아간 곳마다 고개를 저었고, 다음달 끝내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선고’가 내려졌다.
연주의 사연은 교포사회에 알려져 총영사관과 닿았다. 지난 1월 김성철 총영사는 공관에서 연주 아버지를 만나 자세한 내용을 듣고 한국에서 치료할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항공사와 환자이송 전문 업체에선 너무 어려운 문제라 다들 포기하고 말았다.
총영사관의 노력은 하나의 작전이었다. 김 총영사는 대한항공 본사에 협조를 요청한 끝에 좌석 6개를 어렵사리 예약하고 의사 1명과 간호사 1명을 동행시키도록 했다. 항공사 역시 긴급환자용 흡입기를 동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2월 4일(현지시간) 저녁 연주를 실은 비행기가 떴다. 그리고 가족과 의료진은 꼬박 하루를 넘긴 6일 새벽 서울에 발을 내디뎠다.
부모도 포기한 어려운 일 발벗고 해결 앞장
국내로 옮겨진 연주는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쓰러질 때의 충격으로 생긴 바이러스 침입에 따른 뇌 손상 때문이라는 게 현재 서울대병원 분석이다.
연주의 아버지는 “평소 재외공관에 대해 솔직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이번에 딸의 일로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특히 총영사 스스로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주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24시간 언제든지 연락해달라고 해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해외에서 뜻밖의 어려움으로 눈앞이 캄캄했는데, 서울로 후송되기 전날에도 이운주 영사가 병실로 찾아와 의료진을 면담하는 등 백방으로 뛰는 모습에서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고 고마워했다.
이처럼 ‘같은 핏줄’이라는 인식이 돋보인 일은 외교가(街)에 잔잔하게 번지기 시작해, 때마침 서울에서 열린 총영사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한 김 총영사가 5일 연주에게 문병을 하면서 뒤늦게 알려져 훈훈함을 안겼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요. 같은 한국인으로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교민을 영사관이 도와야지 누가 하겠어요?”
이번 일이 화제에 올랐다며 소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이역만리의 우리 교민들에게 주재국 공관은 친정과 같은 의미”라면서 “해맑은 얼굴에 눈까지 깜박여 금세라도 말을 건네며 벌떡 일어날 것만 같은 연주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되뇌었다. “연주의 일도 직원들이 힘을 보탠 것”이라면서 “국내로 급송할 때 실무를 맡아준 총영사관 직원들의 보람이 살아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4시간 지원체제 … 밤중에도 교민 민원 해결
2005년 토론토로 부임한 김 총영사는 연주의 일처럼 함께 애쓰는 모습을 교포사회에 보여줘 직원들에게 보람을 찾아주는 데 힘을 쏟는다. 취임하면서 24시간 근무체계를 갖춰 한밤중에도 교민들의 민원전화가 연결될 수 있도록 당직자 제도를 도입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려면 민원실 근무를 회피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실천으로 옮겼다.
민원실에 업무파악이 잘 된 고참 직원들을 배치하는 한편, 현지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친절교육을 실시했다. 나아가 기피부서 근무자일수록 복지에서 혜택을 주는 등 설득과 배려로 엘리트 직원만 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처음에는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인력이나 환경만 탓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오히려 민원실이 선호부서가 됐고, 직원들 사기까지 높아졌다”는 그의 말을 두고 재외공관 영사 서비스의 지침을 제시하는 듯하다고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말했다.
“꽃다운 나이의 딸을 병상에서 기약도 없이 지켜보는 연주 부모님의 기도를 하늘이 알겠지요. 보란 듯 일어서는 연주를 통해 우리나라의 저력을 캐나다에 알리고 싶습니다.”
빠듯한 국내일정을 마친 그는 이렇게 말을 끝맺으며 11일 인천공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송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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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