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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모든 경계에 꽃이 피더라고, 한 시인이 그리 읊조렸다. 삶과 죽음, 슬픔과 즐거움, 장애와 비장애, 나와 너…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피어난, 이내 뒷심이 되는 꽃. 군포소방서 지방사무를 맡고 있는 박은선(34) 씨에게는 마라톤이 그렇다. 복병처럼 불쑥 걸어와서는 딴죽 거는 절망과 슬픔의 경계. 그것을 사뿐 뛰어넘도록 돕는 발판이 마라톤이었던 게다. 마라톤은 그녀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화사한 봄꽃처럼 그녀의 마라톤은 목울대 따끔한 생의 순간을 불평 없이 지켜보았다. 함께 달려주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양지의 집’ 아이들과 만났다. 우연스럽게 그러나 필연적으로. [B]그녀만의 서포터 ‘양지의 집’[/B] ‘양지의 집’을 꾸준히 찾는 박은선 씨는 필요한 무언가를 기부할 수 있는 게 그저 감사할 뿐이란다. 그랬다. ‘양지의 집’은 올해로 5년째로 접어드는 마라톤이 쥐어준 귀한 인연이다. 그뿐이었다. 봉사한답시고 힘든 아이들을 굽어 보살핀다는 생색 따윈 없었다. 웬만해서는 봉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다. 돕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필요한 것과 그들이 필요한 것을 나눌 뿐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2년 전일 거예요. 군포소방서 내에 마라톤 동호회 ‘서지마 클럽’이 생겼는데, 단체로 나가서 상금을 타왔을 때 그랬어요. 그냥 흥청망청 쓰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자, 뭔가 족적을 남기자. 그게 시작이었죠.” 그래서 방문한 곳이 ‘양지의 집’이었다. 어린 뇌성마비 환자들 31명이 모여 사는 그곳은 모든 게 필요했다. 빨래할 사람이 필요하고 아이들과 눈 맞춰줄 사람이 필요했다. 청소해 줄 사람이 필요한가 싶으면 뚝딱뚝딱 집 구석구석을 고치고 식사를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쭈뼛했다. 도대체 뭘 도와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했다. 당연했다. 처음이었으니까. 그런 시설을 직접 방문한 것도 처음이고, 봉사를 한 것도, 기부를 한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 그저 달렸을 뿐인데 열려진 봉사로서의 길은 경이로웠다.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터라 감동은 배가됐다. “이상하죠? 몇 번 양지의 집을 다녀왔을 뿐인데 뭔가 달라지더라고요. 마라톤을 하는데 아이들이 아른거리는 거예요.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우석이의 웃는 모습도요.” 그때 결심했다. 많아야 1년에 두 번 정도인 단체활동 외에도, 개인적인 기부와 봉사를 해야겠다고 말이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라톤을 하면서 힘든 고비가 닥치면 아이들이 생각났다. 도저히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왜 사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 우석이의 해맑은 웃음을 떠올렸다. 우석이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다, ‘양지의 집’ 아이들을 위해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 그렇게 수십 번을 되뇌었다. 그러는 사이, 돌덩이처럼 무거운 다리가 움직이곤 했다. 죽을 듯 극한의 상황에서도 웃음이 피어났다. 이 고비만 넘기면 아이들에게 힘이 될 거라니 기뻤다. 뒷심처럼 든든한 이들이 바로 ‘양지의 집’ 아이들이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B]기부와 봉사로 마음의 공터 채워[/B] 보통 1년에 10번 정도 대회에 출전한다는 박은선 씨. 그녀는 아직도 처음 완주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2001년 봄, 인천마라톤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뭣에 홀린 듯 내달렸고 2시간여 동안 쉼 없이 뛰었다. 비록 하프코스였지만 완주의 기쁨은 대단했다. ‘이런 맛에 마라톤을 하는구나’ 주억거렸다. 그리고 5년이 흐른 게다. 그 동안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죄다 섭렵했다. 2004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는 풀코스를 3시간 34분에 뛰었다. 그녀의 최고 기록이었다. 하프 기록은 1시간 35분, 10km는 42분에 뛰는 그녀는 아마추어 여자 마라토너 전국 랭킹 50위 안팎의 실력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부상을 입는 날이 많았지만, 상금을 쥐게 되면 참 기뻤다. 그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죽을 것처럼 전력질주해서 받은 돈을 왜 기부하느냐 묻는 이들도 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좋아서 달렸고, 덤으로 상금이 들어왔으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 돈, 필요한 이에게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게다가 ‘양지의 집’ 아이들은 완주 후 찾아드는 허탈감을 채워주었다. 1등을 한들, 상금을 받는다고 한들 결코 채워질 리 없는 마음의 공터를 그네들이 메웠다. “마라톤을 하면서 기부와 봉사에 눈을 뜨게 된 거예요. 아주 다른 인생이 펼쳐진 거죠. 마라톤이 절 위로했듯이 제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싶어요.” 그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하루아침에 완주 기록을 낼 수 없는 마라톤처럼 꾸준히 연습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기부와 봉사도 그리 하겠다고. 먼 미래를 위해 욕심 부리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겠다는 박은선 씨. 그녀가 선택한 현재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마라톤이요, 기부이자 봉사인 게다. 그녀의 색다른 즐거움으로 모든 경계에서 위태로운 것들이 꽃을 피우길 바란다. 활짝 핀 그 꽃으로 그늘진 세상, 환해질 것을 믿어본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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