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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한식 프랜차이즈 한식당 ‘처가방’ 오영석 대표


서울의 명동과 비견되는 일본 도쿄 중심부 신주쿠 오츠야(新宿區 四谷)에는 일본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흔치 않은 김치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요리를 판매하는 ‘처가방(妻家房)’ 뒤쪽으로 이어지는, 비록 33평방미터가 채 안되는 자그마한 규모의 김치박물관이지만 금싸라기 같은 신주쿠 땅에 한국 김치를 알리는 첨병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곳 김치박물관과 한국식품점 처가방, 그리고 같은 건물 2, 3층의 프랜차이즈 한식당 처가방을 운영하는 이가 주식회사 영명의 오영석(57) 대표다.

오 대표가 일본에 낸 프랜차이즈 한식당 처가방은 현재까지 20곳. 백화점 등의 식품점도 15개에 달한다. 영명의 매출은 2006년 처음 20억엔대를 넘어 21억4천만엔(약 2백76억3천만원)을 기록했고 올해 30억엔대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오 대표는 “이러한 성공은 의상디자인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다음 이어진 좋은 인연과 우연, 아내의 내조 덕분”이라고 공(功)을 돌렸다.

대구 태생인 그의 이력을 되짚어 보면 김치나 요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영남대 화학과 2학년을 다니던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의상실 견습생으로 의상디자인 공부를 했다. 등록금을 들고 가출한 그였지만 누나 셋과 살면서 터득한 여성복에 대한 감각만큼은 내심 믿고 있었다. 26세이던 1978년 서울 명동에 ‘사라미’라는 의상실을 내고 의상디자이너의 길을 걷던 그는 1984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입체 재단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가 입체 재단을 배워 일류 의상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했죠.”

일본 도쿄의 문화복장학원에서 공부하던 오 대표는 도쿄 게이오백화점에 3주간 연수를 하러 갔다가 여성복 담당 오기노 오사무 부장에게서 게이오백화점 취직을 권유받았다. 오기노 부장은 오 대표가 가족 모두를 이끌고 30대 나이에 의상디자인 공부를 하러 온 것을 안쓰럽게 생각했다.

오 대표는 “당시 내가 게이오백화점에 취직한 것만 해도 외국인 취직이 어려운 일본백화점 업계에서 큰 화젯거리였다”고 회상했다.

몇 년간 게이오백화점에 근무하다 ‘한식당’으로 그의 인생이 선회한 것은 우연이었다. 오 대표는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이 1989년 돌을 맞자 일본인 직장 상사들을 집에 초대해 한국음식을 대접했다. 오 대표의 부인 유향희(58) 씨가 만든 한국음식을 맛본 직장 상사들의 반응은 경탄 일색이었다.

당시까지 일본인들이 아는 한식이라곤 일본어로 ‘야키니쿠’로 불리는 불고기가 전부였다. 일본인들 사이에 불고기란 ‘정력에는 좋지만 굽는 냄새가 심해 옷 버릴 생각을 하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는 청결치 못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 가정요리를 먹어보니 갈비찜, 파전, 제육보쌈 등 메뉴도 다양하고 깔끔하면서 맛이 있어 “놀랍다”는 반응이었던 것.

 



마침 1993년 게이오백화점에서 식품점을 열면서 백화점 측에서 오 대표 아내의 음식 솜씨를 믿고 한국식품코너를 열자고 제안했다. 당시 옆 가게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며 입점을 반대했지만 마늘이 ‘스태미너 음식’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그러한 반응은 사그라들었고,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한류 열풍이 불면서 오 대표의 사업은 순풍을 탔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1995년 게이오백화점에 “김치가 썩었다”는 고객 항의가 들어왔다. 알고 보니 양파를 갈아 넣은 깍두기 국물이 발효해 보글거리는 것을 썩은 것으로 오해한 것.

“그래서 김치의 특성을 널리 알리고자 김치박물관을 생각해냈습니다.”

오 대표는 1996년 10월 김치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김치박물관의 문을 열었고 같은 해 12월 한식당 프랜차이즈 처가방 1호점을 김치박물관과 같은 건물에 냈다. 기존 한식당들이 인테리어 등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생계형 식당’이었다면, 깔끔한 인테리어의 처가방은 곧 일본인들 사이에 인기를 끌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 배우 초난강(쿠사나기 츠요시)도 처가방 단골이 됐다.

오 대표는 “처음부터 일본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처가방의 성공 비결”이라며 “인테리어를 모두 일본인 기호에 맞췄고 고객 접대도 푸드코디네이터가 맡아 접대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20여 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경상도 억양이 뚜렷한 오 대표는 개인적인 성공에 머물지 않았다. 1996년 전북도의 전북물산전을 주선한 후 지금까지 전북도의 도쿄사무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의 회사가 사용하는 전체 식재료의 50퍼센트는 한국에서 직수입된다.

“제대로 된 한식의 맛은 한식재료에서 나옵니다. 부안의 곰소 소금, 광천의 새우젓, 청송 고추, 서산 마늘 등을 직수입합니다. 처음 김치를 많이 담그지 않을 때에는 소금 1백 킬로그램이 필요했는데 소량 구입이 불가능해 1톤을 수입하기도 했죠.”

한국인다운 정체성을 강조하는 그의 고집에 큰딸 지선(29) 씨와 동생 지영(27) 자매는 각각 서울대 식품영양학과와 미대를 졸업했다. 특히 지선 씨는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였던 고 황혜성 선생에게서 한식을 배웠다.

오 대표는 앞으로 한국요리학원을 만들어 전통 한국요리를 일본에 보급하는 것이 꿈이다.

“언젠가 오츠야 본점 건물을 다시 지어 김치박물관과 한식당, 식품점, 학원이 한곳에 들어선 한식 전파의 중심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김치박물관이 있는 건물 주변 땅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다. 그는 오는 7월 서울 청담동에 가정식 일식당을 오픈한다.

“흔히 일식에 대해 스시나 회 정도만 알고 있지만 일본 가정요리도 건강식이 적지 않습니다. 음식을 통해 양국의 문화 교류를 도우면서 우리나라의 음식 홍보대사로서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는 ‘기무치’ 틈에서 ‘김치’를 지켜낸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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