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해마다 불거지는 연예인 병역비리로 군 내에서 연예인에 대한 평가는 까칠한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든 ‘진짜 사나이’가 있다. 육군 제30기계화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우등생’ 조교, 천정명 상병이 그 주인공.
지난해 1월, 남보다 늦은 29세에 군에 입대한 그는 스타라는 명성과 연예인의 끼를 살릴 수 있는 ‘연예 병사’ 자리를 마다하고 현역병을 자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대한민국 남아라면 누구나 다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인 만큼, 좀 더 특별한 군 생활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처럼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극한의 상황에 부딪혀보고 싶었어요. 최전방의 철책 선에서 종일 보초도 서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입대 초기에 최전방인 철원이나 파주 쪽 수색대에 가기를 희망했는데 30사단에 배치된 후 중대장님의 권유로 조교가 됐습니다.”
당시 중대장이던 허철민 대위는 그에게 “훈련병을 통솔하기 위한 자질과 기량이 충분하다. 조교도 수색대만큼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면서 “너의 팬이니, 실망시키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조교가 된 후 그는 그 말을 종종 가슴에 되새긴다. 조교에겐 그 어떤 폭언이나 구타, 욕설, 가혹행위도 ‘퇴출’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훈련 도중 감정을 통제하기 힘든 순간에도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큰 소리로 기선을 제압하거나 정당한 절차에 따라 얼차려를 주는 방식으로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한다.
어릴 적 호기심 충족시키는 실사격훈련 좋아
“요즘 군대는 예전과 다릅니다. 상명하복 원칙엔 변함없지만 스스로 훈련 의욕을 키울 수 있도록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깨어있는 정병’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곳, 30사단의 모토가 바로 ‘깨어있는 정병’이지요.”
신병교육대에서 그가 맡은 보직은 교육조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신병교육이 주 업무다. 이때는 제식훈련, 화생방훈련, 사격술예비훈련, 실사격훈련, 수류탄투척훈련 등을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진행하는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훈련은 실사격훈련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장난감 총을 수없이 분해하고 조립한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그는 훈련병 시절 ‘진짜’ 총을 받아들고 가슴 벅찼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격교육 받을 때도 최대한 집중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고, 잘하면 포상휴가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 목표가 생겨서인지 20발 중 16발을 맞혔어요. 지금도 30발 중에 24~28발 정도는 맞히는데 베스트는 아니어도 잘하는 축에 속합니다(웃음).”
“가장 큰 깨달음은 가족의 소중함”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주간 교육이 끝나는 오후 5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이다. 신병교육기간 5주 동안 한 번 있는 야간행군 날만 빼고 장병들 누구나 이때는 나름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천정명 조교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이 날 때면 부대 내 체력단련장부터 찾는 그는 운동을 워낙 좋아해 고1땐 체대 진학을 목표로 체대입시학원에 다녔을 정도. 그 무렵 우연히 만난 연예기획사 대표의 권유로 생각지도 않던 연예계에 발을 들였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다져놓은 그의 운동감각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그가 인라인스케이터로 출연한 영화 ‘태풍태양’(2005)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여준 것이나 지난해 사단대항 농구대회에서 신병교육대 선발팀을 1등으로 이끈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군에 들어와 새롭게 재미를 붙인 취미는 영어 공부. 그는 미국에서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한 이상윤 조교에게 매일 한 시간씩 영어를 배운다. 훈련소 동기이자 80년생 동갑내기인 이 조교는 평소 그가 ‘쌩’이라고 부르는 가장 친한 전우이기도 하다.
“그 친구가 옆에 있을 때 영어공부를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과 동남아 등지로 수출돼 해외 팬이 많아졌거든요. 한국어를 배워 직접 편지를 써보낸 일본 팬, 벌써 26번째 팬레터를 보낸 팬클럽 회장,‘멋지게 나라를 지켜달라’며 손난로와 장갑, 과자 꾸러미 등을 보내준 모든 팬들이 지금 저에겐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훈련병이 잠자리에 든 밤 10시 이후에도 그의 일과는 끝나지 않는다. 조교들끼리 모여 그날의 교육과 주요 사안을 점검해야 하고, 만일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돌아가며 훈련병 숙소를 지켜야 하는 까닭이다. 매일 훈련병 한 명씩을 관찰하고 면담해 관찰일지를 쓰는 것도 주요 임무 중 하나라는 그는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훈련병과 상담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상담하다 보면 우는 훈련병도 있습니다. 가정불화로 고민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단체생활에 적응 못해 힘들어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습니다. 저 역시 힘든 훈련병 시절을 보냈기에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점점 더 힘들어질 뿐이에요. 그래서 상담 때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하죠.”
훈련병 시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는 그는, “군대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가족의 소중함”이라고 밝힌다. 28년 동안 섬유회사를 경영해온 아버지는 그에게 근면과 성실을 행동으로 가르쳐준 ‘가장 존경하는 분’이요, 그런 남편과 자식들을 불철주야 뒷바라지해온 어머니는 ‘가장 사랑하는 분’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아버지는 저처럼 군에서 조교생활을 하셨답니다. 그래서인지 여기 오시면 선배로서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또 어머니는 제가 보고플 때마다 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는데 ‘천정명 조교님, 우리 아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줘서 고맙다’는 글을 볼 때마다 자랑스러우시대요. 저 역시 그 말을 들을 때 조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올 가을 낙엽이 질 무렵인 11월 27일에 군복무를 마치는 ‘빨간 모자의 사나이’ 천정명 조교. 지금까지 1300여 명의 훈련병을 제몫 다하는 군인으로 키워낸 그는 “제대하는 그날까지 자랑스러운 아들, 고마운 조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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