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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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영광입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 1호’라는 상 자체가 명장·기능장·기능인을 망라한 상이고 최초 수상자라는 점에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 훌륭한 기능인이 많은데 운 좋게 순번 1번이 된 것 같습니다. 기쁨과 함께 무한한 책임감도 느낍니다.”
류병현 대표는 기능인 출신이라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기능인 출신 CEO’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서 ‘기름쟁이’로 불리며 인정받지 못하는 기능인들에게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능인 출신으로 성공한 CEO는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기술과 경영은 다른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기능인 출신이어서 경영을 모른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남보다 더 노력했습니다.”
[B]금형이 친구이자 취미[/B]
류 대표에게 금형은 친구이자 유일한 취미다. 가정 사정으로 공고에 입학한 사춘기 시절에 금형을 만나 30년 넘게 금형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있다. 금형으로 취직을 했고 창업 발판도 금형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능인 출신 가운데 성공한 CEO 대열에 류 대표를 올려놓은 것도 금형이다.
“금형 작업은 아주 기술집약적인 직종입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기도 어렵습니다.”
류 대표는 금형만큼은 우리 기능인이 우리 기술로 책임져야 할 분야라고 강조한다.
류 대표가 기계를 처음 접한 것은 진주기계공고에 들어갔을 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어 돈을 빨리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고에 기능훈련반이 있어 자연스레 첫발을 디뎠습니다.”
공고 금속과를 졸업하고 1975년에 들어간 회사는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였다. 입사 당시 회사에는 목형 직종 기능훈련 공간이 없었다. 공장에서 낮에는 일하고 일이 끝난 밤에는 혼자 남아 목형기능경기대회를 준비했다.
밤늦게까지 목형 연마를 하고 자취방에 들어가 누우면 천장에 목형이 어른거렸다. 3차원 형상의 목형이 문제로 주어졌고 그 목형을 깎는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밤새 천장에 그려본 목형 제조 공정을 다음날 공장에서 다시 실습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는 이듬해인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목형 직종에 출전해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회사에 목형부 훈련실습장이 생기는 계기가 됐다.
1977년에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목형 직종 국가대표가 됐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종합우승을 한 그 대회에서 그는 개인전에서 메달을 따는데 실패했다. 당시 해당 직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탓이었다. 기능인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친구들이 메달을 따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혜택을 받기도 했어요. 눈물을 흘리며 결심했습니다. 노력으로 따라잡자고. 그때의 결심과 노력이 오늘날의 제가 있게 된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1980년부터 그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지도위원을 맡아 후배들을 가르쳤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금메달 수상자 등 8명의 국제대회 메달리스트와 국내대회 50여 명이 그의 지도를 거쳐 탄생했다. 1981년에는 목형 기능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 그는 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97년 스위스 상갈렌에서 열린 기능올림픽대회 목형 부문 심사위원 겸 국내대회 심사장으로 참가했어요. 가르쳤던 후배가 금메달을 땄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그 후배는 기뻐서 울었고, 저는 후배를 통해 제 꿈을 이룬 것 같아 울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기능이라는 두 글자가 제 인생의 전부란 걸 말입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B]동구기업 창업해 중국에도 진출[/B]
그는 1993년 LG전자를 퇴사하고 동구기업을 설립했다. 동구기업은 류 대표의 주특기를 살린 프레스 금형설계와 프레스 금형 부품 가공이 주 종목이다. 동구기업은 1999년 주식회사로 전환해 부품 가공에서 프레스금형 제작을 선도하는 업체로 발전해 지난해 85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LG전자·구미 LG TV·나라엠엔디 등에 납품하고 있다.
동구기업은 2001년에 자체 금형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도내 교육기관과 산학연을 체결하는 등 어느 기업보다 기술개발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1년에는 중국 톈진에 200명의 종업원을 둔 해외법인 ‘천진동구기전유한공사’를 설립, 지난해 매출이 3875만 달러에 달했다.
사회적인 활동도 병행했다. 해군과 자매결연을 해 군의 복지 향상에 기여했다. 공업계 학교 학생들을 위해 강연을 하고 연암공업대학에 장학금도 지급했다.
2004년에는 3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류 대표가 생각하는 경영 이념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기계산업이 발달하고 공정이 자동화돼도 제품이 처음 만들어지는 부분부터 마지막까지 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동구기업이 외환위기의 어려운 시절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도 직원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노조위원장’이라 부를 정도로 직원의 입장에 서려 한다. 그래서 동구기업에는 공고를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부터 올해 62세인 베테랑 사원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산업현장으로 뛰어드는 학생이 20%밖에 안 되는 이유는 기능인이 ‘기름쟁이’로 불리며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이 큽니다. 기능한국인 1호로서 30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차별화된 제작설비로 지속적 기능개발과 인재 육성을 할 작정입니다.”
[RIGHT]이병헌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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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