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정운천(55)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한식 세계화를 진두지휘하기 위해 먹을거리 문화의 현장으로 복귀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5개월 만에 장관직을 사퇴한 이후 1년 6개월여 만이다. ‘한식재단 이사장’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출발선 앞에 선 그를 출범식 몇 시간 전에 만났다. 오랜만의 공식석상에 나섰지만 그는 어색해하거나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우리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잔뜩 꺼내놓을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에 차있는 듯했다. 정 이사장이 그간의 아픔과 슬픔을 지워내고 다시 일어서는 데는 우리 먹을거리, 즉 한식의 도움이 컸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아프고 쓰린 마음을 안은 채 1백일 전국 순례를 했습니다. 남해안 신안 신의도 천일염전을 기점으로 전국의 농업 현장과 산과 들을 찾아다녔지요. 그러다 경북 안동에서 도산서원을 거닐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매화나무를 바라보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매화나무와 함께 접한 시 한 수가 제 힘겨운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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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읊었던 한시를 소개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하니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라’.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다면 매화가 아름다운 향기를 품을 수 없다’라는 뜻이다. 그는 장관 퇴임 후의 힘든 시기를 개인적인 아픔으로 끝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동안 농업인으로서, 정책 집행자로서 우리 먹을거리에 대해 품었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그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로든 달려가 강연을 했고, 대한민국 요리 대경연대회, 전주비빔밥세계화추진단 고문 등을 맡으며 대외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장관 초기부터 우리 음식을 세계화하자고 주창했던 그는 이번에 한식재단이 출범하면서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에 드디어 시동이 걸렸다며 기뻐했다. 그는 “한식이야말로 우리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가 외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했다면 이젠 한식을 통해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참살이 시대에 효소식품이 많은 한식은 비만 등 성인병으로 위협받는 현대인들의 건강을 지켜내기에 그만인 훌륭한 전통음식입니다.”
그는 김치, 젓갈, 고추장, 된장, 간장 등 5대 발효식품을 ‘우리나라의 보물’이라고 일컬었다. 특히 이들 발효식품을 만들어내는 ‘장독 문화’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한식=웰빙음식’이라는 공식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유명 건강잡지나 논문에 한식의 이 같은 우수성을 적극 알린다면 10년 뒤쯤에는 ‘한식으로 건강을 찾자’는 마인드가 전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리라는 것.
한식 세계화를 위한 그의 비전은 아직 한껏 여유롭다. 2천 년이 넘는 우리의 전통음식을 알리는 데에 단기적인 계획은 별무효과라는 것이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연연해하지 말고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짜서 차근차근 한식을 알려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민간기구인 한식재단은 농림수산식품부 한식세계화추진팀에서 꾸린 정책들을 바탕으로 실무를 수행한다. 정 이사장은 “한식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면 표준화가 절실하다”며 “우리 맛의 원형을 발굴한 후 이를 기반으로 외국인들에게 맞는 음식을 개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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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한식을 표준화하는 연구나 인증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한식재단은 이런 표준화사업을 기본으로 한식의 조리법이나 맛 등을 규격화해 한식을 브랜드화할 생각입니다. 또 해외 한식당들과 연계하는 지속적인 교육 및 관리를 통해 이들 한식당의 신뢰도를 높여갈 방침입니다.”
그가 조금씩 드러내는 한식 세계화 아이디어에선 노련미가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 한국키위협회 회장, 초대 한국농업CEO연합회 회장, 초대 농림수산식품부(그 전까지는 농림수산부) 장관 등 ‘초대’ 자리를 여럿 맡아본 터라 처음 맡은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크다고 한다.
“편한 일에 안주하기보다는 개척하고 창조하는 일이 제 성격에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내거는 캐치프레이즈가 ‘소통과 화합’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치, 지역, 세대, 노사 등 사회 많은 부분에서 갈등을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먹을거리를 사랑하고 즐겨 먹는다는 것은 그 누구와도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 오히려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요소라고 봅니다. 한식재단은 그런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10년 전만 해도 정 이사장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김치찌개를 꼽았다. 그러나 지금은 콩으로 만든 된장국이다. 발효식품의 원천 격인 콩 하나로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욱이 콩을 이용한 한식을 많이 먹으면 어려운 형편에 놓인 우리 농촌도 살려낼 수 있다.
“불과 30~40년 전부터 들어온 패스트푸드로 인한 각종 질병이나 불임 등으로 우리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몸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한식입니다. 우리부터 한식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한식이 세계 속의 참살이 음식으로 자리 잡는 날은 곧 다가올 것입니다.”
글·김민지 기자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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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