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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13년 전 조그마한 얼음이 마냥 좋다던 소녀. 만화영화 대신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비디오를 좋아한 소녀. 그 소녀가 ‘피겨 여왕’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김연아(19·고려대)는 3월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끝난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2006~2007시즌 이후 세 번째 도전 끝에 얻은 값진 우승이었다.

이번 우승으로 김연아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됐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위해 제대로 된 빙상장 하나 없던 한국에서 그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하루에 6번. 1년에 1800번.

김연아가 1년에 휴일을 뺀 300일 동안 점프를 하면서 넘어진 횟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진작 포기하고도 남았을 고통이다. 김연아는 그만큼 지독한 ‘연습벌레’다.

김연아가 주니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2006년 5월. 연습을 너무 많이 한 탓에 4개월은 신어야 하는 스케이트화가 일주일을 버티지 못했다. 매주 새로 스케이트화를 사는 데 지친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가 “연아는 은퇴하기로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그해 12월 그랑프리파이널 대회에서의 첫 우승 뒤 스케이트화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회사가 나타나 위기를 모면했다.

주니어 시절 김연아를 가르쳤던 신혜숙 코치는 김연아를 지독한 ‘연습벌레’로 기억한다. 신 코치는 “트리플 러츠를 하도 많이 뛰어서 헤아려본 적이 있다. 하지만 65회까지 헤아리고 포기했다. 다른 선수들은 같은 시간에 그 반도 못 뛴다”고 회상했다. 땀 흘린 만큼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이제 누구나 잘 안다.

노력 이외에도 김연아의 성공 뒤에는 시기적절한 투자가 한몫했다.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은 ‘돈’으로 고생을 한다. 세계선수권 등 해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항공권 구입 등 여행경비를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또 코치 비용 등으로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선수도 많다.




김연아도 한때 포기하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연아의 아버지도 외환위기 당시 직격탄을 맞아 은퇴할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국제대회 우승 이후 김연아의 부모는 딸의 장래성을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결심했다.

또 2006년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시기적절한 매니지먼트사와 스폰서사와의 계약도 김연아가 금전적인 어려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가 우승을 차지한 뒤 많은 언론들은 김연아의 200점 돌파를 큰 화제로 삼았다.

여자 싱글 종목에서 200점 돌파는 심리적 한계선이었다. 꼭 200점이 100점 만점인 것처럼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김연아가 그것을 세계 최초로 깨뜨렸다. 2002~2003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도입한 신채점방식(뉴저징 시스템)에서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한 것이다. 김연아는 아무도 넘지 못할 것 같았던 선을 최초로 넘었다. 신채점방식이 도입된 뒤 190점대에 접어든 것은 2003년 11월 미국의 사샤 코언이 기존 최고점이던 178.77점을 깨고 197.35점을 얻으면서부터다.

첫 190점대는 2년 만에 깨졌다. 2005년 그랑프리 5차 대회 러시아컵에서 이리나 슬러츠카야(러시아)가 198.65점을 기록했다. 2006년 12월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일본)가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199.52점을 얻으면서 200점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꿈의 200점’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여자 싱글에서 200점은 넘을 수 없는 점수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모든 예상을 비웃듯 김연아는 우승과 함께 200점을 돌파했다. 

이날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심판위원인 이지희 대한빙상경기연맹 피겨 부회장은 “신채점방식이 도입되고 나서 그동안 선수나 심판들이 아무도 깨지 못했던 심리적 한계선을 넘어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작 신기록을 달성한 김연아는 “점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막상 200점대를 넘으니까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는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김연아의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때는 평소보다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일본 기자들은 김연아의 인터뷰 내용을 알기 위해 한국 기자들을 밀착 취재하는 풍경까지 연출했다.




한 일본 기자는 필자에게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까지 김연아에 관한 기사 연재를 부탁한다. 김연아는 일본 스포츠 지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때만 하더라도 한국 기자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유럽과 미국 기자들도 한국 기자들에게 유난히 친절을 베풀었다. 이 또한 김연아의 인기와 중요도를 보여주는 일부분이다.

프랑스의 한 기자는 “유럽 피겨계에서 김연아의 인기는 대단하다. 피겨 팬의 절반 정도가 김연아 팬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다. 그만큼 유럽 기자들도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의 인기는 빙상장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3월 29일 우승을 차지하고 시상대 위에 올라선 김연아는 누구보다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상식 뒤 김연아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바람에 예정된 공식 기자회견에 30분이나 늦기까지 했다. 이미 2, 3위를 차지한 안도 미키(일본)와 조애니 로셰트(캐나다)의 기자회견은 끝난 뒤였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김연아가 기자회견에 늦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위와 3위가 사인을 해주고 있는데 1위가 빠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다시 빙상장으로 돌아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어요. 사인을 하다 보니 이왕 시작한 건데 싶어 팬들 모두에게 다 해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늦었네요.(웃음)” 

글·김동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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