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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처음 냅스터(napster)를 만났던 어느 밤을 기억한다. 인터넷 ‘냅스터’라는 놀이터에서 만난 낯모르는 이들. 영국이거나 미국 혹은 들어보지도 못한 곳의 누군가에게서 내가 원하는 파일을 전송받는 기묘함이 밤잠을 앗아갔다. 마치 그들의 일기장을 훔쳐 읽듯 설레었다. ‘내 생각’을 담은 컴퓨터와 ‘네 생각’을 담은 컴퓨터는 그렇게 만났다. 아마도 ‘사람’ 냄새를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현실에 발 딛고 살면서도 시니컬했던 딱딱하기만 한 컴퓨터, 차갑기만 한 온라인에서 팔딱이는 ‘심장’과 마주하니 좋았다. 행정자치부 전자정부본부의 권혁록 씨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반가워 손이라도 덥석 잡으려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어쩐지 이 사람, 사람을 담고 있구나, 싶어서 가슴이 더웠다. [B]사람과 사람을 잇다[/B] “제가 하는 일이요? 전자정부 쪽의 기획 업무죠. 행정기관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평가하는 일입니다. 딱딱해 보이죠? 그래서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조금 더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는 전자정부를 만드는 게 제 의무거든요.” 전자정부라. 그게 뭔가 싶다가 그의 설명에 금세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터넷으로 증명서를 떼는 것이라고 했을 때는 ‘아하’ 무릎까지 쳤다. 등본이나 졸업증명서를 떼러 동분서주하지 않아도 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편리한 삶이 그가 추구하는 삶이겠거니 생각했다. 한데 아니란다. 편리함보다 앞선 게 따뜻함이란다.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거란다. 대부분의 전자 매체가 차갑고, 자칫 전자정부도 그리 비쳐질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을 우려한다는 그다. 그는 편리만 추구하다 잃게 되는 ‘사람 냄새’를 꼭 붙들고 있었다. 어찌 보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니까,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공무원들 편한 게 먼저였던 시절도 오래 전이 아니다. 편리하게 만들어준다고만 해도 고마울 판에, 마음까지 챙겨주겠다니. ‘진짜? 혹시 홍보용 멘트 아냐?’라는 의구심이 들려는 순간, 그의 진심이 닿았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리 같은 삶이 좋아요. ‘사람’ 없이 제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여기는 수해현장 강릉입니다(cafe.daum.net/ TyphoonRUSA)’ 다음 카페를 개설한 것도 그것과 비슷해요.” 처음에는 그저 홍보가 목적이었다. 그러니까 2002년 태풍 루사로 강릉이 아수라장이 된 직후였다. 현장을 다녀와서는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언론에서는 거의 복구되어 간다고 했지만 실상은 참담 그 자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강릉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눈에 밟혔다. 단지 고향이라서가 아니었다. 그 참담함은 충격 그 자체였다. 며칠 동안 불면의 날을 보내고 그는 daum에 카페를 개설했다. 알리기만 하면 누군가는 도와주겠지 싶은 마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진을 올렸다. 한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더니 봉사를 하겠다고,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왔다. 그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다른 삶이 열리고 있었다. 터닝 포인트였다. “봉사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제멋대로들 사느라 주변사람들에겐 신경을 안 쓰는 줄 알았어요. 한데, 루트를 몰랐을 뿐이더라고요. 봉사하고 싶지만 어디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모를 뿐이었어요. 그래서 또 제가 나섰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 천직인가. 그는 또 봉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봉사를 하겠다는 사람을 잇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자원봉사센터에 물어보고, 행정자치부에 연결하고, NGO를 찾아다니면서 공급과 수요를 맞췄다. 일단 수요처가 준비되니까 공급은 문제될 게 없었다. 카페에 어디어디에서 도움이 필요하더라고 올리기만 하면 사람들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누가 얼마나 갔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사진을 보내오고, 고맙다는 엽서가 도착해 알게 됐다. 그렇게 대충 파악한 첫 봉사자는 300여 명 정도였다. “어느 날, 엽서가 왔어요. 무지하게 많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주소를 모르니까 제게 보냈더라고요. 그분들에게 전해달라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습니까. 그저 그 엽서를 캡처해서 올려드리는 일밖에는요.” 이상한 기분이었다. 기대 못한 감동이랄까.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으니 좋았다. 자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구나 생각하며 카페를 접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세상만사 제 뜻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농담 같은 삶은 철마다 해마다 시련을 주었다. 집중호우가 아니면 태풍이 불고 그도 아니면 폭설이었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필요로 했고 무엇보다 그가 필요했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B]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내[/B] 처음엔 강릉지역을 알리려던 카페 ‘여기는 수해현장 강릉입니다’. 한 1년이 지나자 더 이상 지역이 중요해지지 않았다. 홍보 사이트에서 봉사 사이트로 자연스럽게 옮겨진 것처럼 강릉에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것은 진화였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의 진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들풀처럼 자라나 세상을 채색했다. 사실 수해지역에 가보면 자식들도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곳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가 제자를 데려오는가 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그리고 애인끼리, 친구들이 휴가를 반납하고 오는 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마디로 그저 존경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제 돈 들여서 수고스런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연령·계층·성별 따지지 않고 ‘마음’ 하나만으로 뭉친 그들이 있어 자원봉사가 체계를 쌓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2003년에도 태풍 ‘매미’로 인해 삼척 지역이 난리였잖아요. 그때 탄광지역인 삼척시 도계읍 학생들의 공부 공간이 침수돼 책과 컴퓨터 등 기자재가 완전히 날아갔죠. 그때 책 1000권 모집 운동을 했는데요. 한 달 만에 채워졌어요.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5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보내오신 분이에요. 부인과 영화 보려고 샀는데 그보다는 이게 좋을 것 같아서 보내신다고. 그런 마음을 알게 돼 참 기뻐요. 어떤 일을 하건 그처럼 사람과 사람을 잇고 싶어요. 그게 자원봉사 쪽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지금의 이 삶은 어렸을 때 꿈꿨던 세상과 닮아 있다.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커뮤니티를 생각했었던 권혁록 씨. 그 안에서라면 누구도 먹는 걱정 안 하고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 또 커뮤니티끼리의 연결.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들을 겪으면서 달라졌다. 이미 그의 커뮤니티는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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