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1984년 어느 날 석창우 화백은 모처럼 긴 잠을 잔 듯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떴다. 그가 일주일간 누워 있던 곳은 병원 중환자실. 동공이 시야의 사물과 색을 느끼는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어깨가 오그라들고 있다는 것도 함께 느꼈다.

석 화백은 전기관리자로 현장 근무를 하던 중 무려 2만1천9백 볼트의 전류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병원에서만 1년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고, 12차례의 대수술을 견뎌내야 했다. 상실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따질 수도 없는 상황. 하지만 그는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태연히 넘긴다.

“어차피 전기 다루는 사람이라면 겪을 수 있는 일이었죠. 그만한 전류에 죽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대신 그 사고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꼭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같아요.”

너무 남 얘기하듯 말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사고 이후 저 자신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변했다”며 웃었다.
 

병원 치료를 끝내고 새 일을 찾아 나선 석 화백이 지금의 예술적 소질을 발견하게 된 건 아들 때문이었다.

“원래 약초를 캐볼까 하다가 우연히 아들에게 그림을 그려줬는데 제법 솜씨가 좋았나 봐요. 처형도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권하더군요.”

굳은 결심 이후 석 화백은 서예와 사군자에 도전해 3년 만에 ‘일필휘지’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사이 누드 크로키 기법도 배웠다. 서예와 누드 크로키 기법이 절묘하게 조합된 현재의 작품들, 이른바 ‘서예 크로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미술학원에서도 양팔이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했어요. 전주까지 찾아가서 만난 서예과 교수님도 난감해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포기할 때까지만 가르쳐달라’고요. 그랬더니 한 달 후에 교수님이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답을 주시더군요.”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힘들다는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서예대전 등에서 입상한 그는 1998년 개인전을 열었다. 의수 장애인이 사고 후유증을 딛고 예술인으로 거듭났다는 소식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외부의 평가나 시선은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는 데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저에겐 그저 즐길거리, 소일거리일 뿐이죠.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세상에서 발견한 유일한 재미이니까요.”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그처럼 짧은 시간에 대상의 원초적 자유로움을 새로운 기법으로 담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사고로 인한 정신적 공황 상태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에 석 화백은 주저 없이 “아들”이라고 말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내면의 목적이 있었어요. 아들이 컸을 때 남들한테서 ‘너희 아버지는 팔도 없으니 아무것도 못한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제가 사고를 당했을 때 아들은 태어난 지 한 달 반밖에 안 됐습니다. 아들에게는 처음 본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 이 상태일 텐데, 거기다 노력까지 안 하는 걸 보여줘선 안 되겠다 생각했죠. 지금은 그럽니다. 저보고 ‘무늬만 장애인’이라고요.”

석 화백은 첫 개인전 후 지금까지 28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과 독일, 중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인간의 몸짓에 초점을 맞춘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대상의 움직임→포착→화백 스스로의 움직임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석 화백의 작품에선 본능이 그대로 드러나고, 어떠한 장식도 없다. 그가 최근 펴낸 저서의 제목처럼 그야말로 ‘선과 묵과 누드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림을 그려내기까지는 타고난 직관이 발휘된다. 모델을 보고 또 보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기법이 아니라 몸과 붓이 거침없이 함께 한 흐름으로 움직인다.

석 화백은 “저 스스로 감정이입할 시간은 생략하고 거침없이 몸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몸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그에게 몸은 화선지와 내면의 자아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지금 이 물체(의수)로는 화선지하고 나하고 감각이 안 닿잖아요. 결국 몸으로 느끼고 대화할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면 화선지는 결국 제 생활공간이 되는 거죠. 외부 세계와 차단된 저만의 집입니다.”

석 화백의 최근 관심사는 역시 인간의 내면이다. 스스로 “이제 껍데기만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곧 석 화백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각 나라의 전통 예술, 스포츠 스타들의 플레이가 예전과는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화려한 트리플러츠를 펼치는 김연아 선수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인상 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 연기를 위해 적잖은 마음고생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이 보이니 일이 더 재미있어졌어요.”

석 화백은 앞으로 보존성이 좋은 도자기에 서예 크로키를 그려 넣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때문에 본인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작품 수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참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느냐고 물으니 “제 작품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뭐가 좋다’라고 말하면 자식들끼리 질투할까봐 말하지 않겠다”고 재치있게 되받았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 긍정의 힘과 새로운 ‘유희거리’를 얻은 석 화백의 먼 꿈 역시 지금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정년퇴임이 없지 않습니까?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자나 깨나 꿈에서도 이 일 생각뿐입니다. ”
 

글·유재영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