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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호>이호균 중앙아동보호기관 소장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자칫 소홀하기 쉬운 게 아동복지 분야다. 그 인권 사각지대에 깃발을 꽂고 남의 일에 웬 참견이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법안을 들이밀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학대받는 아동들의 어머니이고 대변인인 그녀는 바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이호균 소장이다. 어린 시절, 그녀의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세계를 누비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일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몇십 년을 훌쩍 넘겼다. 꿈과는 달리 지내다 월드비전에서 일하면서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회복지에 눈뜨게 되었다. 어찌된 인연인지 1991년에는 굿네이버스 창립 멤버로, 1996년에는 복지사업부장으로 일하면서 뜻밖의 화두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아동’이었다. 늘 가까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들에게 눈길이 절로 멈춰졌다. 부러 택하지 않았음에도 다가온 아이들. 그 운명 같은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이 소장이 아동의 권익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B]태양 아래로 아동학대를 끌어내다[/B]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출발점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공명심 따위는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해맑은 웃음을 건네주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12년을 달려왔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처음은 더욱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불모지였던 아동복지는 그녀에게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심각한 수준의 아동학대가 가정 내에서 쉬쉬 감춰지던 시절, 그 인권 사각지대를 뒤엎자니 우선 공부가 필요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국회도서관을 드나들며 논문을 섭렵했다. 가정 내에 감춰진 아동학대를 하루 빨리 공론화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상담센터를 열고,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전화를 개설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듯 바빴다. “아동학대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도 관대했고 간과했어요. 개인사라고 치부하고 말이죠. 지금도 무엇이 학대이고 방임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요. 그래서 인식을 바꾸는 게 필요했어요. 부모와 아동을 둘러싼 모든 이에게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사실, 내 자식 내 맘대로 하겠다고 뻗대기 시작하면 대책 없는 지난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 자식이라도 엄연한 인격체로서 개인의 의지가 있음을 이 소장은 역설한다. 때문에 아동학대는 있을 수도 없는 범법 행위인 게다. 그 10여 년의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결과, 이제는 아동학대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동학대의 현실을 강의하고, 홍보하며 예방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돌려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지역 곳곳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그중 어려운 일은 중앙센터로 들어오는데 가끔 막막할 때가 있다. 도시에서처럼 연계할 수 있는 기관들이 많지 않은 지역이 문제다. 복지관도 없고 정신과 병원도 없고 사람들의 인식도 아직 미흡한 까닭이다. 그런 곳의 신고된 아이를 방문하면 사실 그 옆집 아이도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그 아이만 격리시켜 치료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이 소장은 말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게다. 맥이 탁 풀린다. “그럴 때면 정말 발을 동동 구르죠. 아무것도 할 게 없을 때 소진돼요. 아이들이 힘을 얻어야, 회복해야 우리가 기운을 얻는데 말이죠. 농촌지역, 외딴 지역에 들어가면 해줄 게 없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몰라요. 그래서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웃음만큼 밝은 빛이 있을까. 그녀는 그 빛으로 광합성을 하는 양 세상을 살아간다. 아이들이 웃으면 화사하지만 아이들이 슬프면 기운이 없다. 열심히 뛰었는데도 아직도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B]아이들의 성실한 외교관으로 맞서다[/B] “제 인생에, 그리고 아동학대보호체계 도입에 중요한 아이 두 명이 있어요. 한 아이는 지난 1998년 방송국과 함께 구출해낸 아이인데, 누나는 굶어죽어 앞마당에 매장당했고 그 아이만 구출됐죠. 조금만 늦었으면 굶어죽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신체 학대와 방임, 온갖 정서학대를 받았던 그 아이 때문에 아동복지법을 개정하고 1999년에 법안 발의를 했어요. 그리고 그 법안이 굉장히 미진하게 진행되고 있을 무렵, 부모의 광신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던 아이를 구해냈죠. 그때, 법안이 통과됐어요. 두 아이의 엄청난 불행이 얼마나 많은 아이를 살려낸 건지 몰라요. 참 고맙고 불쌍하고 미안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 그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잠시도 쉴 수 없어요.” 그녀는 말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책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그런 아이들을 예방할 수 있도록 틀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다시는 죄 없는 아이들이 학대받고 죽어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 아이들은 보호받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앞서 보호받을 권리, 의사를 표명할 권리를 가진 하나의 인격체인 까닭이다. 그것만 인식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아동학대가 일어날 리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 모두가 살기 좋은 곳이죠. 아이들은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라는 말을 자주 생각해요. 아이들을 위한 이 활동은 투자인 겁니다.” 아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호균 소장.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진정한 외교관이구나 끄덕이게 된다. 나라와 나라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외교관이라면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의 나라를 왕래하는 이는 바로 그녀다. 연약한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외교관, 이 소장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를 떠올리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녀가 존재한다는 게 우리 모두에게 다행인 것 같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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