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자리를 잃는 한이 있어도 청렴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하 권익위)이 최근 행정고시에서 선발된 3백여 명의 사무관을 교육하며 받아 적으라고 한 말이다. 이 위원장은 이 말을 책상 앞에 붙여두고 매일 한 번씩 가슴에 새기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만큼 누구보다 깨끗하고 정직하게 공직생활을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국가기관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거나 ‘이유 있는’ 접대를 받을 때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이제 공무원 스스로 청렴하지 않으면 공직에 발붙일 수 없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지난 5월 4일, 이 위원장을 만나러 권익위를 찾았을 때 직원들은 “공무를 볼 때도 원래 타고 다니던 봉고차로 이동하고, 버스와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국민들의 고충민원을 잔뜩 모아오는 분”이라고 그를 평했다. 하지만 ‘피곤한’ 상사 덕분에 권익위는 물론 다른 공무원조직의 기강도 바로서고 있다며 흡족해했다.
이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공직사회의 청렴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더 나아가 동료와 가족, 이웃에게 전파되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취임 후 꾸준히 현장을 찾아다니며 ‘청렴 특강’을 펼쳐오셨는데요.
청렴이 우리 사회 전반에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지속적인 교육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공직자, 공직 유관 단체 임직원, 기업인 등 1만8천여 명을 대상으로 50여 회의 청렴 특강을 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의 청렴도를 좌우하는 고위직의 청렴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6천5백여 명의 간부급 공직자에게 청렴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앞으로도 ‘찾아가는 청렴교육’ 등을 통해 청렴의식을 지속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올해를 ‘청렴한 나라 만들기’ 원년으로 선포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부패를 불가피하게 용인해왔으나 지금은 그 문제가 선진국 도약과 국가경쟁력 향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부패방지 노력으로 국가청렴도지수(CPI)가 10점 만점에 5.5점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우리의 경제규모에 걸맞은 수준에 도달하려면 7.0점대까지 올라가야 해요.
특히 올해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높아진 국제위상에 어울리는 국격을 실현해야 하는 해입니다. 따라서 반부패와 청렴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청렴문화 조성과 부패 예방에 정부와 국민, 기업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올해를 청렴한 나라 만들기 원년으로 선포했습니다.
반부패와 청렴이 국가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원인 중 하나는 관행처럼 자리 잡은 부패 때문입니다. 선진국들의 CPI는 대부분 7.0점 이상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3만~4만 달러 수준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CPI가 7.0점에 이르면 1.4퍼센트 포인트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서울시립대 반부패행정시스템연구소는 CPI가 1점 오르면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25퍼센트 상승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단기간에 청렴한 나라로 탈바꿈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청렴도가 높은 선진국처럼 공직사회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부패에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모든 사회구성원의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공직자는 반부패와 청렴의 의무화를, 국민은 청렴의 생활화를 꾸준히 실천해야 하며, 기업은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회계를 투명화해야 합니다. 이런 운동이 구석구석에 퍼져 모든 사회 시스템이 투명해져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육에서부터 청렴의식을 확실히 심어줘야 합니다.
최근 청소년의 청렴의식을 측정하는 조사에서 40~50퍼센트의 학생이 ‘보는 사람이 없으면 찻길을 그냥 건너겠다’ ‘거스름돈을 더 받으면 돌려주지 않겠다’고 답해 충격을 줬습니다.
최근 불거진 검찰 스폰서 문제나 기초자치단체장의 비리 같은 고질적인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덕 불감증, 지나친 온정주의, 접대문화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사회가 바로서려면 공무원들 스스로 청렴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부패 관행들이 공직사회와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를 근절하려면 공무원 시험에 청렴 과목을 신설하고 사전 교육을 통해 비리를 저지르면 공직생활을 오래할 수 없고 승진할 수도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사정기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평가와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사회의 청렴문화 확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요.
2002년부터 공공기관의 청렴도 측정을 실시해왔습니다. 그 결과 공직자들의 청렴의식을 높이는 데 많은 부분 기여한 것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우수한 제도로 평가받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4백70여 개 기관을 대상으로 청렴도를 평가했으나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기관이 평가받는 게 마땅해요. 다만 올해는 정원이 일정 규모 이상인 7백10여 개 기관으로 평가 대상을 확대하고 앞으로 계속 늘려나가려 합니다.
고위공직자와 더불어 인허가나 지도단속 등 주요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개인별로 평가하는 방안도 실무 차원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면밀하게 검토 중입니다.
청렴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제 사회와 공조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 등 반부패 국제기구가 발표하는 국가청렴도지수는 기업들이 투자할 때 참고하는 자료입니다. 따라서 국제 사회에서 우리 정부의 반부패 노력과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요.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3차 유엔 부패방지협약 당사국총회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가해 우리나라의 반부패 노력을 설명했으며 지난 2월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몽골을 방문해 반부패, 청렴과 관련한 국제 공조활동을 펴기도 했습니다.
또 조만간 미국을 방문해 유엔, 월드뱅크, 유엔개발계획(UNDP) 등 반부패 국제기구와 미국 연방정부 및 주요 기업인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반부패 정책과 그간의 추진 성과를 홍보하는 한편 반부패 관련 국제 공조 강화를 위한 협력방안도 논의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를 지금보다 20퍼센트만 줄여도 큰 성과”라며 “우리나라의 국가청렴도지수가 현재 39위에서 세계 30위로 올라섰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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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