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우리 사법사상 첫 여성대법관을 지냈다. 2004년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다가 첫 여성 대법관이 됐을 때 여성이라는 점이 주된 화제였지만, 10년 정도 위의 선배들을 제치고 48세의 젊은 나이에 대법관이 되어 서열파괴형 인사라는 점도
화제였다.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 김 위원장은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 소수자의 시각을 반영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법관에서 물러나면서 김 위원장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또다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변호사 개업 대신 학자의 길을 택했고, 지난 1월 3일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법조인으로서 사회 소수자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그에게 우리 사회의 아픈 이들을 보듬어야 하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자리는 잘 어울려 보인다. 그의 취임 일성은 “부패 척결”이었다.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에 자리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 위원장은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왼쪽 가슴 위편에 ‘청렴韓세상’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배지를 달고 있었다. 목에 두른 머플러는 한층 더 그를 단정하게 보이게 했다. 그의
어투는 조용하지만 강했다.
지난 1월 3일 취임했으니까 취임 보름이 됐는데 밖에서 본 권익위와 안에서 본 국민권익위원회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밖에 있을 때는 국민고충을 처리하고 행정심판을 하는 곳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에 와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민원을 처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유사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적인 제도개선까지 담당해요. 그런 측면에서 ‘정권 내 야당’ 역할을 하는 기구인 셈이죠.
위원장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사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평생 재판만 해 왔잖아요. 행정경험도 없고, 더군다나 기관장 경험도 없어 제 스스로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지요. 평생 법원에 있었는데 법복을 벗고난 후 그동안 미뤄왔던 일도 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간신히 얻은 자유를 또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리를 받아들였는데요.
정치적인 자리가 아니고,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일할 수 있는 독립된 기관이라는 점 때문이죠. 또 업무성격상 법관 경험도 도움이 될것 같았고요. 아마도 저를 추천한 쪽에서는 ‘행정부의 건전성’을 담보받기 위해서 독립된 곳에서 공직생활을 한 사람을 찾았던 것 같아요.
김 위원장의 남편은 청소년 지킴이로 유명한 강지원 변호사다. 강지원 변호사는 청소년, 장애인 등의 권익신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위원장 제의가 들어왔을 때 부군은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아직 일을 더 해도 되는 나이인데 공익을 위해 봉사를 해야지 왜 이기적으로 생각하느냐’고 하더군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봉사하라고요. 제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대법관을 하면서 경험했던 사법부의 판결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을 하려고 했지요.”
이명박 대통령께서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데 각별히 신경 써달라. 그리고 비리나 어두운 곳을 바로잡는 데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우리 업무의 두 가지 목표죠. 고충업무는 낮은 데까지 세심히 신경 써나갈 겁니다. 반 부패 청렴 정책도 강력히 추진해야겠죠.
우리나라의 부패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아직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발표에 의하면 작년에 우리나라는 세계 178개 국가 중에서 39위이고, OECD 30개 국가 중에서 22위에 불과합니다. 부패는 우리가 선진 일류 국가로 진입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도 ‘공정한 사회’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 부패를 없애고 신뢰할 수 있는 공직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권익위도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는 기반으로서 반부패 청렴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올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반부패 정책은 어떤 겁니까.
올해는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첫째는 고위공직자의 청렴 리더십을 확립할 것입니다. 둘째 알선·청탁 뿌리 뽑기 대책을 수립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무감각하게 행해지는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근절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 1월 13일 공공기관 감사관 회의를 소집해 반부패 청렴정책 추진 지침을 시달했는데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인지요.
올해 지침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고위공직자들의 청탁 수수 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겁니다. 부패는 청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패의 근절은 청탁의 근절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죠. 우리 권익위는 청탁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행위규범을 마련해 각급 공공기관에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 법령 제·개정 시 부패영향평가를 실시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익충돌 방지장치를 신설하거나 보완해 법령상 내재하는 청탁의 소지를 차단할 것입니다.
‘부패 바이러스’라는 용어는 위원장님이 처음 사용하셨죠?
네. 부패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한 사람이 부패하면 옆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전염되는 중차대한 사회적 질병이죠.
이 질병은 폐해가 너무 심각해서 우리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잘산다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기반을 흔들어 놓게 됩니다. 저는 부패에 의한 공무의 처리가 만연한 사회가 가장 전형적인 불공정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것이죠.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정사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발맞춰 국민권익위원회가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부패방지, 국민고충 해결, 행정심판 처리와 같은 권익위의 고유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권익위야말로 공정사회를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선·청탁 근절 노력과 함께 서민의 박탈감을 야기하는 생활 속의 불공정 사례를 발굴해 개선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공직자의 직무관련 정보 거래, 병역의무의 부당한 회피 등 공직자·사회지도층의 다양한 도덕적 해이 사례를 찾아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공직사회에서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고 있습니까.
부패 공직자들이 부패행위로 인하여 희생을 치르는 사회적 손실은 고려하지 않고 개인적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이기적 욕망 때문이라고봅니다. 부패의 토양이 되고 있는 공직사회의 비합리적인 연고·온정주의 문화, 법령·제도상의 부패유발 요인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부패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권익위는 올해 부패방지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지난해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반부패 행동계획을 채택했는데 후속조치는 잘되고 있는지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부패를 척결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9개 분야의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승인한 바 있습니다. G20 각국이 반부패 거버넌스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G20 반부패 의제를 통해
결집된 주요 정책방향들이 정상회의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반부패 실무그룹을 통해 이행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권익위도 ‘UN반부패협약’에서 정한 부패방지 전담기구로서 ‘반부패 행동계획’ 이행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에 있습니다.
고위공직자 청렴도 평가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난해 전문연구용역을 통해 ‘고위공직자 청렴도 평가 모형’을 개발해 두 차례 시험평가를 한 바 있습니다. 시험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모형을 보완하고 있는데 2월 중에 ‘고위공직자 청렴도 평가 표준모형’을 각급 기관에 제공할 예정입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청렴도 평가는 권익위가 강제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실시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권익위는 각급 공공기관이 고위 공직자 청렴도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도록 부패방지 시책평가에 반영할 계획입니다.
공직사회 부패 척결을 위해 특별히 공무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공무원들은 무엇보다 공과 사를 막론하고 자기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공무원 스스로 부패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는 심리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공무원이 매사에 청렴하고 깨끗한 사고를 지니고 있을 때 각종 청탁이나 비리 사건에 빠질 수 있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부패행위는 보통 몇 년이 지나서 밝혀집니다. 일시적으로 숨기고 지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
김 위원장에게 “전임 이재오 위원장의 경우는 현장을 중요시했는데요”라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고충처리 업무도 중요하지만 부패방지 업무에도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장 중심으로 일하겠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고 골고루 모든 업무에 신경 쓸 생각입니다.”
인터뷰 내내 조용하지만 강했던 그의 어투대로 김 위원장은 국민권익위원회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이끌어 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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