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못 쓰게 된 폐현수막들이다. 그 옆으로는 깨끗하게 세탁된 각종 묵은 옷들이 한가득 걸려 있다. 누군가에게는 처치 곤란한 ‘쓰레기’들이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곧 새 생명을 얻는다. 폐현수막은 헌 벨트와 만나 멋진 빅백이 되고, 낡은 소파 가죽은 근사한 반지갑으로 변신한다. ‘그린매직’이 이뤄지는 곳, 바로 리블랭크의 사무실이다.
리블랭크는 2006년 ‘아름다운 가게’에서 재활용 제품 브랜드 사업인 ‘에코파티 메아리’를 담당했던 디자이너 3명이 모여 2008년 3월 탄생한 에코 브랜드다. 지금은 경영에 관여하느라 디자인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는 채수경(37) 리블랭크 대표 역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 출신이다.
채 대표는 프랑스의 유명 패션 브랜드인 까르띠에가 올해 10월에 발표한 여성 창업인 15인에 들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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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운영하는 리블랭크의 사업 모델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기부받은 헌 옷과 소파 천, 한 패션업체에서 지원받은 자투리 천 등을 이용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옷과 패션 소품들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리블랭크는 문을 연 지 2년이 채 안 됐지만 온·오프라인 쇼핑몰 10곳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해 있다. 특히 구매력이 있고 독특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20, 30대 여성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폐지를 모아 재생지를 만들고 빈병을 모아 다시 병을 만들고, 헌 옷을 유행에 맞게 살짝 변형해서 개조한다면 이는 1차원적인 재활용이다. 하지만 리블랭크 제품들은 재활용품이라기보다 한 차원 높은 ‘업 사이클(Up-cycle)’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 리블랭크의 제품을 그냥 중고 제품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가격이 비싸다고 하세요. 하지만 헌 옷은 소재일 뿐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고유의 창의력과 소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과 가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활용품에 가치를 더한 제품이라고 해서 ‘업 사이클’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리블랭크에는 묵은 옷을 가지고 와서 수선(리폼)해달라는 고객들의 문의도 많다. 하지만 수선은 사절하는 게 리블랭크의 원칙. 디자이너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줄고 그만큼 새롭다고 할 만한 제품이 탄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헌 옷을 기증하는 고객들에게는 가방을 만들어 제공하거나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업 사이클의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시 프로젝트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리블랭크로서는 중요한 업무다.
이런 생산활동을 통해 채 대표는 제품에 두 가지 가치를 더할 수 있게 됐다. 하나는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쓰레기를 줄여 ‘친환경’을 추구하는 사회적인 가치, 또 하나는 디자이너의 창작물로 예술적 가치를 얻게 됐다.
까르띠에는 2006년부터 대륙별로 전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여성 창업인을 발굴하고 있다. 선정 작업 때는 사업의 수익성만 보는 게 아니라 사업 아이디어와 사회적 의미 등을 두루 검토하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선발자 중 탄자니아 출신 여성 CEO의 아이디어는 아직 사업화하지 않고 기획 단계였지만 사회적 의미를 높이 평가받아 최종 1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리블랭크의 사업에 대해 ‘사업 아이템, 디자인 수준, 물성을 파악하는 능력, 제품화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브랜드 로고와 이름 역시 창의적이다’라는 호평을 내렸다.
최종 15인 중 대륙별로 1등을 가려 전 세계 최종 5인도 선정했는데 아쉽게 리블랭크가 여기에 들지 못한 것은 단 하나, 대량 생산이 어렵다는 단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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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라는 게 지속성을 가지려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처럼 1백 퍼센트 수작업으로는 무리예요. 저희도 창업 때부터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고가의 단 하나뿐인 의상도 판매 중이지만 좀 더 저렴하고 대량 주문이 가능한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이런 제품라인을 강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생산력을 키운 다음의 꿈은 직영 매장 개점이다. 빠르면 내년 말쯤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 다음 목표는 세계시장 진출이다. 업 사이클링 시장이 먼저 형성돼 붐을 이루고 있는 독일, 스웨덴 등 유럽에서 한국산 업 사이클링 제품이 당당하게 판매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 개인과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많은 호텔들이 시설 등을 새롭게 꾸민 걸로 알고 있어요. 호텔에서 버려지는 소파, 커튼, 카펫 등은 리블랭크 제품의 귀중한 소재가 돼요. 정기적으로 새 단장을 하는 항공사나 호텔 등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저희에게 기부해주시면 더 다양하고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선보일 자신이 있답니다.”
글·정고은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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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