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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하나 되는 서울 중랑구 임대아파트 주민들




 

“자, 어머님, 목소리는 더 크게, 무대에서는 절대 엉덩이를 관객에게 보이시면 안 된다는 것 잊지 마시구요. 행동도 크게 해주세요. 오늘은 실제 공연에 대비해서 더욱 빠르게 진행돼야 합니다.”

극단 ‘어우름’의 전윤환(25) 조연출의 지도에 따라 시작된 연극 연습. 추워진 날씨에 한기가 살짝 도는 연습실이지만 여기 모인 8명 주민의 열정만큼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엄마, 엄마는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알기나 해? 만날 공부, 공부, 공부. 지겨워 정말.”(정련화·18·학생)

“에휴. 가족들 본 지도 10년이 다 됐네. 이번에도 못 갈 텐데….”(주영숙·41·중국 연변동포)

“여보세요? 응, 잘 지내지? 아니, 이번 명절에 오나 해서. 애들은 잘 크지. 몸 관리 잘하고 밥 잘 챙겨먹…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려 바쁠 만도 하지….”(최상윤·76)







 

11월 30일 무대에 오르는 이 연극의 제목은 <행복 중랑 사랑만들기>. 제목처럼 중랑구 상봉동 임대아파트 12단지 주민들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한 연극이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배우들은 각자 자신과 이름, 직업, 나이가 같은 역할을 맡았다.

대본 작업에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더 뜻깊은 작품이 됐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외운 대사에는 진정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최고령자인 최상윤 할머니는 한글을 잘 읽지 못하지만 가족과 이웃들이 읽어준 대로 노련하게 대사를 소화해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하고, 기획과 지도를 맡은 극단 어우름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지난해 처음 무대에 섰다. 중랑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각색한 <효녀 중랑>은 관객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정식 공연 이후 국회에서 따로 초청을 받아 올해 2월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일하랴 가족 챙기랴 바쁘고 피곤한데 이렇게 매일 저녁 연습실에 나와서 연습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올해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해 공연을 본 딸이 엄마가 무대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올해에도 꼭 참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사실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같이 연습했던 사람들도 보고 싶고, 왠지 저도 마음이 허전해서 이렇게 다시 연습하게 됐답니다.”(김미숙·57)

올해 무대에 오를 작품은 지난해 <효녀 중랑>을 준비하면서 생겼던 갈등과 에피소드, 실제 공연했던 연극 내용이 교차되면서 더욱 재미있어졌다. 8명 중 5명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 넘게 동고동락한 탓에 동과 동, 현관과 현관 너머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꿰고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최연소 참가자인 정련화 양은 “소심한 성격을 고쳐보라고 엄마가 등을 떠밀어서 참여했는데 실제로 성격도 활발해졌다”며 “예전에는 이웃 어른들이 어렵기만 했는데 이렇게 자주 뵙고 항상 예뻐해주시니 생활에 자신감이 생기고 학업도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양이 딸처럼 느껴진다는 이은복(53) 씨는 “중랑구에 산 지 15년째인데도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주변에 누가 사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는 한순간을 위해 함께 연습하다 보니 정말 가까워졌다”고 했다. 또 “직접 무대에 서보니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연극을 준비하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각자 바쁜 생활 틈틈이 연습시간을 맞추다 보니 참가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누구는 주인공이고 누구는 대사도 없느냐는 불평도 있었다. 대본에도 녹아 있지만 ‘영구 임대아파트 주민’을 바라보는 주위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때로는 주민들 개개인의 사생활 등에 집중된 왜곡된 세간의 관심 때문에 상처도 받았다.

그럼에도 또 한 번의 공연을 앞두고 8명의 주민과 극단 어울림은 매일 6시간씩 연습 삼매경에 빠져든다. 무대 위에서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모두가 주인공인 연극을 위해서다. “우리, 작품으로 보여줍시다.” 연습 시작과 끝에 ‘파이팅’을 외치는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 속에서 성공적으로 끝날 연극 무대를 기대할 수 있었다.
 

글·정고은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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