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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미친놈 김성화 태양의 무대에 서다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TV 속 아이돌 가수들의 춤을 따라 추며, 꿈을 키웠다. 부모님을 졸라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우겼다. 그러나 막상 예고에 들어가서 본 춤은 그가 꿈꿔왔던 것과 달랐다. 타이츠를 착용하고 무용 동작들을 익히는 일은 그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흥이 가는대로 필(Feel)이 느껴지는 대로 춤추고 싶었던 소년은 ‘백댄서’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당연히 학교는 뒷전이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세상은 중학교 졸업 학력의 댄서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했다. 그리고 한양대 무용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소년은 청년이 되어 해외 무대를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 독일, 세르비아…. 춤출 수 있는 무대가 있다면 어디든 갔다.

1백7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키. 선이 가는 몸과 앳된 얼굴. 무용가 김성화(30) 씨의 체구는 작다. 하지만 작다고 얕보면 안된다. 그의 작은 체구 속에는 용광로처럼 끓는 정열과 다부진 각오가 숨겨져 있다.

지난 5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제13회 세르비아 세계안무대회에서 김 씨는 특별상을 받았다. 하지만 애꿎게도 정작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건 ‘본업’인 현대무용이 아니었다. 세계적 공연집단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그 계기가 됐다. 김 씨는 지난해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열린 ‘태양의 서커스’ 오디션을 통과하고 정식 단원이 되어 화제를 뿌렸다.

“태양의 서커스 오디션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5분 간격으로 계속되는 심사진의 주문에 따라 공이 됐다가, 돌이 됐다가, 심장이 되기도 해야 했어요. 조금만 실수해도 바로 떨어지는 거였죠. 사흘에 걸쳐 하루 7, 8시간씩 피를 말리며 진행하던 오디션이 끝나고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그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요.”
 

그런 벅찬 기쁨도 잠시, 그는 아직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와 함께 최종 합격한 11명의 신규 단원들의 사정도 같다. 기존 공연팀이 예정된 공연을 모두 끝내야 캐스팅을 확정하는 공연 시스템 때문이다. 5월 중순 무렵 캐나다 몬트리올 본사에서 보내온 e메일에 따르면, 단원들의 신상명세 파악이 끝났고, 이제부터 캐스팅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왜 하필 ‘태양의 서커스’일까. 한양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무용 콩쿠르에서 여러 상을 수상했던 그이기에 궁금할 법도 했다. 이에 대한 김 씨의 설명은 명쾌했다.

“순수예술이니 대중예술이니 하는 경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통하는 무대를 겪어보고 싶었어요. ‘태양의 서커스’팀이 만들어내는 무대는 그야말로 스펙터클 그 자체예요. 무용가와 안무가, 가수 등 소속 아티스트만 해도 1천명이 넘고,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들이 펼쳐지죠. 재능 있는 젊은 무용가들과 기량을 견주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 씨가 이렇게 세계무대를 꿈꾸게 된 건 런던 체류 당시의 영향이 크다. 유학 한번 간 적 없는 이 토종 무용가는 2007년에 ‘선진국 공연문화를 보고 싶어서’라는 열망만 품고 부모님을 설득해 런던 히스로 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수없이 많은 무대 공연과 길거리 공연을 접하며 갈증을 씻었다. 부족한 생활비는 엉터리 영어로 무용 강습을 하며 메웠다. 그렇게 지내는 2년여 동안 그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충격이 컸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어요.”

그는 무턱대고 무용단의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설상가상 살인적인 런던의 물가가 발목을 옭죄었다.

“나중엔 주머니에 돈 한푼 없어서 며칠째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어요. 돌아다니면 배가 너무 고프니까요. 그런 최악의 시기에 ‘태양의 서커스’ 오디션 정보를 접하게 된 거죠.”

다행히 한국의 지인이 빈까지 가는 여비를 대신 내주었고 그는 당당히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리고 이 같은 해외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아르코 영 아트 프런티어’에 선정됐다. 아르코 영 아트 프런티어는 시각예술, 문학, 무용 등 각 예술 장르에서 활약하는 차세대 예술가들의 해외연수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김 씨는 올 하반기에 미국 뉴욕 바리시니코프 댄스 파운데이션과 컨템퍼러리 댄스로 유명한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 안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이다.

“긴 팔다리와 체구를 가진 서양인 댄서들과 비교하면, 체구가 작은 동양인 댄서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어요. 저 역시 작은 키가 예전에는 큰 핸디캡으로 여겨졌죠. 그러나 요즘은 도리어 도전욕이 생겨납니다. 어떻게 보면 단점이지만, 작품 속에서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난다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작다고 그저 작은 게 아니라, 작기 때문에 더 큰 재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유학 한번 가보지 못한 토종 무용가로, 서구인들에 비해 왜소한 체구로 세계무대를 겨냥 중인 김성화 씨. 열정과 꿈으로 쏘아올린 그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빚을지 기대된다.

글·정지연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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