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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훈련병의 ‘예, 그렇습니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바뀐 신분의 변화 외에도 길게 대답함으로써 존대의 의미가 더해지는 우리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ㅂ니다’라는 말투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어휘가 된다. 군에서 훈련병의 첫 교육을 말투 바꾸기로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루마도 그랬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런 말투가 나왔다. 부드러운 그의 연주를 생각하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은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트레이드마크인 하얀 피부는 6주 만에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지만 단아한 눈빛은 여전했다.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자분자분 이야기를 풀어가는 품새가 마치 오래 전에 군에 다녀온 사람처럼 정리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듯했다. [B]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었다[/B] 피아니스트와 군 생활은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창작 분야를 떠나 집단의 규율을 지키며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군대는 분명 예술가에게는 짐이 될 수 있으리라. 그에게 군 생활은 짐일까?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불과 5분 만에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서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군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이 가득한 훈련병 이루마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그와 다른 훈련병의 차이는 받은 편지의 수에 있을까. “가족과 팬들에게서 200여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느 편지나 반가웠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소중한 친구가 보낸 음악입니다. 편지지 뒷면에 팀 버튼 감독의 ‘유령 신부’ OST 악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들렸습니다.” 훈련소에서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늘 잠이 모자라 졸렸다. 밥을 먹고 나서도 항상 배가 고팠고, 한여름에도 밤만 되면 언제나 추웠다. 훈련소에서 받는 편지는 그래서 더 고맙다. 그 편지지에 음악을 담아 보낸 친구도, 그 편지에서 음악을 들은 그도 참 대단하다. 피아니스트 이루마는 11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 공부를 하며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 영국 시민권이 있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그가 2000년에 시민권을 포기하고 입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난 7월 해군에 입대했다. 당연한 질문이 뒤를 이었다. 왜?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면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면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사람 앞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에 다녀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음악 활동을 계속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서 더욱 군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벌여놓은 일이 있어서 이제야 입대하게 됐지만요.” 10여 년 전, 영국 포츠머스항에 우리 해군 순양함대가 들어왔다. 당시 유학중이던 이루마는 환영 공연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하얀 제복을 입은 우리나라 해군 장병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주위 환경도 그를 해군으로 이끌었다. 김건모·유희열 등 대중음악을 비롯해 순수음악을 하는 많은 이들이 해군에서 군 생활을 마쳤다. 그가 해군을 지원한 중요한 이유가 됐다. 해군의 기초군사학교는 해군 부사관과 병이 될 사람의 군인 신분전환 교육과 기초군사훈련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장병들에게 군대의 특성을 이해시키고 군인으로서 갖춰야할 자세와 정신, 국가관과 안보관을 교육한다. [B]소중한 사람의 의미 깨닫게 해준 훈련소[/B] 6주에 걸쳐 진행된 진해에서의 기초군사훈련은 그를 변하게 했다. “규칙적인 생활 덕에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자야 하니까요.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훈련을 하니 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훈련소에 들어온 날 2분 동안 32개에 그쳤던 팔굽혀펴기가 78개로 늘었거든요.” 훈련소 생활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망울이 유난히 반짝였다. 마치 동물원에서 본 호랑이를 엄마에게 자랑하는 아이처럼.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그의 군번은 입대 동기 970여 명 가운데 제일 빠르다. 나이가 제일 많다는 얘기다. 올해 스물여덟인 그와 가장 나이 차가 많은 훈련병은 무려 10살이나 어리다. 그런 틈에서 훈련 받느라 힘들지는 않았을까. 그의 말을 따르면 주위의 동기들이 더 힘들었단다. 반말을 하자니 나이차가 너무 나고, 형이라고 부르자니 교관의 눈치가 보였다. 이루마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동기들에게 ‘훈련병 이루마’라고 부르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훈련소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법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됐기 때문에 쉬운 면도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탓에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습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훈련소에서는 하루 일과를 끝내기 전에 ‘수양록’을 써야 한다. 그날 훈련에 대한 생각, 군 생활에 대한 다짐 등을 적는 일기지만 그의 수양록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건 역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이나 친구, 음악을 함께한 동료 등에 대한 생각을 적으며 많이 성장했단다. 철들고 나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던 그였지만 훈련소에서 두 번 눈물을 흘렸다. 입소 2주 만에 가족에게 편지를 쓰면서 처음 울었고, 또 한 번은 야간 비상훈련 중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 은혜’를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가족과 팬들에게 건강히 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위 분들을 떠나오니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군 생활이지만 건강하게 무사히 마치고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대해주십시오. 필~승!” 훈련소 수료 후, 대전에 있는 군악대로 배치받는 이병 이루마. 거수경례를 하는 그에게서 병역은 국민의 신성한 의무이면서 권리라는 청년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RIGHT]이병헌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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